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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신앙과 심리: 기쁨이 없고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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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21 ㅣ No.364

[신앙과 심리] 기쁨이 없고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져

 

 

무표정하고 낮은 음성의 M형제는 자신이 궁금하다고 했다. 60대 후반인 그는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최근 태어난 손녀를 보아도 무덤덤하여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다고 하였다. 기쁘거나 좋아하는 감정이 들지 않으니 지금하고 있는 음악활동도 신앙생활도 즐거움 보다 의무로만 느껴져 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M형제는 태어나서 유복한 환경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나, 사회적인 성공으로 명망이 높았던 부친이 그가 사춘기 때에 파산했고 재기를 위해 백방으로 애쓰다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이어서 벌어진 어머니의 자진(自盡)은 어린 M형제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 차리고 잘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가족이 모두 흩어지고 사라질 것 같았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에 전념하였다.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으면 감정이나 사고가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많다. 그도 상처를 잊고자 이성과 의지로 살아오며 사회적인 성취, 가정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결혼을 하였고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여 성가정을 이루었다.

 

자녀들도 성장하여 결혼하였고 은퇴 후에 여유 있는 생활을 하게 되자, 그는 어려서 익혔던 악기를 다시 잡고 음악동호회 활동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점점 불쌍하고 이따금 멍하니 있게 되고 의기소침한 자신을 보게 되었다. 첫 손녀가 태어났을 때 기뻐하는 아내를 보며 좋다고 말하였으나 표정은 무덤덤하였다. 어려움이 없이 사는데 왜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없을까.

 

거울 앞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에 대하여 점점 궁금해졌다. 나는 왜 감정이 죽었는가. 왜 느낌이 없는가. 담담하게 말하는 그에게 감정을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의 삶을 들으며 그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을 지키려 한 것이 감정차단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의 죽음으로 가족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분노는 살인충동을 느낄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이었기에, 그는 살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차단하고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중년기에, 혹은 노년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문득 자신만의 거울 앞에 선다. 때론 자기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이 아닌 것 같아 허탈감을 느낀다. 그래서 거울 속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추구하는 이러한 질문은 삶의 여정에서 우여곡절을 참고 견디어 온 에너지, 긍정적인 의미와 가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이 시기 발달 과정인 생리적인 변화와 사회 환경적인 혹은 가족 안에서 역할 변화로 심리적 위기를 맞이하지만, 이 위기는 생애발달의 한 부분으로 인격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영성에로의 초대가 될 수 있다. M형제도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하며 자신의 심리를 회복하는 길을 나섰다.

 

상담심리 전문가인 이창진 신부(서울대교구)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인 영성은 왜곡된 심리회복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종교적 영성과 일반적인 영성으로 개념을 나누면서 일반 영성이란 인간의 심층부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영과 관련된 것으로 자기를 초월하여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며 자기실현 또는 초월자와의 관계 맺음을 통한 자기 본성의 실현이라 하였다. 일반 영성은 생활영성으로 볼 수 있으며 삶의 체험에서 마주하는 본성 실현과정으로 심리 상담에서 추구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 우리 스스로가 지닌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기 위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라 하였다.

 

M형제는 부모님의 사망 전후에 일어난 가족 갈등으로 있었던 부정적인 감정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며 자신의 감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죄책감, 원망, 미움, 증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 밑에 있는 사랑, 연민, 아쉬움, 그리움을 말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의 얼음왕국이 녹아내리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기억나고 행복하고 기쁜 감정을 조금씩 느끼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는 신앙생활을 한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올해의 성탄은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심은 아래의 세계로, 무의식 세계로 내려감으로써 이루어졌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즉, 우리는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 속으로, 무의식 세계로 내려가 주님을 초대함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 자아는 그곳에서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받아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다.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의 세계, 무의식과 어둠 속으로 내려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과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완벽하고 잘못이 전혀 없는 모범적인 신앙인을 제시하지 않고, 큰 잘못을 저질러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 저 깊은 내면에서부터 하느님의 구원을 부르짖는 사람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에페 4,9).

 

* 유정인(리디아)씨는 한국 가톨릭 상담심리사 및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상담심리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메일 uli9942@hanmail.net

 

[외침, 2016년 12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유정인(유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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