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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4: 제5차 FABC 총회와 아시아의 통합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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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20 ㅣ No.474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4) 제5차 FABC 총회와 아시아의 통합사목


‘교회 중심’을 넘어 ‘하느님 나라’ 중심 공동체 추구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이하 FABC)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복음 선교를 위해 삼중대화를 제창했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대화 정신을 창조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삼중대화라는 바탕 위에, FABC가 아시아적 교회를 위해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제안한 통합사목과 기초교회공동체 운동의 의미를 소개한다.

 

- 2009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파 제5차 총회 참가자들의 모습. 아시파는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천명된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탄생됐고, 아시아 소공동체 정착의 구심점이 됐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제5차 FABC 반둥총회와 ‘반둥회의’

 

FABC는 1974년 대만에서 열린 제1차 FABC 총회에서 ‘삼중대화’를 공식 선언했고 그 이후부터 복음화와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삼중대화’를 강조해오고 있다. 제1차 총회 이후 또 하나의 변곡점이자 아시아 교회의 ‘이정표’가 된 회의가 있었는데, 바로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FABC 제5차 총회다. ‘반둥총회’라고 더 잘 알려진 이 회의에서는 지역교회 건설을 교회되는 새로운 길 또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주교들이 ‘아시아적 지역교회 건설’을 힘주어 말한 대목을 눈여겨봐야 한다. 반둥총회가 열린 1990년은 반둥에서 ‘미·소 진영’에 속하기를 거부한 세계 29개 나라들이 1955년 반둥에 모여 열었던 ‘반둥회의’가 35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한 세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반둥총회는 이 역사적인 반둥회의와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반둥회의에서는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신생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이 ‘제3의 길’을 모색했으며 후에 ‘비동맹그룹’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대항해 반식민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반둥에 모인 아시아 주교들도 당시 총회를 ‘반둥총회’라고 즐겨 불렀다. 곧 아시아 교회의 ‘자기이해와 존재방식’은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식민지를 겪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따라서 진정한 지역교회로서 ‘아시아의 교회’가 되는 것과 그것의 과제인 삼중대화의 결과로 이야기되는 인간해방과 인간발전, 토착화, 종교간 대화는 ‘탈식민화’(decolonization) 문제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었다. FABC 문헌과 아시아 신학은 탈식민지 문제야말로 아시아 교회의 정체성을 찾는 데서 가장 절박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본 것이다. 

 

아시아 주교들이 ‘지역교회’를 강조하게 된 데에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추가된다. 당시 반둥총회에 참석한 인류복음화성 장관 요제프 톰코 추기경은 기조연설을 통해 아시아의 신자 수가 겨우 2.5 퍼센트이며 개종자가 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의 원인을 아시아 주교들이 개종을 마치 변절자를 만드는 일로 간주하거나 아예 개종 활동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어마어마한 비판이자 날선 비수였다. 톰코 추기경의 이 같은 ‘꾸중’에 대해 주교들은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바티칸의 지역교회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이래저래 ‘반둥총회’는 삼중대화와 지역교회의 의미를 아시아 주교들에게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둥총회의 의의와 아시아의 통합사목

 

FABC 전문가이자 선교자문인 제임스 크루거(James Kroeger) 신부에 따르면, 톰코 추기경의 비판으로 ‘내상’을 깊이 입은 주교들은 ‘아시아 교회에 대해 뭘 안다고 이래라저래라 하는가’라는 불만도 토로했지만 한 주교는 톰코 추기경에게 다가가 “우리는 선교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시아적 방식’으로 한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사실 1974년 1차 총회를 ‘복음화’로 주제를 잡고 ‘삼중대화’라는 아시아적 선교관을 명확히 한 뒤 20여 년간 복음선교에 대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그 동안에 나온 문헌이 입증한다. 

