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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족 여정: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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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26 ㅣ No.985

[가족 여정]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

 

 

저는 지난 2002년부터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벌써 햇수로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평신도로서 ‘가정사목’이라는 한 분야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가정의 위기 문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실 때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이곳에 교회를 먼저 지을까, 학교를 먼저 지을까?’ 이태석 신부님은 현지 주민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신 겁니다. 나 자신이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지요.

 

저도 가정사목 분야에서 일을 해오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집니다. ‘예수님이시라면 가정을 위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셨을까?’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가정은 심각한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의 중심축인 부부는 관계가 흔들리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고령층의 소외감과 경제적인 궁핍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고, 연애와 혼인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삼포세대’의 증가로 혼인율과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가정을 위해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만드셨을 거야.’ 가족이 서로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갈등이 악화된 부부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세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 악화된 가정에 “주님의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세요.”라고 백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성경 말씀을 가족이 함께 읽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가정은 상처투성이고, 이를 극복하려는 ‘구체적인 방법’이 절실합니다.

 

 

가족관계의 회복

 

심리학이나 상담학 또는 가족치료 등의 분야에 대해 적잖은 경계심을 갖고 계신 신부님들이 상당히 계십니다. 그런 내용은 일반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아 가정사목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으뜸으로 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경 말씀을 아무리 들려줘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옳고 바르게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끌리는 법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설득의 법칙’과도 연관 있습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나는 당신의 편이고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가족관계 프로그램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 가족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설 자리도 잃게 된다는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가족관계가 회복되면, 그 가정은 자연스럽게 신앙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심지어 가족 가운데 신자가 아닌 사람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신자가 되는 일도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평신도인 제가 가정사목을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가족관계를 성장시키고 회복시킬 수 있는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들을 위한 ‘아버지 여정 프로그램’입니다. ‘아버지 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아버지인지 되돌아보고,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법이나 가족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비롯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단순히 방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매주 가정에서 실천해야 하는 숙제를 통해 이론과 실제가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하루 세 시간씩 총 4주에 걸쳐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고, 교구에서 양성된 프로그램 봉사자들이 본당으로 직접 파견되어 운영됩니다.

 

또 한 가지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혼인교리’입니다. 서울대교구는 각 지구별로 혼인교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를 교구 중심의 체계적인 체제로 개편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예비부부들이 가정생활의 시작인 ‘혼인’을 잘 준비하도록 도우려 합니다. 특히 혼인교리 참가자는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비신자이고, 신자라 하더라도 냉담교우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내용이 절실합니다. 단순히 혼인교리 수료증을 따는데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혼인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이 되도록 전면적으로 체제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닙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아울러, 신부인 당신 교회를 위한 주 그리스도의 사랑을 활기 있게 반영하고 진정으로 나누는 것입니다”(「가정 공동체」, 17항).

 

마지막으로 가정사목에 대해 제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보았습니다. ‘가정사목은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 만들기 위한 여정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통로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이 땅의 모든 가정과 교회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는 꿈을 꿉니다.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여정」, 「부부여정」 등의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글 권혁주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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