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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엄마의 사랑으로 만드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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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390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 이야기] 엄마의 사랑으로 만드는 세상

 

 

첫사랑의 대상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금세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이다. 인생의 사랑은 보통 세상에 태어나서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온다. 이 시기가 되면 아기는 얼굴에 대한 변별력을 갖게 된다. 누가 누구인지, 어떤 얼굴이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는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곤 그 얼굴의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우게 된다.

 

모든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듯이, 아기는 자신의 사랑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사랑과 물리적으로 떨어질 때는 눈물을 흘리며 불안해한다. 격리불안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반면, 자신의 사랑과 다른 얼굴을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공포심을 드러낸다. 낯가림을 하는 것이다. 격리불안과 낯가림은 사랑에 푹 빠졌다는 증거다. 어떤 얼굴이 자신의 사랑인지 알고, 전적으로 그 대상과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상태다. 첫사랑은 이렇게 우리 인생을 방문한다.

 

첫사랑, 곧 인생의 초기에 우리에게 사랑을 준 대상에게 우리의 마음을 주는 현상을 애착이라고 한다. 아기가 극소수의 제한된 대상에게 느끼게 되는 강력한 심리적 유대감 또는 감정적인 끈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경험하게 되는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많은 경우가 어머니이다.

 

어머니와의 신체적 접촉 과정을 통해 경험하는 ‘접촉 위안’이 애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겼을 때 경험하는 심리적 따뜻함이 바로 난생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의 흔적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흔적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사랑의 경험이 바로 우리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아기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해서 나온 사람은 없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진 삶이다. 이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서 처음 만나게 된 존재와 이루는 상호작용은 아기에게 세상과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애착 대상이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아기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아기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아기는 이 낯선 세상이 꽤 살 만한 곳이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기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것이다. 그 반면, 애착 대상이 아기의 요구에 무관심하고 일관적이지 않게 반응하면, 아기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을 형성하게 된다. 세상살이가 만만찮고,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기는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사랑이 따뜻하고 달콤했는지, 그와 반대로 차갑고 아팠는지에 따라 아기가 획득하게 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은 크게 달라진다. 한 살도 채 되기 전에 시작한 첫사랑의 결과가 세상에 대한 첫인상과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인생 초기에 세상은 따뜻하며 사람들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형성한 아기들과, 세상은 차갑고 사람들을 신뢰하거나 의지할 수 없다는 믿음을 형성한 아기들의 미래는 달랐다. 영아기에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했던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던 아이들보다 친구가 많고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안정적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사회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잘 발달되어 있었고, 공격성의 정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아동들은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동들에 비해 자아 존중감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나타났다.

 

영아기의 애착형성이 사회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공격성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아기 원숭이가 태어나자마자 세 달 동안 어미나 다른 친구 원숭이들이 없는 우리에 격리시켜서 키웠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마치 감옥 같은 독방에서 3개월을 보내게 만든 것이다. 먹이와 물은 풍부하게 주었지만 어미 원숭이와 애착을 형성할 기회, 곧 첫사랑의 기회는 박탈한 것이다.

 

세 달이 지난 뒤에 이 원숭이를 또래의 다른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에서 생활하게 했다. 아기 원숭이는 처음에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나타냈다. 우리 구석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푹 처박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또래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일 년가량 지나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또래 원숭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바로 매우 공격적이었다.

 

할로우의 연구결과는 시설에서 자란 아동들이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에 비해 더 공격적이라는 연구결과와 맞물려, 애착이 인간의 사회성과 정서의 발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일러준다고 해석되었다. 실제로 보모 1인당 돌봐줘야 하는 아이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고, 서너 살 무렵에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했던 아이들보다 더 강한 공격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애착의 이러한 영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사랑에 따라 달라진 세상

 

첫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획득한 사람과 불신을 형성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을 때, 사람들은 양보와 평화를 선택한다. 반대로 불신은 우리를 경쟁과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 경쟁과 힘에 대한 의존은 결국 갈등과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곳에서 선택되는 수단이 평화라면, 불신이 팽배한 곳에서 주로 선택되는 수단은 폭력이다.

 

따라서 세상은 따뜻하고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세상은 차갑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선택하게 되는 수단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이 영아가 반드시 어머니와 애착을 형성해야만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유모 등과 같이 영아를 돌봐주는 사람은 모두 애착형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애착형성의 대상이 되는지보다는 아동이 애착을 형성한 대상과 얼마나 안정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했는지에 있는 것이다. 아기를 유아원 등에 맡겨야 하는 경우, 보모와 영아간에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될 수 있을 만큼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한다. 보모가 영아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기는 무척 어렵다.

 

아기의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누구나 훌륭한 애착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애착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대상과는 무관하게 아기의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가 취업을 했을 때 아기들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그 원인은 어머니의 취업으로 아기가 어머니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애착을 형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들이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나 불안 등에 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일과 가정사를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는 ‘슈퍼 맘’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그 결과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안정적 애착형성을 방해한다.

 

이제는 어머니가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안정적 애착형성의 책임을 어머니와 아기에게 일임하는 사회는 불안정 애착을 장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 아기들이 성장해서 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는 결국 안정적 애착형성의 책임을 방기했던 사회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의 보육문제를 방치한 사회, 곧 첫사랑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의 미래는 평화보다는 폭력에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육문제를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현재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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