 

아시아 주교들은 지역교회가 교계라기보다는 더 넓은 함의를 갖는 교회론으로서, 대화, 참여, 평등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친교의 공동체’(communion of communities)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평등의 공동체는 교계적 질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이며 교계는 이를 위해 봉사하는 지위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반둥총회에서 아시아 주교들은 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신학적 근거로 삼아 기존의 ‘교회 중심적’(ecclesio-centric)인 모든 교회론을 넘어서는 ‘하느님 나라 중심적’(regno-centric) 공동체론을 제창한 것이다. 

 

아시아 신학자 피터 판(Peter Phan)은 이를 두고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라면서 교회론에 있어 일대 혁명적인 변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아시아 신학자들은 1970년대 중반 이래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헌신하는 것’에서 찾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혁명적 교회론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FABC는 교회가 하느님 나라와 등치될 수 없으며 선교는 단순히 교회를 지역적, 제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복음화는 종교문화가 다원적인 아시아 상황에서는 삼중대화라는 형태를 띠는 것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다. 

 

하느님 중심의 교회론의 ‘대안적’ 특성은 앞서 언급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시아 교회가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데서 찾아진다. 그 공동체 안에서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은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 공동체론의 또 하나의 대안적 특성은 참여적 교회(participatory Church)로서 구성원 모두가 각기 교회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친교의 공동체상은 잘 알려진 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대표적 교회론의 하나로서, 그러한 점에서 아시아 교회론은 공의회의 교회론을 계승하고 있다. 

 

나아가 ‘참여적 교회’라는 특성은 이 친교의 교회론에 있어 교회 주체의 평등한 참여라는 측면을 더욱 강조한 것으로, 반둥총회의 탁월한 결실은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로 기초교회공동체(Basic Ecclesia Communities, BEC) 또는 소공동체(Small Christian Communities, SCCs)를 공식 제안했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공의회 교회론을 아시아 지역에 맞게 구체적인 교회의 모델을 제시했으며 뒤이어 이를 사목적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했는데, 이를 ‘아시아의 통합사목’(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AsIPA)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소공동체 확산’을 중심으로 하는 이 기획은 몇몇 교구에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직자의 독점과 지역, 이웃과 차단됨으로써 그 동력을 잃고 만다.

 

아시파 제5차 총회에 참가한 강우일 주교(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한국 참가단이 아시아 각국 신자들과 함께 그룹을 이뤄 복음나누기를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회의 벽을 넘어서는 공동체

 

FABC는 이미 1980년대에 기초그리스도인공동체(BCC)/기초교회공동체(BEC)에서 기초이웃공동체(Basic Human Community, BHC)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1985년 11월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종교간대화 주교연수’(BIRA IV/2)에 참가한 주교들은 제안문에서 “‘기초그리스도인공동체’에서 ‘기초이웃공동체’ 건설로 나아가야 하며, 그럴 때에야 아시아 교회는 진정으로 모든 이를 위해 봉사하는 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BCC에서 BHC로의 이행은 단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이웃’ 공동체라는 단어의 자리바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반드시 아시아의 이웃, 곧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이들과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일하며, 점점 더 공적 영역으로 공동체를 확장해감으로써 ‘모든 이를 섬기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매우 실천적인 교회론과 사도직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개최된 FABC 10차 총회에서도 기초인간공동체를 “그리스도인과 타 종교인들이 더불어 사는 곳”으로서 “아시아 (교회)의 방법론”으로 규정하면서 그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기초이웃공동체는 BEC나 SCCs처럼 ‘말씀’으로 끝나거나 교회 테두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만나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 또는 지역에 적용할 것인가는 많은 연구와 실천이 필요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반둥 총회에서 규정한 ‘새로운 양식으로서의 교회’는 변화하는 상황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한 교회의 쇄신이라는 측면에서도 게토화되는 모임이 아니라 ‘교회 담장을 넘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새롭게 이해되고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5월 19일, 황경훈(우리신학연구소 소장 ·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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