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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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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7 ㅣ No.1371

[경향 돋보기 -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받아쓰기하는 이상한 국무회의

 

국무회의의 모습을 보면서 늘 의아했다. 대통령은 언제나 책을 읽듯이 낭독하고 국무위원들은 그 ‘말씀’을 열심히 받아 적기만 했다. 국무회의란 명색이 이 나라 각료들이 모이는 회의인데 토론하는 모습보다는 대통령이 낭독하는 내용을 매번 받아 적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치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슨 교시나 되는 것처럼…. 

 

밝혀진 대로 대통령 뒤에는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있었다. 그녀가 수정해 준 말씀자료를 보고 대통령은 읽고 장관들은 받아 적으며, 4년 동안 그 내용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집행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대통령은 이른바 꼭두각시 같은 ‘아바타’였고, 숨은 권력이 아바타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을 전달할 뿐이었으니 토론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제야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만 한 모습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신유신 시대의 도래

 

현 정권은 국가의 근본 체계와 질서를 무너뜨렸다. 국민이 투표로 위임한 대통령의 권력을 사인에게 양도하고 그녀의 지시와 결정에 따랐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그녀를 ‘회장님’이라 불렀다. 그녀는 최고의 보안과 경호가 요구된다는 청와대를 검문절차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이른바 ‘보안손님’이었다.

 

대통령은 자신과 그 보안손님의 사익을 위해 재벌 대기업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그들의 민원사항을 해결해 주는 역할로 자처했다. 재벌 총수 사면, 세무조사 또는 검찰수사 무마, 경영권 세습 재원, 규제 완화법 제정, 노동개악 입법과 행정지침 등 재벌 대기업의 현안과제와 숙원사업을 국가정책의 이름으로 밀어붙였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은 비선실세 일가와 이들과 친한 이들이 운영하는 사업과 이권 개입의 뒷배가 되어주었다. 정부기관의 인사가 공적 체제를 통해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비선실세의 추천과 승낙으로 정해졌다. 이 비선실세의 눈 밖에 난 공무원들은 곧바로 좌천되거나 쫓겨났다.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야당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고 정부의 지원으로부터 배제되고 말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노동개악 등 친정부 ? 친재벌 정책 등을 추진하고자 극우단체들에게 관제시위를 하게 하고,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거두어 그 시위 참석자들에게 일당처럼 지급하기도 했다. 집회를 매수해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을 협박하려는 것이었다. 공영방송의 경영진을 장악하여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제재를 시도했다. 정권과 재벌을 비판하는 집회와 시위는 자의적으로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목과 주변 장소는 집회와 시위 금지 구역으로 운영되었다.

 

이처럼 대통령과 그 무리는 국민이 위임한 국가권력을 사유물처럼 마음대로 하고, 측근들은 묵인하고 협력했다. 인사와 정책 추진을 위한 공적인 의사결정 기구를 붕괴시켰다. 비선실세에 의해 국가기관의 인사와 국가정책이 좌우되었고, 공무원 사회는 이들이 승인한 인사와 정책을 집행하는 영혼 없는 자동판매기로 전락했다.

 

국민주권주의, 대의 민주주의,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원칙, 직업 공무원제도, 언론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노동삼권은 무너졌다. 권력과 재벌이 결탁한 정경유착과 그에 대한 대가로 특권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는 이름만 그럴듯한 민주공화국일 뿐 최소한의 절차마저 무너진, 재벌과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는 ‘신유신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의 폭로와 촛불이 만든 희망

 

지난해 10월 24일 종합편성 채널 중앙미디어네트워크(JTBC)는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에 저장되어 있던 각종 국정농단과 헌정유린 내용들을 폭로하였다. 국민은 어이없는 현실 앞에서 황당해했다. 그리고 분개했다. 같은 달 27일 한 비정규 노동 활동가(박점규)의 제안으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규탄집회를 시작했고, 이를 기점으로 주말마다 ‘범국민 행동’의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시위 참가자 수의 증가는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만에서 수십만, 수십만에서 수백만으로 주가 바뀔 때마다 시위대열은 급격히 증가했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그리고 청와대에 이르는 길목은 마치 해방구를 연상시켰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민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와 함께 즉각 탄핵과 구속을 외쳤다. “부역 공범자 황교안 내각은 사퇴하라. 공범자를 구속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재벌총수 구속하라. 박근혜표 친재벌 정책을 즉각 폐기하라. 모든 적폐를 청산하라….”

