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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를 찾아: 이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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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5 ㅣ No.78

[배움터를 찾아] 이콘연구소


기도와 묵상으로 그린 거룩한 그림, 이콘

 

 

그리스어로 ‘모상’ 또는 ‘형상’을 뜻하는 이콘(아이콘, icon)은 신앙의 대상과 성경, 교리의 내용을 눈에 보이게 표현한 성화를 말한다. 초대 교회 시절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문맹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성화의 역사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우상 숭배의 위험 때문에 회화적인 표현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여러 민족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생기면서 언어와 사고방식에 차이가 나타났다. 글을 모르는 이들도 많아, 성경과 교리를 오류 없이 전달하려고 회화의 방식을 조심스레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특별한 기준 없이 다양하게 묘사하다가 성화상 파괴 논쟁을 겪고 나서 세속적인 미술과 구분하는 기준이 만들어지고 정리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콘이다.

 

이러한 전통은 1054년 동방과 서방 교회의 분열로 변하기 시작했다. 서방 가톨릭교회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육감적인 표현이 허용되었다.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표현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성화가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영적인 깊이는 약화하고 말았다.

 

이에 반해 동방 교회는 변함없이 초기의 형태 그대로를 간직해 왔다. 그래서 ‘이콘’이라고 하면 동방 교회의 교회 미술만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초기 교회의 정신을 되찾으려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성화에서도 영적인 아름다움을 찾게 되면서 이콘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이콘연구소(이하 ‘연구소’) 소장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에게 들은 이콘의 역사를 요약한 것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신학교에서 이콘을 전공하고 국내 최초로 이콘 교사 자격증까지 받은 장 신부는 이콘이 다른 교회 미술 작품에 비해 쉽게 이해되는 성화는 아니라면서 이콘에 대한 교회 전반의 오해와 몰이해가 안타까워 그 역사를 먼저 얘기한다고 일러 주었다.

 

 

이콘에 대한 오해와 이해

 

한국의 교회 미술가 중에는 이콘이 동방 교회의 전유물이고, 옛 형태를 ‘그대로 베끼는’ 단순한 작업이라며 배척하는 이도 있다. 심지어 이콘을 만화라고 하거나 미술가 협회의 회원 가입도, 전시회 참여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장 신부는, 성화의 역사를 거론하며 결코 동방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교회가 정한 규범과 틀 속에서 그리지만, 이는 그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잊힌 초기 교회의 성화 전통을 다시금 되찾고 살려 내려는 이유에서란다. 고대 전통에 따라 그리는 것일 뿐 그리는 이마다 다른 영성과 기도가 투영된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 이콘이 창의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잘라 말한다. “초기 교회의 미술은 오로지 작가 개인의 예술적인 창작 의지에서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성경과 교리를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른 이들,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교육하고자 생겨났기에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보다 성경과 교리의 내용을 충실히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알지 못한 채 교회 미술은 창의적이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좁은 시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미술은 일반 미술과 달리 성경의 말씀에 충실해야 하며, 교회가 정한 원칙과 전통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이콘의 세계

 

장 신부의 말을 듣고 보니 이콘에는 인물의 배치와 순서, 손동작, 색의 사용 등 엄격한 규칙과 상징이 드러난다.

 

첫 번째는 방향, 곧 배열의 순서인데 좌우를 구분한다. 오른쪽은 천국을 향하는 것으로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고, 왼쪽은 서쪽과 죽음, 지옥을 뜻한다. 오른쪽은 중심 다음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른쪽은 성모님의 자리다. 또한 십자가의 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도록 배치해야 한다.

 

색의 사용에도 원칙이 있어서, 이 원칙만 알면 이콘을 보고 많은 세부 정보를 알 수 있다. 흰색은 기쁨과 영광을 상징하는데 그 영광을 더 드러내고자 할 때는 금색을 사용한다. 금색은 웅장함과 신적인 힘 등을 상징한다. 녹색과 갈색은 땅과 식물을, 하늘색은 하느님 나라의 표지와 명상을 나타낸다.

 

인물을 그릴 때도 색이 적용되는데, 흰색의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한 변모의 장면을 나타낸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옷을 입었다면 수난 전의 모습이고, 흰색과 금색 옷으로 묘사된 예수님이라면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마찬가지로 성모님이 붉은색과 푸른색 옷을 입었다면 지상 생활을 묘사한 것이고, 흰색과 푸른색은 천상 영광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적인 감정, 곧 희로애락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모님이 머리를 드러내서도, 아기 예수님이 나체로 표현되어서도 안 된다.

 

산과 나무 등 배경을 상징적으로 최소화하고 금박으로 대체하는 것도 원칙이다. 원근법이나 현실적 묘사를 하지 않고 도식화하는 것이나 인물들은 천상의 모습을 표현했기에 손과 발로 남녀 구별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있다.

 

이런 원칙은 세속적 요소가 섞일 것을 염려해 세속 그림과 구분되는 기준을 만든 것이고, 그 기준에 따라 천 년 이상을 전해 내려온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콘은 오랜 시간 관조하고 기도하며 묵상해야 하는 성화다.

 

 

연구소의 교육 과정은

 

지난 3월 31일 서울 중림동 가톨릭출판사 5층에 있는 연구소를 찾았다. 65평 규모의 연구소는 강의실이자 작업실이요 이콘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보유한 종합 자료실이다.

