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수도 ㅣ 봉헌생활

봉쇄의 울타리에서: 예수님 때문에 미쳤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21 ㅣ No.622

[봉쇄의 울타리에서] 예수님 때문에 미쳤다

 

 

2018년 연 피정을 하던 어느 날, 미사에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라는 복음 말씀이 낭독되었다. 피정 지도 신부님은 강론을 하시면서 대뜸 우리에게 물으셨다. “수녀님들은 ‘미쳤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너 미쳤어? 어떻게 이런 곳을!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친구 동생의 인도로 난생 처음 봉쇄 수도원의 착복식을 보게 되었다. 그 뒤 반년이 넘도록 수도원과 친분을 나누며 성소를 식별한 뒤에 나는 입회할 마음을 굳혔다. 가족과의 정이 유난히 깊었던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입회 전에 수녀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하루를 정해 온 가족이 수도원을 방문했다.

 

봉쇄 수도원이 생소하신 분들을 위하여 조금 설명을 드리자면, 봉쇄 수도원의 성당과 면회실은 격자창을 사이로 외부와 구분되어 있다. 거의 모든 이가 받는 첫 인상은 마치 ‘감옥’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남이 깊어지면 오히려 “과연 누가 갇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 가족도 내심 놀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남은 자연스러웠고 엄마도 끝까지 함께하시며 의연한 태도를 보이셨다. 하지만, 막상 헤어질 때는 경상도 토박이 말씨로 “3년만 가르치가 보내 주이소.” 하셨다. 당신 딸을 이 ‘감옥 같은 곳’에 보내고 싶지 않은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깊이 느껴졌다. 수녀님들과 헤어져 면회실에서 나왔을 때 엄마는 대뜸 “니 미칬나? 우째 이런 곳을!” 하며 기가 막힌 표정을 못내 감추지 못하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의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딸이 좋다고 하니 엄마는 수도원 입회 물품까지 함께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딸이 원한다니까 예비 신자 교리반도 신청하셨다. 내가 입회한 뒤 엄마가 세례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 이렇게 시작된 엄마의 신앙 여정에 주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 몇 년 동안 엄마는 면회를 오실 때마다 눈물을 참 많이 흘리셨다. 그러나 종신 서원을 거치면서 수도원의 전례와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시고는 무척 많이 변하셨다. 엄마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수녀님, 우째 우리 집안에 이래 수녀가 다 나왔을꼬!” 목소리는 기쁨으로 격양되어 있었다. 당신 딸이 그렇게 자랑스러우셨나! 엄마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토록 반대하시더니

 

나이 쉰에 남편을 잃은 엄마는 자식들만이 당신의 행복이셨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시다. 그만큼 ‘핏줄’에 대한 욕심도 많으셨다. 나에게는 신앙심이 꽤 깊은 남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가 있어도 입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뜻대로 신앙이 깊은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지만 몇 해가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동생 부부는 입양의 뜻을 굳혔다. 하지만 엄마가 극구 반대하셔서 몇 년 동안 가슴앓이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엄마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것이다. 몸소 입양원에 가시겠다고 하실 만큼 적극적으로 나오신 것이다. 마침내 2012년 4월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첫 아이를 품는 기쁨을 허락하셨다. 동생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도원에 찾아와 고모 수녀에게 5개월도 채 안 된 예쁜 여자 조카를 가장 먼저 만나는 행운을 안겨 주었다.

 

이튿날 엄마는 시골에서 첫차를 타고 아들네를 방문하셨다. 아이를 보는 순간 엄마는 측은한 마음에 “아이고, 네가 우리 엄씨 집안에 올라꼬 이리 되었나!” 하시며 우시더란다. 이 아이가 열 번째 손주고 그 뒤 남자 아이를 더 입양해 열한 번째 손주를 보셨다. 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친손주보다 더 예뻐! 예뻐서 죽겠어!” 하신다.

 

“그토록 반대하시더니 어떻게 그리 쉽게 마음이 바뀔 수가 있어요?” 하고 여쭈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러다간 내 자식들이 평생토록 ‘엄마, 아빠’ 소리를 못 듣겠다 싶은 생각이 들으셨단다. 우리 엄마는 그 무엇보다도 늘 자녀들의 행복을 바라셨다.

 

그 뒤로 면회를 오실 때마다 남동생 가족과 함께 오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시는 엄마는 하느님을 ‘아부지’라고 부르며 “암것도 몰라!” 하시면서도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다. 이토록 큰일을 이루신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우리 각자의 부르심은 모두 행복에로 부르심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정의 동반자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어머니보다 자녀들의 필요를 더 잘 아는 존재가 또 있을까? 좋으신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영원한 행복이신 하느님 안에 쉬기까지 결코 눈길을 떼지 않으실 것이다.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씀이 떠오른다. “별을 바라보고 마리아를 부르십시오!” 이분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다. “니 미칬나?”라던 이 말씀이 내 삶 안에서 꼭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되다, 예수님 때문에 “미쳤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

 

* 엄미영 성체의 마리아 – 마르가리타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 수녀.

 

[경향잡지, 2019년 5월호, 엄미영 성체의 마리아]



2,18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