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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드라마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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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22 ㅣ No.1197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드라마 ‘보좌관’


나은 세상을 꿈꾸며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 가족 모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말이다.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했다가는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고 서로 마음만 상하니까 아예 입 밖에 꺼내지도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어쩌다 이렇게 불편한 주제가 되었을까?

 


빛을 밝히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현실에서는 불편해도 드라마 속 정치는 흥미진진하다. 드라마 ‘보좌관’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 사회의 사건 사고들이 숨 쉴 틈 없이 전개되며 이에 대한 정치의 목적과 가능성에 질문을 던진다. 4선 국회 의원 송희섭(김갑수)의 수석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갖고 국회 의원에 도전한다. 경찰대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그가 왜 하필 국회 의원 보좌관에 이어 국회 의원에 도전하는 것일까?

 

장태준은 비뚤어진 세상에서 포식자로 군림하는 정치인들을 끌어내리려면 그들 위에 올라서거나 최소한 그들과 동등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한 입법 기관이다. 입법권을 기반으로 행정부를 견제하며 국회를 움직여 예산을 편성하는 국회 의원에게는, 대의 활동을 보장하고자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까지 주어진다. 장태준은 바로 그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 나라를 좀먹는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말끔히 태워 버리리라 작정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그가 꿈꾸는 ‘자신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자신에게 공천을 약속한 송희섭의 비리를 숨겨 주고 상대 진영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며 심지어 재개발 지역 상인들을 유인해 낸 뒤 기습 철거까지 감행한다. 스스로 어둠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고 했던가. 장태준은 약삭빠른 집사처럼 불의한 재물과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오른다. 한때는 자신과 같은 꿈을 꾸던 이성민(정진영)의원과 끝까지 동행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성민은 후배 장태준을 타이르듯이 말한다.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결과도 잘못되는 거야.” 그러나 정공법을 택한 이성민은 끝내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지난날 단 한 번의 불의에 모른 체하며 타협했던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단죄한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 정도 흠쯤은 티끌처럼 생각하는데 말이다.

 

 

정치인들이 무서워하는 건 여론입니다

 

국회 의원의 역할은 자신을 대표로 뽑아 국회로 보낸 국민의 의견을 듣고 실현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몇몇 국회 의원은 국민의 일꾼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만 의정 활동을 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권력을 지키는 일이고 이를 위한 방법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법무부 장관을 거쳐 종국에는 청와대 입성이 목표인 송희섭은 권력과 재물 앞에선 고개 숙이고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당당히 외친다. “수치심이 없어야 정치를 할 수 있어!” 이쯤 되니 장태준과 줄곧 함께해 온 강선영(신민아) 의원이 재선을 포기하면서까지 권력자들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결심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권력만 좇는 부패한 정치인조차 제 뜻과 관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열쇠가 있다. 바로 여론이다. 드라마에서 보좌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하고, 의원들은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거짓말과 연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든 현실에서든 6그램짜리 국회 의원 배지를 달아 주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라는 사실을 의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에 ‘식물’이니, ‘파행’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고 법이 사람보다 권력과 재물을 우선으로 여긴다면 그런 국회 의원을 뽑은 유권자들도 함께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선거 전에만 납작 엎드렸다가 당선된 뒤에는 제 잇속만 챙기는 국회 의원을 식별하지 못하고 선택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말이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책임감 있는 시민 의식은 하나의 덕이고, 정치 생활에 대한 참여는 도덕적 의무”(「복음의 기쁨」, 220항)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복음을 바탕으로 정치에 참여할 때 정치가 공동선을 추구하는 본디 목적을 이룰 수 있고 그 자체로 최고의 자선이 되기 때문이다. 장태준은 말한다, 정치는 타인의 고통에 익숙해져 버린 어둡고 차가운 현실 안에 있어야 하며 어둠 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어야 한다고, 그게 정치를 하는 이들의 목적이자 의무라고. 그렇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빛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식별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5,9-10).

 

예수님께서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6)고 당부하시며, 만왕의 왕이신 당신께서도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27절)고 말씀하셨다. 이런 모습을 위정자들에게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는 사람을 위하는 일이니 사람을 보며 걷다 보면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이성민 의원의 마음을 현실에서도 느끼고 싶다. 드라마 ‘보좌관 시즌 3’보다 곧 집으로 올 ‘제21대 국회 의원 선거 공보물’이 더 기다려진다.

 

* 김연기 라파엘라 -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 사회학을 전공하고 방송 작가,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중고등학교사목부 교육 자원 봉사자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비롯한 가톨릭 가치를 담은 인성 교육 강의를 했으며,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의 복음화, 삶의 복음화' 등 문화, 선교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경향잡지, 2020년 3월호, 김연기 라파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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