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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제2권: 내 나이 열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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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7 ㅣ No.316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2권] 내 나이 열여섯

 

 

세 번의 인간 사랑

 

아우구스티노는 생애 전반에 세 여인을 사랑했다. 셋 다 이름이 남겨지지 않았다. 첫 번째는 그가 고향을 떠나 카르타고로 유학을 가자마자 동거를 시작하고 아들(아데오다투스)까지 낳아준 여자다. “그 시절 저는 한 여성을 두고 있었습니다. 합법적이라고 일컫는 혼인으로 알게 된 여자가 아니라 지각없이 이리저리 들뜬 제 정욕이 찾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하나뿐이었고 그녀에게는 침방의 신의를 지켰습니다”(4.2.2).

 

「고백록」 제2권을 펴면 “제 육신의 나이 열여섯 되던 그해에, 색욕의 광기가 제 위에서 홀(笏)을 쥐어 저는 그 앞에 완전히 두 손을 들어버렸습니다.”(2.4)라는 고백이 나온다. 이웃 마다우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카르타고로 대학공부를 떠나기 전 한 해를 허송하던 무렵이다.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곤 사랑하는 일과 사랑받는 일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모니카는 유난히 색정에 몰두하는 아들을 두고도 혹시 유부녀를 건드려 사달을 낼까만 염려했다. “젊은 혈기를 산 채로 잘라낼 수 없을 바에야, 굳이 부부 연이라는 테두리에 묶어둘까 하다가도 아내라는 족쇄 때문에 아들의 창창한 장래가 묶일까 두려웠다”(3.8).

 

훗날 아들이 밀라노 황실 교수가 되자 모니카는 아들이 16년 동안이나 “품어오던 여자를 결혼의 방해물이나 되듯이 옆구리에서 떼어내” 아프리카로 쫓아 보내고 열두 살짜리 양갓집 규수와 약혼을 시켰는데 아들은 그렇게 “청혼한 여자를 이태가 지나야 맞아들일 터였으므로, 그 미루어진 틈새를 못 참고 딴 여자를 두었다”(6.15.25). 이렇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랑이 단 한 줄로 스쳐간다.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교부가 그리스도께로 회심할 적에도 마지막까지 족쇄가 되던 것은 사상적 고뇌가 아니었다! 밀라노 정원의 저 밤에 주저와 의혹의 모든 어둠을 순식간에 흩어버린 것은 “잠자리와 음탕에도 말고, 욕망에 빠져 육신을 돌보지 마시오!”라는 의미의 로마서 구절이었다(8.12.29).

 

그 괴로운 체험 때문인지 독신의 수도자와 성직자로 늙어가던 생애 후반기에 아우구스티노는 성에 관해서 유난히 근엄했고, 결혼의 목적을 ‘자녀 출산’에만 국한하는가 하면, 심지어 성욕과 원죄를 동일시할 정도로 심한 청교도 윤리를 교회에 남겼다. 현대의 성문화나 근래의 ‘에로스 영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향 친구들과 패 지어 돌아다니며 못된 짓을 저지르면서도 ‘악질이 못 되는 열등감’을 한탄하였다. “제 또래 사이에서 제가 덜 창피할까 되레 부끄러워하고, 그들이 자기네 파렴치한 짓을 그토록 자랑삼는 것을 듣거나, 추잡하면 할수록 그만큼 뽐내는 것을 보고서는, 또 색욕으로 저지른 소행을 해도 괜찮을뿐더러 제가 무죄할수록 못난이처럼 보이거나, 제가 순결하면 할수록 그만큼 얼간이처럼 여겨지는 게 싫었습니다”(3.7).

 

요새 중학교 ‘일진’들이 1700년 전 인물 아우구스티노와 통할 만한 얘기고 ‘공포의 중딩’들은 “방종한 자들의 유혹은 사랑받고 싶은 것입니다.”라는 교부의 실토에도 깊이 공감할 게다.

 

 

배나무에서 무화과나무까지

 

유다인들이 인류사회에 끼친 사상적 공헌이 ‘죄(罪)에 대한 의식’이었다면 철학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아우구스티노 사상은 ‘악(惡)의 형이상학’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교부가 평생을 두고 악의 문제를 천착한 계기가 열여섯 살에 저지른 ‘배 서리’였다면 믿어질까?(4.9)

 

“유희에 빠져 진지함의 절도를 넘어서서 갖가지 감정의 허랑방탕함 속으로 고삐가 풀린”(3.8) 타가스테 ‘일진’들이 밤이 이슥해 이웃집 배나무를 싹 털었다. 그러고서 그걸 자루에 담아다 돼지들에게 던져주었다!(4.9)

 

