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9)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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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1 ㅣ No.301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절제를 통해 얻는 영혼의 자유로움”

-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 ⑨ 절제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둘

이파리를

떨군다.1)

 

만추(晩秋)입니다. 나무가 이파리들을 붉게, 노랗게 물들이다 하나둘씩 떨어뜨립니다. 나무를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봄에 새싹을 틔우고 화려한 꽃을 피우더니, 여름엔 무성하게 자란 잎이 숲을 신록으로 물들입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탐스러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 다채롭고 풍성하던 나무는 가을이 깊어지면서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이파리에 공급되던 물과 영양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 말라서 빛이 바래져 가는 잎을 미련도 두지 않고 떨어뜨립니다. 푸르름을 품고 있으면 추운 겨울에 얼어 터져 버려 나무 전체가 죽어 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죽음 같은 겨울을 견디어 내면 다시 봄이 와 새싹을 틔운다는 사실을 나무는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自然)은 그 자연스러움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자연을 통해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진 게 왜 이리 많은지요. 올 초에 신학교에서 교구청으로 이사를 할 때 느낀 점은 혼자 사는데 짐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들은 잦은 인사이동으로 이사를 자주 합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이사할 때마다 ‘난 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사는구나….’ 하며 반성하게 됩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 9-10)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 41)

 

꼼꼼하게 따져 보고 뭐든지 갖추고 있어야 하는 저의 성격에다가 편리한 물건이 너무나 많은 오늘날의 환경이 소비를 부추깁니다. 이것도 필요한 것 같고 저것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에 하나둘 모은 물건들은 점점 쌓여 갑니다. 거기다 ‘소비는 미덕’이라며 계속해서 소비할 것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순하게 살기란 더욱 힘이 듭니다. 이런 현대사회에 노자(老子)의 가르침은 경종을 울립니다.

 

“얻기 힘든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할 것이며,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2)

 

명품 가방과 옷, 고급 승용차 같은 얻기 힘든 재화, 욕심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그것을 소유하면 마치 나의 인격도 덩달아 고귀해질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끊임없이 더 비싸고, 더 화려하고, 더 고급스러운 것을 소비하라고 부추깁니다. 요리 대결과 맛집을 소개하면서 더 맛있고 호화로운 음식을 광고합니다. 하지만 욕망과 이기심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며 결국에는 나 자신까지 집어삼켜 버립니다.

 

이런 욕망과 감정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워지고 죄로 유인하는 잘못된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는 성령의 열매가 바로 “절제(節制)”입니다. 단순히 가진 것을 줄이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절제는 아닙니다. 욕망을 줄이고 나쁜 감정을 품지 않는 것도 절제이지만, 절제는 피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윤리 덕목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절제를 통해 나는 내 몸과 정신의 주인이 됩니다. 소비의 유혹과 욕망의 달콤함에 현혹되어 영혼이 중독(中毒)되지 않고, 내 정신의 자유로움을 일깨워 주는 힘이 바로 절제입니다. 그래서 절제는 모든 덕의 기본이며 완성입니다. 옛 성현들도 절제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불의한 돈이나 권력에 자신의 의지와 지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삶을 강조한 공자(孔子)의 경지를 살펴볼까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를 삼을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구나.”3)

 

거친 밥과 물로만 이루어진 보잘것없는 먹거리입니다. 안락한 침구는커녕 베개도 없어 팔을 베고 눕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길(道)을 가는 이의 행복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富)과 권력(貴)은 뜬구름처럼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지요.

 

요즘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화제입니다. ‘이렇게 하면 법에 걸리고, 저렇게 하면 법망을 피할 수 있다.’ 이런저런 문의가 쇄도하고,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책도 출판되었답니다. 법의 기본 정신과 취지에는 주목하지 않고,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 만을 따지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것인지 불의한 것인지는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절제할 수 있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히고 집착하는 노예의 삶에서 나를 풀어 자유로움을 주는 도구가 바로 ‘절제’입니다. 그러니 절제를 실천한다는 것은 내가 내 몸, 내 마음, 내 정신, 내 의지의 주인이며 나의 영혼은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은 민첩하게 하면서도 말은 삼가고, 도가 있는 이를 찾아가서 자신을 바로잡으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하다.”4)

 

절제의 삶은 어렵습니다. 옛 성현들도 평생을 추구했지만 죽을 때까지 욕망의 유혹과 감정의 집착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었습니다. 성령께서 열매 맺어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 7)

 

1)  황인숙 詩 「어느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중에서.

2)『노자(老子)』, 3장.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3)『논어(論語)』, 「술이(述而)」, 15장. “飯?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4)『논어(論語)』, 「학이(學而)」, 14장.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好學也已.”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으로 있다.

 

[월간빛, 2016년 11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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