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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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신앙교리: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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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1-14 ㅣ No.309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입문성사’(入門聖事)라고도 불리는 세례, 견진,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고 또 죄 때문에 그 귀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죄와 질병으로 아픔을 겪는 우리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당신의 치유와 구원 활동을 계속하시도록 치유의 성사를 마련해 주셨는데, 고해성사와 병자성사가 그것입니다.

 

 

고해성사의 유래와 발전

 

성경의 두 텍스트(마태 18,15-20; 요한 20,21 이하)에 기초하여 발전한 ‘고해성사’(告解聖事)는 교회의 일곱 성사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변화된 성사인데, 오늘날과 같은 형식이 되기까지는 약 12세기가 걸렸습니다. 교회는 6세기까지 여러 가지 ‘참회예식’을 개발하여 (특히 배교자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초기에는 이를 공개적으로 거행하다가 후에는 개별적으로 거행했습니다. 이러한 참회예식이 벌써 일종의 성사와 같은 형식을 지녔었는데, 여기에서 오늘날과 같은 고해성사의 형태가 발전했습니다.

 

고대교회의 참회예식이 거행된 배경으로 교회에서 실시해 오던 ‘파문(破門)의 원칙’을 들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법을 크게 어겨 인간의 마음에 있는 사랑을 파괴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하는 ‘대죄(죽을죄)’를 지은 사람은 교회공동체의 친교로부터, 즉 성찬의 식사로부터 근본적으로 제외되었는데, 그가 다시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앞에서의 ‘공개적인 화해’를 필요로 했던 것이고, 이런 현실적인 이유와 필요성에서 고해성사가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날 교회는 ‘중대한 이유가 있고 고해성사를 볼 기회가 없는 경우 자신이 대죄 중에 있음을 자각하는 이’는 ‘진실한 통회를 발하고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자각하면, 주님의 몸을 영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대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고해성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중죄를 자각하고 있는 이에게는 고해성사가 중요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가 성체성사를 위한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필수 준비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죄인 자신이 진실로 뉘우치고 고해성사에 참여하기를 노력하는 것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몸을 합당한 사랑으로 모시는 자세이지요. 하지만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받을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중한 죄를 짓지 않고 소죄를 지은 사람은 영성체 전에 꼭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미사 시작 부분에 이미 범한 잘못에 대한 성찰과 죄의 고백이 있고 사제의 사죄경이 바쳐지기 때문이고, 또 영성체 때 받아 모시는 주님의 몸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속죄의 봉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체를 모신 사람의 가벼운 죄들은 원칙적으로 성체성사를 통하여서도 용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체가 성체를 모신 사람의 사랑이 타오르게 하고, 사랑의 동력을 통하여 영적인 에너지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고해성사가 목표로 하는 ‘죄인과 하느님과의 화해’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죄인이 ‘구원됨’을 의미합니다. 신자들은 죄사함의 세례를 받고 새 생명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안에 남아있는 본성의 불완전함과 나약함으로 인하여 죄로 기울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세례 받은 사람에게 사욕이 남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한 싸움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싸움은 주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가는 회개를 위한 싸움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26항)

 

본성의 불완전성과 나약성이 그 바탕에 있다하여도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진리’와 ‘올바른 양심’을 거슬러 잘못을 범할 때 죄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는 하느님에 대해 모욕이 되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을 가져오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범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교회와 화해를 이루도록 하는 ‘회개를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하는 성사’가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의 모든 지체, 누구보다도 우선 세례 후 대죄에 떨어져 세례로 받은 은총을 잃고 교회의 친교에 손상을 입힌 사람들을 위하여 고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고해성사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의화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은총을 잃어버린 난파 후 두 번째 구명대’라고 소개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46항)

참회자의 행위: 통회와 고백과 보속

 

교회는 “죄인은 회개하기 위하여 기꺼이 다음과 같은 참회의 행위가 필요하다. 마음에는 통회가, 입에는 고백이, 행위에는 온전한 겸손과 유효한 보속이 있어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50항)고 가르칩니다. 먼저 참회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행위라고 할 ‘통회’(痛悔)는 양심성찰을 통해 지은 죄에 대해 아파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 죄를 미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고해성사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고백’(告白)은 진지한 성찰로써 알아낸 모든 죄를 열거하면서 말로써 아뢰는 것입니다. 죽을죄를 범한 사람은 고해성사 안에서 그 죄를 꼭 고백하고, 일상적인 잘못인 소죄까지도 고백하길 권장 받습니다. 고해성사가 우리의 양심을 기르고, 나쁜 성향과 싸우며,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를 받고, 성령의 생명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 주지는 못하는데, 이를 도와주는 것이 ‘보속’(補贖)입니다. 즉 보속은 죄인이 죄를 갚기 위해서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속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병자성사의 거행과 효과

 

“앓는 이들은 고쳐 주어라”(마태 10,8)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사도 시대 교회는 앓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고, 원로들은 앓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야고 5,14-15 참조). 이렇게 시작된 병자성사는 교회가 특별히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베풀어졌습니다. 이 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이 성사를 받는 적절한 시기는 이미 신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때로 여겨집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14항)

 

이미 병자성사를 한번 받은 이라도 그가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게 되면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환자가 중한 수술을 받기 전에 병자성사를 받는 것은 합당한 일이고, 급격히 쇠약해지는 노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자성사는 가정에서나 병원이나 성당 어디에서든 전례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거행되는 것이지만, 교회는 (가급적 먼저 고해성사를 베풀고, 병자성사 뒤에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순서로) 주님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미사 중에 거행하기를 특별히 권장합니다.

 

“병자성사의 근본적인 은총은 중병이나 노쇠 상태의 어려움들을 이겨 내는 데에 필요한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입니다. 이 은총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마귀의 유혹, 곧 죽음 앞에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20항).

 

병자성사는 일차적으로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베풀어지는 성사이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하는 성사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혼과 육체의 병을 치유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그분께서 마련해주신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더 열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받읍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1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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