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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내 친구 정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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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21 ㅣ No.1021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내 친구 정일우

 

 

신학대학을 중퇴한 후, 적지 않은 나이로 입학한 예술학교의 쉰내기 시절 일입니다. 다큐멘터리가 예술이 아니라고 룸메이트와 밤새 논쟁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생각이 어떠한들 무슨 상관이랴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간 기억이 납니다. 결국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자기 신념을 지키며 삶의 매순간을 훌륭하게 살아간 이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야 말로 진짜 예술이 아니겠냐며 그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새벽녘에야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예술에 대한 생각도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온전히 살아낸 주인공들을 그린 영화를 볼 때면 그 시절 생각이 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역시 ‘삶의 예술가’이자 ‘사랑의 예술가’였던 고(故) 정일우 신부의 삶을 그린 「내 친구 정일우」(김동원, 2017, 다큐멘터리)입니다. 정일우 신부의 3주기를 맞이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지난 겨울 호에서 소개한 바 있는 김동원 감독이 오랜만에 내어놓은 신작입니다.

 

영화는 정일우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화면이 편지형식으로 짜여진 네 편의 내레이션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첫째 편지는 후배 예수회원이 선한 표양이던 선배에게 보내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로 정일우 신부의 영성적인 모습이 그려집니다. 영성지도를 부탁했던 후배들, 함께 지낸 신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제로서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되살아납니다. 후배들이 기억하는 정일우 신부는 누구보다도 성소를 소중히 생각했던 선배였습니다. 다가오는 부르심을 그저 ‘살아버리라’고 말하면서도 성소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느님 앞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하는 영성가였습니다. 그리고 한계에 부딪히고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함께 눈물을 흘리며 어차피 우리는 이리 저리 돌려가며 숨기려고 애써보지만 결국 하느님 앞에서 부족함을 숨길 수 없는 깨어진 꽃병이라고 말하며 위로하는 사랑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또한 파격적인 분이었습니다. 공동체 미사는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는 잔치였습니다. 비신자 주민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면서도 그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제도도 관습도 정일우 신부를 속박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로 예수처럼 살았습니다.

 

둘째 편지의 발신인은 빈민운동의 도반이었던 고(故) 제정구 의원의 부인입니다. 청계천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던 시절 이야기와 복음적 공유경제 공동체의 성공적 사례가 된 복음자리 공동체 이주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정일우 신부는 천주교 도시빈민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제정구 씨와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습니다. 정일우 신부는 1973년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무언가 그들에게 해주려하지 않고 다만 그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마을청년들에게는 좋은 선배이자 선생, 술친구였고 아이들에게는 소꿉친구였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던 중 철거가 시작되자 추기경의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이주해 집을 짓고 마을 사업을 벌여 빚을 갚고 자립에 성공합니다. 정일우 신부는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공동체가 자립할 수 있게 되고나서 정일우 신부는 그곳을 떠나 상계동으로 향합니다.

 

셋째 편지는 상계동 철거민들의 투쟁현장에서 정일우 신부와 함께 했던 김동원 감독이 자신의 기억을 꺼내어 놓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자신에게 자발적, 복음적 가난을 가르쳐준 스승에게 그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 마지막 편지는 도시빈민운동에 평생을 바친 정일우 신부가 농촌 문제로 눈을 돌려 귀농하여 살던 시절이 그려집니다. 정일우 신부는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농촌에 정착하여 유기농업의 싹을 틔웁니다.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려지는 정일우 신부의 마지막은 심각한 치매에 걸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던 신부가 어린애처럼 짜증을 내는 모습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에 빠질지 모르는 교만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깨진 꽃병인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영원하리라 착각하고 살아가는 교만은 우리를 탐욕스럽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풍요롭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최빈국에서 세계적으로도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점점 가난한 자들의 자리는 사라져 갑니다.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살고 아이들도 그렇게 모여서 자랍니다. 연말연시나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가난의 전시장에서나 가난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를 누리는 것은 세습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믿고 그저 내가 가난하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낙오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달려갑니다. 점점 가난한 자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는 이 사회에서, 억울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캄캄한 현실 속에서 감독은 정일우 신부를 그리워합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변호해야 하는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냐는 감독의 외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일우 신부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자들 편에서 그들을 가장 우선 선택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삶의 표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 방법은 당신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발끝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로 알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함께 그들과 같은 땅을 딛고 그들의 이야기를 몸으로 들어 발끝까지 가득 채우는 삶이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발끝으로 듣고 공감하고 할 수 있는 지지와 연대를 하는 것이야 말로 정일우 신부가 이 세상에 틔운 싹을 우리 사회 속에 키워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여름호(Vol. 38), 이창민 세례자 요한(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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