 

구호는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반면, 제도 정치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 책임총리, 과도내각, 질서 있는 후퇴 등 기존 질서에 손을 대지 않는 적정한 선에서 자당 중심의 정권장악을 위한 계산에 몰두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시민들의 거센 요구를 없애려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사회적 양극화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 그리고 시민적 민주주의의 후퇴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여야의 정권교체로 해결될 수 없음을 역사적 경험과 삶의 현실을 통해 알고 있었다. 정치인들에게 당리당략을 버리고 거리로 나와 국민과 함께할 것을 요구했다. 국회가 3분의 1이 넘는 여당의원 수를 핑계로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을 망설이자 232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 명령임을 분명히 했다.

 

2016년 12월 9일, 234명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었다. ‘박근혜 ·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에 맞선 시민항쟁이 이기는 순간이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국정농단에 대한 특검수사를 통해 최고 권력을 끌어내리고 범죄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부풀어있다.

 

 

비호세력의 준동과 대반격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지속되자 반격을 엿보고 있던 대통령 무리와 그 비호세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거리로 나서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등의 구호로 선동하며 탄핵반대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 세가 커지자 비호세력은 헌법재판소와 특검 사무실 앞에 상주하며 최순실 게이트는 좌파세력에 의해 기획된 것이며 검찰과 특검의 수사는 조작되었고, 탄핵반대로 여론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서울 도심의 주요 장소와 거리를 야금야금 침범했다.

 

이와 동시에 대통령 대리인단이 재판절차를 악용해 때늦은 무더기 증인신청과 대리인단 사임 압박으로 재판 지연의 성과를 얻어냈다. 이로 말미암아 한 헌법재판관의 임기인 3월 13일 이전까지의 선고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법원에서는 살아있는 최고의 경제권력인 삼성재벌의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생활환경’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기각함으로써 재벌들과 대통령의 뇌물죄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이 나라의 권력과 재벌이 유착해 만들어낸 수십 년 동안의 부패와 부조리의 실체를 밝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중요한 시점에서 재를 뿌렸다. 나아가 청와대는 군사상 · 공무상 비밀이 필요한 장소임을 내세워 청와대에 대한 특검의 압수수색 영장집행을 거부했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이 헌법의 영장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법원 영장의 집행을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이 만든 헌법과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을 무시한 채 삼권분립을 우롱한 것이나 다름없다.

 

 

제2의 촛불항쟁이 필요하다

 

대통령 무리와 그 비호세력이 촛불의 민심에 거슬러 총체적인 반격을 가해오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차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 의결 이후 공범자 처벌과 적폐청산 그리고 개혁입법 과제는 외면한 채 대선구도로 가버린 행태가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제도권 야당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안이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정권교체도 어려울지 모른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기대선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주권자인 우리 국민이 다시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천만 촛불 시민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려면, 첫째, 대통령 무리와 비호세력의 반격을 잠재워야 한다. 하루빨리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야 하고, 정경유착과 부조리의 상징인 재벌총수에 대한 구속을 관철시켜야 한다. 재벌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신화를 깨야 한다. 이는 시장권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신호탄이다.

 

둘째,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틀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은 선거제도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번 촛불항쟁에서 우리는 정치에 대한 청소년들의 높은 이해와 열정을 확인했다. 선거연령도 18세 이하로 낮춰야 한다. 기득권 정치구조를 타파하려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의 정치적 진출이 가능하도록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정당명부식 비례 대표제로 변경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야당의 분열을 의식하지 않고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표출할 수 있다. 정치세력을 교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이번 촛불항쟁은 ‘시민에 의한 정치혁명’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후퇴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직접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더 이상 기득권 세력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정치와 정책은 소수 전문가나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참여하는 시민 모두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자신이 참여해서 만들어낸 결정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무관심이란 있을 수 없다. 비로소 관심의 정치가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적인 무관심을 물리칠 수 있는 참여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넷째, 탄핵 이후 전개될 이번 선거에서는 민중후보를 포함한 야권 후보들이 ‘공동정부’ 구성을 전제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국민경선으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죽 쒀서 개한테 주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시민들의 힘이 다시 필요하다. 비호세력의 준동을 막고 사회 대개혁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232만 명의 힘이 모여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듯이 촛불의 물결이 끊이지 않아야 하겠다. 헌법 재판관들에게 국민의 명령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 권영국 베드로 - 변호사.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을 맡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노동위원장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법률원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권영국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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