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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울대교구 역대 교구장: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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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14 ㅣ No.948

역대 교구장 (1)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Bruguiere, 소蘇) 주교(프랑스, 재임기간 : 1831년~1835년)

 

 

올 한 해 동안 서울대교구 역대 교구장에 대해 아주 작은 퍼즐이라도 함께 찾아보고, 그분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직접 찾아보고, 생각하고, 공감하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서울대교구가 있기까지 헌신하신 교구장들의 삶이 주는 울림을 전합니다. 우리가 찾은 서울대교구 첫 번째 교구장님은 소 브뤼기에르 주교님입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조선의 교구민에게 보내신 첫 번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습니다. 천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자비로우신 천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선교사들과 주교 한 명을 보내십니다. 이 특은을 받은 자가 바로 저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서 살다가 죽기 위해 곧 출발합니다.”

 

이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소원과 주교님의 마음이 합쳐지는 그 순간이고, 조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한처음이 된 순간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정해져 있는 때가 있고 그것을 통해 큰일을 시작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조선으로 가야겠다는 주교님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알려진 길이 전혀 없다. 아무도 주교님과 동행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들이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이러한 말들입니다. 그 말은, 자신도 가지 않지만 아무도 보내지 않겠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주교님은 이들에게 자신의 여행기 안에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우리가 조선 사람들을 만나러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로 우리를 맞이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서 그들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그리고 교회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누구라도 가야 할 때 우리는 효율성을 따지고 가능성을 따지고 그 길의 마지막에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그 계산이 치밀해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설득당합니다. 바로 그럴 때마다 저는 하느님 강생의 신비를 생각합니다. 천천히 천천히.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를 묵상하면서, 186년 전에 우리나라에 초대 교구장님을 보내주신 거룩하신 성교회의 관심과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길 없는 길을 만들어 어떻게든 자신의 사목지에 입국하려다가 선종하신 브뤼기에르 초대 교구장님을 기억합니다. 누군가가 그 길을 가셨기에 그 길을 따라 두 번째, 세 번째 교구장님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셨음을 또한 기억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주교님.

 

· 1813년 12월 1일 서품.

· 1829년 6월에 태국에서 보좌 주교로 성성.

·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 설정과 동시에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

· 1835년 10월 조선 입국 도중에 과로와 병으로 만주의 한 교우촌에서 선종.

·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이 되는 해에 그 유해가 용산 성직자 묘지로 이장 안치.

 

[2018년 1월 14일 연중 제2주일 서울주보 4면, 이도행 토마스 신부(화(花)요일아침 예술학교 교장), 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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