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생각하는 신앙: 자유로울 의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9 ㅣ No.1116

[생각하는 신앙] 자유로울 의무

 

 

자유의 교육학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양성 수업을 받던 저는 유학이라는 계기로 프랑스의 양성 과정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던 파리가톨릭대학교 내 가르멜 신학원은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자유의 교육학’이 그것입니다. 저의 영성 동반자이셨던 프랑수아 부스케 신부님께서 첫 면담 때 저에게 해주신 말씀은 의미심장했습니다. “뽈(바오로의 프랑스식 표현), 너는 이 신학교에서 자유롭단다. 단 하나의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울 의무란다.”

 

저는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저는 자유로운데, 자유로워야 할 의무라니요! 그런데 신부님의 그 아리송한 말씀을 깨닫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맘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공허한 마음이 생겼고, 이대로 살다간 사제의 삶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겠다는 위기감까지 들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주어진 자유를 잘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실제로는 자유롭지 못한 저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유란 완성된 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견하고 성장시켜야 할 무엇이었습니다. 수동적이고 틀에 박힌 생활방식에 익숙했던 저는 새로운 환경에서 영적인 사막을 겪으며, 영성지도 신부님의 도움으로 저의 생활 전체를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지어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향한 탐험이 시작된 것이었지요.

 

 

다른 차원의 자유

 

저는 이제 신학교에 머물며 후배 신학생들이 제가 겪은 진정한 자유를 향한 탐구를 잘 하고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가도록 동반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교육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유롭지 못하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도, 그 부르심에 자신의 응답을 드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거나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그것은 인격적 관계 안에서의 자유이며, 사랑으로 일깨워지고 성장하는 자유입니다.

 

“뽈, 너는 자유롭단다.” 여기서 자유는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자유이며,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저는 ‘자유의 교육학’을 통해 그동안 자유롭지 못한 저 자신을 발견하였으며, 저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 기대, 나만이 만들어놓은 틀, 고착된 생각, 그릇된 관념들…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제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아팠지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아주 조용히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야, 나를 따라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겠니?” 저의 온 삶을 통해 들려온 주님의 부르심, 교회를 통해 전해진 그분의 강한 사랑… 그 부르심은 거센 바람도, 지진도, 불도 감출 수 없는 분명하고 또렷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 앞에서 저는 진정으로 자유로움을 체험하였고, 그 부르심에 ‘예’ 하고 응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로 초대하시는 하느님

 

모든 신앙인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유롭게 그분께 응답하도록 초대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종’이 아닌 자유로운 ‘자녀’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교육 방법 역시 ‘자유의 교육학’입니다. 하느님은 각자를 자신의 고유한 삶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숙한 자녀로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당신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에 온전히 자유롭게 응답하는 자녀의 사랑을 바라십니다.

 

이제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정말로 자유로운가요? 신앙을 통해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가요? 나만을 향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 부르심에 나만의 응답을 드릴 수 있을 만큼 나는 자유로운가요? 나는 그러한 삶을 꿈꾸고 있나요?

 

[외침, 2018년 2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1,24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