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18,19-22 사랑의 공동체와 용서 (2017.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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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06-21 ㅣ No.2176

여러분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뜻을 모아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둘이나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범죄행위를 모의하면서 뜻을 모아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실 리는 없겠다. , 한 사람이 기도하더라도 그것을 들어주시지 않을 리도 없다.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코 뜻을 모을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예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뜻을 모으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마련이다. 오직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하는 사람들만이 변함없이 뜻을 모을 수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둘만 모이면 서로 다투지만 하늘나라의 제자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결코 서로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뜻을 모아 기도하는 경우에 그들의 뜻은 곧 아버지의 뜻이다.

 

두 사람은 사랑의 결합을 상징한다. ‘이름은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 드러나는 사건을 의미한다. ‘예수의 이름은 예수가 이 세상에 드러나는 사건이며, 구체적으로는 예수의 제자를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예수의 사랑은 보이는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하는 일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 , 세상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할 때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일하겠다고 약속한다. ‘은 성령을 통한 사랑의 일치, ‘은 신망애 삼덕을 상징한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주님, 형제가 나에게 계속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가 대답하였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시오.”

 

용서를 적어도 7×70 = 490 번까지 하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을 말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그에 운율을 맞추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대답한 것뿐이다. ‘일곱은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베드로가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하느님 마음에 흡족할 것 아니겠느냐고 나름대로 추측하였을 만도 하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는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무한하게 용서한다. 의무적으로가 아니라 성령에서 오는 신적 본성에 따라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늘 남에게 부당한 일을 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하였다면 그것은 내가 우연히 그의 피해자가 된 것일 뿐이다. 남에게 잘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가고 있으되 남에게 잘못을 당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제자는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원한을 품는 대신에 그를 동정한다.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을 아무리 용서하려고 하여도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을 이미 용서한 줄 알았는데 은연중에 미워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일어나는가 하면 어떤 피해에 대하여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람은 남을 쉽사리 용서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결국 남의 잘못을 완전하게 용서하는 힘은 오직 하느님의 영인 성령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의 대답은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한다.

 

베드로는 율법적 질문을 하였는데 예수는 영적인 답변을 주었다. 전형적인 우문에 현답이다. ‘형제들은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의 형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 예수의 제자도 미워한다. 이 때문에 예수의 제자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면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해야만 한다. 사람으로서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느님의 성령은 바로 이런 위대한 일을 하는 능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복된 소식, 곧 복음(福音)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이다. 세상의 스승들이 가르치는 데데한 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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