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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교육과 신앙: 아주 작은 세상과 몹시 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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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26 ㅣ No.314

[과학 교육과 신앙] 아주 작은 세상과 몹시 큰 세계

 

 

세상사에 대해 꽤 자신 있게 안다고 믿으며 힘주어 우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공부하고, 특히 나이가 들면서는 ‘그게 다 이렇고, 저렇고, 그런 거야.’ 하며 세상일 따져봐야 별것이 아닌 것 같다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보다 아주 작은 세상이나 몹시 큰 세계는 어떨까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탄스럽습니다. 우리보다 모든 것, 곧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2배 큰 세상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또 12분의 1로 축소된 작은 세상을요!

 

 

‘걸리버 여행기’의 ‘새로운’ 이야기?

 

소인국과 거인국의 이야기로부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과학은 얼마나 재미있고 멋진가!

 

 

스위프트(Jonathan Swift) 신부님이 1726년에 지으신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The Gulliver's Travels)」는 18세기 서구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이에 따른 동화는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는 것으로 누구나 그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름의 문학적, 교훈적 가치가 있는 이 소설을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 숨어있음을 갈릴레이는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위프트 신부님은 그렇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PSSC 물리」, 탐구당, 1990년 참조).

 

걸리버가 소인국에 잡혀가 묶여있는 그림을 보면 소인국 사람들이 앙증맞게 보입니다. 그 반면 거인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키가 12배나 큽니다. 그러면 몸을 버티게 하는 다리뼈의 단면적은 144배, 무게는 1,728배 큰 셈인데, 그들은 우리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요?

 

한 변의 길이가 1cm인 사각형의 넓이: 1㎠      

한 변의 길이가 2cm인 사각형의 넓이: 2cmx2cm=4㎠ 

한 변의 길이가 12cm인 사각형의 넓이: 12cmx12cm=144㎠

 

정육면체의 부피: 1㎤

정육면체의 부피: 2cmx2cmx2cm = 8㎤

정육면체의 부피: 12cmx12cmx12cm=1,728㎤

 

 

상상 속 ‘거인국’과 ‘소인국’에서는

 

우리 세상 어린이의 키가 1m 정도이고 몸무게가 30kg쯤 될 때 거인국 어린이의 키는 12배 크겠지요. 그런데 몸을 지탱하는 다리뼈의 단면적은 144배이고, 몸무게는 1,728배로 5만kg이 넘을 것입니다. 과연 버티고 서있을 수 있을까요?

 

또, 우리보다 키가 12분의 1 정도로 작은 소인국에서는 다리뼈의 단면적은 144분의 1로 작고 몸무게는 1,728분의 1만큼 적을 것이기 때문에 몸을 버티기는 아주 쉽겠지요. 강아지는 자기 키의 여러 배를 깡충깡충 뛸 수 있지만, 말이나 코끼리는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편, 우리는 끼니마다 밥 한 그릇(부피와 관계)이면 몸을 따듯하게 유지(피부의 표면적과 관계)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거인국 사람들 몸의 표면적은 우리보다 144배 넓지만, 밥 한 그릇의 부피는 1,728배나 커질 것입니다. 동물원의 코끼리가 생각보다 적게 먹는다는 것이 동물 전문가들의 말이지요.

 

그런데 소인국에서는 상황이 달라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며 온혈동물로 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몸의 표면적은 144분의 1로 작아지는데, 밥 한 그릇은 1,728분의 1로 적어지니, 우리의 상황보다 훨씬 작은 한 그릇으로 몸을 따듯하게 유지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온혈동물인 생쥐는 계속 무엇인가 먹어야 합니다. 생쥐보다 더 작은 온혈동물을 찾아보기 어렵고, 작은 곤충이 냉혈동물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속에서 수영하고 나왔을 때 피부 표면에 묻은 물은 별것 아니지만, 파리가 물속에 빠졌다가 젖으면 표면의 물 때문에 꼼짝하지 못하고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을 이제는 확대와 축소의 ‘물리’로 이해하시겠지요.

 

자연의 사물과 현상을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보십시오. 몸이 크고 무거운 사람과 작고 가벼운 사람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코끼리처럼 큰 동물은, 큰 나무는, 큰 산은, 광대한 우주는, 그리고 작은 분자와 원자, 핵의 ‘물리’는?

 

소인국과 거인국을 생각해 보면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유리’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불리’한 것 같지만, 질서가 있지요. 그리고 놀랍게 조화를 이룹니다. 자연의 사물과 현상이 존재하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이렇게 묘하게 질서가 지어졌을까요?