맛있게 먹자는 쾌락도, 팔아서 돈을 벌자는 이익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저지를 악이 있다니! ‘악을 악으로 즐길 수 있다.’는 신기함이 그의 사색을 사로잡아 제2권 후반부 전체(4.9-10.18)를 할애한다. “오, 나의 도둑질, 내 나이 열여섯 살에 밤중에 저지른 나의 저 죄악이여, 가련한 내가 네 안에서 사랑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더냐?”(6.12)

 

불혹의 나이가 되어 그 시절의 치기 어린 장난을 회상하던 그에게 인간의 심각하게 비뚤어진 심연이 들여다보였다. “그 과일은 아름다웠습니다만 가엾게도 제 영혼은 열매 자체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저한테는 더 좋은 과일이 얼마든지 있었고 훔친 것들은 그냥 버렸습니다. 그저 도둑질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저는 과일을 서리해서 그냥 버렸으니 제가 배불리 맛본 것은 오로지 악의(惡意)뿐이었고, 그 악의로 하는 도둑질이 재미있었습니다. 하느님, 지금 저는 도둑질에서 저를 재미있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실상 아무 멋도 없습니다”(6.12).

 

“저 순간 그 마음이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그저 악인이 되고 싶었고 제 악의의 원인은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악의가 추잡했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자멸하기가 좋았고, 파렴치하게 무엇을 탐한 것이 아니라 파렴치 자체를 탐하는 영혼이었습니다”(4.9).

 

그의 고찰은 여기서 ‘악의 신비’로 넘어간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니, 그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니, 과연 그럴 수가 있습니까?”(6.14)

 

인간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자유의지는 최고선에 동의하는 자유뿐임에도 그에 역행할 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가 곧 선이다!’라는 초인(超人)사상이 깔려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본질은 오만인데, 문제는, “교만조차도 지고함을 본뜨는 무엇, 당신 홀로 만유 위에 지존하신 하느님을 본뜨려는 무엇”(6.13)이라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친다.

 

다만 그 모방은 하찮은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의 전능을 흉내 내는 음울한 모방, 비뚤어진 모방일 수밖에! “그러니까 당신을 거슬러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은 모조리 당신을 본뜨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저 도둑질에서 제가 좋아한 것은 무엇이며, 비록 못되게 또 비뚜로 본떴다고 할지라도 저의 주님을 어떤 방식으로 본떴다는 말입니까? 제가 능력으로는 당해낼 수 없으니까 속임수로라도 당신의 법에 대항해서 그 짓을 저지르고 싶었던 것입니까? 아둔하게 전능을 모방하고서는, 안될 짓을 하고서도 벌을 받지 않으니까, 포로가 되어서도 기형이나마 자유를 모방했다는 말입니까?”(6.14)

 

일찍이 낙원에서 인간을 유혹하던 악마의 음성,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창세 3,5 참조)는 속삭임이 귓전을 울렸다. 악의 세력을 쳐부수는 대천사의 이름이 미카엘(Mi-ka’-el: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교부의 눈에 바로 그 모방에 구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당신을 본뜨고 있을지라도 그자들은 당신을 떠나서 갈 곳이 도대체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킵니다”(6.14). 선행은 물론 저 모든 악행에서도 인간이 무의식으로 추구하는 바는 하느님이라는 절대 선, 절대 지평이었다! 죄악마저도 무구함을 동경하고 하느님 안에 안식을 찾는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용서받을 수 있다.

 

“누가 있어 이처럼 비비 꼬이고 얼키설키한 실타래를 풀어내겠습니까? 더럽습니다. 거들떠보기도 싫고 들여다보기도 싫습니다. 당신을 원합니다. 선량한 눈에 아름답고도 멋진 무구함이시여, 만족할 줄 모르는 만족감으로 당신을 원합니다”(10.18).

 

애초 당신과 비슷하게 만드신 조물이기에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몸부림마저 대견해하시는 창조주! 그래서 타가스테 포도밭 옆집의 ‘배나무’에서 시작한 아우구스티노의 방황은(악의 문제를 두고 속고 속이는 마니교에 떨어져 8년의 긴 세월을 외돌기는 했지만) 밀라노 정원의 ‘무화과나무’ 밑에서 “집어라! 읽어라!”라는 동요로 끝을 본다. 낙원의 ‘선과 악을 아는’ 나무 밑에서 출발한 인류의 구세사가 골고타의 ‘십자 나무’ 밑에서 대단원을 보듯이!

 

* 성염 요한 보스코 - 1986년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에서 라틴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교황청 한국대사(2003-2007년)를 지냈다. 「신국론」과 「삼위일체론」을 번역하고, 최근 「고백록」을 펴냈으며, 지금도 지리산 자락에서 아우구스티노의 원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성염 요한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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