 

2003년부터 가톨릭 미술 아카데미 이콘반에서 이콘 연구와 제작 실습을 함께해 온 장 신부와 수료자들이 설립했으며, 2011년 서울대교구 평신도 단체로 공식 인정도 받았다. 그동안 묵묵히 교회 정신에 입각한 이콘 작가를 양성하면서 교회미술 정신을 널리 알리고 보급하는 데 앞장서 왔다.

 

연구소에서는 3년 과정으로 성화 작가를 양성한다. 교회 미술사와 이콘의 역사, 종류별 특성과 상징을 배우고, 이콘의 독특한 선 연습과 목판을 준비하고 만드는 데만 1년이 걸린다. 기본 채색과 연습에 다시 1년, 그리고 3년 차에야 비로소 주제별 이콘을 제작하고 금박 작업을 한다. 지금까지 15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지금도 100여 명의 연구생이 배우고 있다.

 

연구생은 해마다 2월 세 번째 토요일에 기본 데생 테스트를 거쳐 뽑는다. 미술적인 재능이 기본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입학 기준은 신앙이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정교회와 성공회 신자도 가능하다. 60세 미만이라는 나이 제한도 있다.

 

 

이콘은 ‘슬로우 페인팅’이다

 

여러 공간으로 나뉜 연구소에서는 40-50명의 연구생이 스케치하고, 또는 색을 칠하며 장 신부의 지도를 받고 있다. 목판에 회칠을 하는 이도 눈에 띄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보통 이콘 한 점을 그리는 데 여섯 달 정도가 걸린다. 목판에 아교를 먹이고 천을 입혀 회반죽을 올리는 데 한 달, 보석과 돌을 갈아 달걀노른자와 백포도주에 개어 채색하는 데 서너 달, 금박과 표면 보호 처리에 한두 달이 훌쩍 간다. 그런 점에서 이콘은 ‘슬로우 페인팅’이라 할 수 있다.

 

“한 번에 진하게 칠하는 게 아니라 옅은 색을 여러 번 칠해요. 100번까지도 덧칠하는데 인내와 끈기, 기도와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죠. 이콘은 익숙하지 않지만 정제되고 절제되어 오래 보아도 변함없는 감흥이 느껴져요.” 정민자 제르투르다 씨는 기도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게 이콘이라며 이것도 ‘성소’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굉장히 섬세하고 정밀한 작업이죠. 마음을 비워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도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정석희 베아트리체 씨의 소감이다.

 

이순 가타리나 씨는 “동양화나 서양화는 나름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이콘은 내 개성과 자신을 죽이며 봉헌하는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라며 “마음이 정화되고 신심이 좋아지며, 오랫동안 그리니 마음의 평화와 완성의 기쁨도 있다.”고 했다. 

 

연구소에서는 목판에 템페라 기법으로 그린 전통 이콘뿐 아니라 ‘이콘 유리화’나 모자이크 이콘도 제작한다. 때론 성경이나 예식서 속에 세밀화를 그리기도 한다. 기본적인 정신은 유지하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등 이콘의 다변화에 힘을 쏟는다.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색과 형태를 찾아 한국적인 이콘을 연구하고 창작하는 구심점 구실도 한다. 그 결과가 지난 2015년 선보인 ‘하느님의 종 124위 복자’ 이콘화다. 124위 복자화는 한국 정서를 가득 담은 이콘이다. 각 인물의 신분과 나이 등에 대한 고증을 반영해 이콘 특유의 상징성으로 표현하고, 동양화 기법으로 한국적인 미를 한껏 살렸다는 평이다.

 

또한 연구소에서는 본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을 주문받아 제작하고 있으며, 해마다 2월에 졸업생 전시회를, 6월에는 회원전을 연다. 올 6월 28일부터는 서울 명동대성당 갤러리 1898에서 열 번째 회원전이 열린다.

 

단순하면서도 깊은 영성을 담은 이콘은 오랜 침묵과 기도 속에 바라보고 느끼는 성화로서 빠르고 복잡한 사회 문화 속에서 지쳐 가는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 주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이콘의 제작 과정

 

1) 밑그림을 종이에 그린다.

 

2) 아교를 먹이고 천을 입혀 회반죽을 일곱 번 이상 칠한 목판에다가 밑그림을 옮겨 그린다.

 

3) 금박을 입히기 전에 밑칠을 한다.

 

4) 금박을 입힌다. 가장 먼저 바탕을 금색으로 그리는 것은 ‘천지 창조’의 순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들기 전에 빛과 어둠, 자연을 창조하셨듯이 인물보다 배경을 먼저 그리는 것이다.

 

5) 그림은 템페라 기법, 곧 주사(빨강), 황토(노랑), 청금석(파랑)등 보석과 천연염료를 곱게 갈아 달걀노른자와 섞고 백포도주나 식초를 섞어서 그린다. 이렇게 하면 엷고 투명한 물감층이 곱게 먹어 갈라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변색하지도 않는다. 이콘은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신을 경배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기꺼이 값비싼 재료들을 쓴다.

 

6) 완성된 이콘.

 

문의 : ☎ 02)313-9973 이콘연구소

 

[경향잡지, 2017년 5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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