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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계획의 오류 - 사랑의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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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5 ㅣ No.809

[심리학이 만난 영화] 계획의 오류 - 사랑의 블랙홀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 날씨는 아주 화창하다. 눈, 비 소식도 없다. 새해가 되면 텔레비전에서 어김없이 틀어 주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성촉절[주님 봉헌 축일])의 ‘필코너스’(빌 머레이)는 기상 캐스터다.

 

오늘은 성촉절 행사를 취재하러 가는 날이다. 성촉절은 뚱뚱한 다람쥐처럼 생긴 설치 동물 그라운드호그를 이용해서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예측해 보는 전통 축제다.

 

필은 방송국 직원에게 취재만 하고 바로 돌아와서 저녁 생방송을 진행하겠다고 다짐한다. 그가 간 곳은 펜실베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인 펑추토니다. 이곳에는 ‘펑추토니 필’이라는 애칭을 가진 유명한 그라운드호그가 산다.

 

전설에 따르면, 펑추토니 ‘필’은 겨우내 동면하다가 2월 2일에 땅굴에서 기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굴에서 나오다가 자기 그림자를 보게 되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추운 겨울이 6주나 더 이어진다고 한다. 반대로 자기 그림자를 못보고 굴 밖으로 완전히 나오면 세상에 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 진행자들은 펑추토니 필이 자기 그림자를 봤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앞으로 6주간 겨울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상 캐스터 ‘필’은 이런 허무맹랑한 구닥다리 축제를 취재한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 그라운드호그가 자기 그림자를 봤다고 추운 날씨가 계속될 거라니, 어이가 없다.

 

그는 취재가 끝나자마자 펑추토니를 떠나 방송국으로 간다. 하지만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폭설이 내려 도로가 끊긴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필’은 펑추토니로 돌아가 하루를 더 묵는다. 날이 맑을 것이라던 기상 캐스터 ‘필’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혹한이 지속될 것이라는 그라운드호그 ‘필’의 예측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미래 예측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한다. 심지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타인의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이다. 사주팔자나 관상, 손금이나 타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래를 점친다. 여론 조사를 실시해 미래의 대통령을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세계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예측한다.

 

직업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이도 있다. 바로 기상 캐스터다. 아침저녁으로 텔레비전에 나와서 앞으로의 날씨를 알려 준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대중에게 날마다 공표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사람들이다. 내일의 날씨는 물론, 한 주, 한 달, 심지어 한 해의 기상도 전망해 준다.

 

기상 캐스터나 점쟁이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며 산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계획한다. 이를테면, 토요일에 해야 할 일이 없고 날씨가 화창할 것이라고 예상하면, 나들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계획의 오류

 

흥미로운 것은 앞날에 대한 예측을 토대로 한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호주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의 하나인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는 2007년에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57년에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 결정이 내려질 당시, 총 700만 달러의 비용으로 1963년까지는 모든 공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는 크게 빗나갔다. 실제로 소요된 건축비는 총 1억 2백만 달러가량 되었고, 197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개관할 수 있었다. 처음 예상했던 비용의 15배 정도가 추가로 들었고, 공사 기간도 10년이나 길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계획을 완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을 추정할 때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계획의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한다. 계획의 오류는 오페라 하우스의 건설과 같은 대규모 사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작은 계획을 세울 때도 일어난다. 휴가를 가기 일주일 전까지는 일을 쉽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휴가를 떠나는 날 새벽까지 밤새워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새해 계획의 오류, 작심삼일

 

우리가 연례행사처럼 범하는 계획의 오류가 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신년 계획을 세운다. 새로운 1년이라는 미래의 도화지에 자신의 계획을 새로운 마음으로 그려 보는 것이다. 날마다 30분씩 영어를 공부하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하루에 이 정도 시간을 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경험해 보았다시피 신년 계획은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다. 한 해가 지나고 나면 새해 계획 중에 제대로 실천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지박약이라고 자신을 비난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한다.

 

계획의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때 예상외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일이 예측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과정만을 머릿속에 그리며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대면하는 현실은 예상외의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중간시험을 망쳤으니 기말시험 기간에는 공부만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는데, 군 복무 중이던 절친한 친구가 시험 전날에 특별 휴가를 받고 자취방에 나타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울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사전에 예측하여 이를 모두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계획에는 늘 오류가 따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때 이런 오류의 범위를 너무 좁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계획대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신이 아닌 이상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정확히 예측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전문가도, 심지어는 똑같은 일을 이전에 수행했던 사람들조차 계획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계획의 오류는 쉽게 줄이기 힘들다. 사람들 대부분이 계획의 오류를 범한다.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여 계획을 짜도 계획의 오류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신년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하여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고 비난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계획을 실천한지 삼 일도 되지 않아서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이 작심삼일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계획의 오류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지난날에 자신이 비슷한 계획을 세웠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참고하는 것이다. 그동안 영어책 한 권을 보는 데 3개월이 걸렸다면 이번에 비슷한 분량의 다른 영어책을 보는 데도 거의 3개월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지난날의 결과를 무시하고 이번에는 한 달 안에 끝내겠다고 계획을 세우면, 조만간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희망

 

그렇다면, 계획의 오류가 없는 삶은 행복할까? 폭설 때문에 펑추토니에서 하룻밤을 묵은 ‘필’에게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덕분에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롭게도 예측하지 못했던 폭설 때문에 필이 받았던 스트레스보다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진 뒤 받는 고통이 더 크다.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게 된 순간 필은 곧 절망에 빠진다. 미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불확실성은 두려움과 불안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래 예측의 오류가 사라지는 순간, 미래의 희망도 함께 사라진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우리를 작심삼일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끔은 희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이유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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