 

나비가 잘 난다고 100배가 되는 ‘큰 나비’를 만들면 정말 잘 날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이 큰 비행기나 배를 만들어 실험하기는 어려워 작은 모형을 만들지요. 그런데 작은 모형을 기하학적으로만 축소하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없어 확대와 축소의 ‘물리’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얘기 말고도 몇 가지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땅값이 비싼 요즘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km쯤 되는 아파트(109㎥)를 지으면, 천정까지의 높이가 5m쯤 되는 약 30평(10mx10mx5m=500㎥)정도의 방 200만 개를 확보할 수 있는데, 이렇게 큰 아파트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일까요? 지을 수는 있는데, 다른 문제 때문에 짓지 않는 걸까요?

 

몇 명 안 되는 사람으로 설렁탕집을 잘 운영하여 돈을 많이 벌었는데, 큰 빌딩을 지어 수십 명의 사람을 고용해 잘 경영하기 어려운 것도 이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수십 명이 사는 시골 마을에서 이장으로 일을 잘했다고 해서 수천만 명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 일을 이장이 하는 방식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요?

 

 

확대와 축소의 물리

 

우리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사물이나 운동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뉴턴 역학이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 멋진 물리의 세계에서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는 많이 알아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지, 물리학자들은 그런 ‘궁극적’인 것은 연구할 수도 없고 연구할 뜻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조화로운 자연 세계를 누가, 왜 만들어 놓았을까요?

 

확대와 축소의 물리를 생각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운동을 잘 설명하는 뉴턴 역학이 원자와 같이 작은 세계는 잘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데, 이것은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 못 됩니다. 원자 세계에 대해서는 ‘양자역학’이 잘 설명해 준다고 하지요. 더 멋진 것은 양자역학은 작은 원자의 세계뿐 아니라, 조건을 우리 일상생활의 크기로 하면 뉴턴 역학이 설명하던 것을 잘 설명해 주니 참 발전된 역학 이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원자보다 훨씬 작고 빠른 소립자의 세계는 어떨까요?

 

광속과 같이 빠른 운동이나 우주와 같이 넓은 세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멋지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지요. 상대론에서 연유한 E=MC2(에너지=질량x빛의 속도2) 관계식으로 핵과 관련하여 큰 에너지를 내는 것을 태양이나 원자로를 통한 연구로 그 이론이 괜찮은 것임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광속보다 더 빠른 세계는 없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인데, 정말로 그럴까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주는 얼마나 클까요? 끝이 있을까요? 그동안 우리가 탐구해 온 것을 토대로 너무나 다양하고 묘하면서도 흩어지지 않는 규칙성이 있으며 아름다운 조화가 있다는 것을 경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요.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관련하여 우주의 반경은 10의 10승(1010)광년 정도라는 어림값도 있습니다. 빛은 1초에 약 30만km 나아가고, 그렇게 빠른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가 1광년이니, 우주의 반경은 빛이 100만 년 가는 거리가 된다는 주장이지요. 아무튼 우주가 얼마나 넓은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나요? 그러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 능력을 갖추신 분일까요?

 

 

「주교요지(主敎要旨)」에

 

“천주 본디 계시고 스스로 계시니라. 한 사람이 묻되, ‘만물이 절로 나지 못하여, 천주 내어 계시다 하니, 이 천주는 누가 내었는고?’ 대답하되, ‘만일 천주를 낸 이가 있으면, 그 낸 이가 곧 천주가 될 것이니, 이제 일컫는바 천주는 좇아 난 데 없으시고 본디 스스로 계신지라. 대개, 스스로 계신 자 하나가 먼저 있어야 만물이 다 이로부터 나나니, 나무로 말하면, 잎은 가지에서 나고, 가지는 줄기에서 나고, 줄기는 뿌리에서 나니, 뿌리는 잎과 가지와 줄기의 근본이 되는지라. 근본의 또 근본이 어찌 있으리오?

 

또, 수(數)로 말하면 만(萬)은 천에서 나고, 천은 백에서 나고, 백은 열에서 나고, 열은 하나에서 나니, 하나는 만과 천과 백과 열의 시작이 되는지라, 시작의 또 시작이 어찌 있으리오? 천주는 나무의 뿌리 같으시어 다시 뿌리 없고, 수의 하나 같으시어 다시 시작이 없느니라.”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선현께서는 1885년 한글로 처음 쓰신 교리서에서 위와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어려운 학술적 용어가 가득한 철학적 논의를 읽으면 그럴듯한 것 같지만 잘 알아듣기 어렵고 수식이 가득한 물리책을 보면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대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첨단기술 제품에 대해 그 원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주 편리한 제품으로 비싸도 사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쉬운 듯하면서도 뜻깊은 선현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숙고하며 사는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철학과 과학은 자연 이성의 질서 테두리 안에서 작업하지만,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앙은 구원의 소식 안에서, 하느님께서 역사 속에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고자 하신 ‘은총과 진리의 충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신앙과 이성」, 9항).

 

과학자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과학 교육자들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탐구하고 이용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에 대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

 

* 박승재 데시데라도 -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국제물리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박승재 데시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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