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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벳파게와 시온산 최후의 만찬 이층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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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2 ㅣ No.1827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벳파게와 이층 방

 

 

– 벳파게 기념 성당 제대 뒤 그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님 생애에서 결정적인 전기(轉機)를 이룹니다. 군중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지만 얼마 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의 서곡이 되는 사건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벳파게 기념 성당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벳파게에서 시작합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산 벳파게에 다다르셨을 때에 제자 둘을 맞은쪽 동네로 보내 암나귀와 어린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신 후 그 위에 올라타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수많은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고 더러는 나뭇가지를 꺾어다 깔고는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하고 환호합니다(마태 21,1-11).

 

‘벳파게’라는 히브리말은 ‘성숙하지 않은 무화과나무가 있는 집’ 또는 ‘무화과나무 밭’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정확한 장소가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올리브 산에 있고 베타니아에서 멀지 않은 곳’(루카 19,29 참조)으로 짐작할 따름입니다.

올리브산 정상 부근 베타니아로 향하는 길가에는 19세기 말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세운 성당이 있는데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벳파게 기념 성당’입니다. 기념 성당이 있는 곳은 아랍인 마을이어서 현지 순례 안내자들은 안전을 이유로 일반 순례자들에게 잘 권하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당 대문이 닫혀 있을 때도 많습니다.

 

–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실 때 밟고 타셨다는 바위(좌), 벳파게 기념 성당(우).

 

 

벳파게 기념 성당 안에는 제대 뒤 벽 천장 쪽에 군중의 환호 속에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 제대 앞쪽에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실 때 밟고 타셨다고 전해지는 사각형의 큰 바위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바위에는 나귀를 끌고 오는 모습,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 군중이 환호하는 모습, 인근 베타니아에서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 등이 벳파게라는 지명과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모습을 떠올리며 묵상하기에는 충분히 좋은 곳입니다.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벳파게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올리브산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군중이 환호하며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도를 내려다보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우십니다. 이를 기념하는 성당이 올리브산 중턱의 예수님 눈물 성당입니다(2019년 4월 호에 소개). 예루살렘에 도성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성전으로 가시어 장사꾼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 더욱 적개심을 품게 되고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지요(마태 21,1―26,16; 마르 11,1―14,11; 루카 21,28―22,6 참조).

 

– 시온산 최후의 만찬 2층방.

 

 

이층 방

 

이윽고 파스카 곧 과월절이라고 하는 무교절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파스카 만찬을 들기로 작정하시고는 제자 둘을 도성 안으로 보내십니다. 제자들은 도성에 들어가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따라가 그 사람이 보여주는 큰 이층 방에서 과월절 음식을 준비하지요(마르 14,12-16; 마태 26,17-19; 루카 22,7-13).

 

예루살렘 옛 시가지 남서쪽에는 시온산이라고 부르는 큰 언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과월절 만찬 곧 최후 만찬을 드신 곳으로 전해지는 이층 방은 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이 이층 방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파스카 만찬을 들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바로 그 장소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적 조사 결과, 이 이층 방이 1세기 예루살렘의 유다-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지은 회당 겸 교회 건물 위에 건축된 것으로 밝혀져 이 이층 방이 초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관련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시온산 최후의 만찬 기념장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4세기에 이곳에 기념 성당을 지었지만 성당은 7세기 무슬림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십자군 시대에 다시 최후 만찬 기념 성당을 지었으나 이 성당 역시 무슬림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14세기에 나폴리 왕국의 로베르토 왕과 산치아 왕비가 ‘갖은 노력 끝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이곳을 매입해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기증했다고 하지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이곳에 고딕 양식의 이층으로 된 기념 성당을 지었습니다. 이층에는 최후 만찬 기념 경당과 성령 강림 기념 경당 두 경당을 두었습니다. 과월절 만찬을 나눈 이곳에서 또한 성령 강림이 이루어졌다고 본 것입니다(사도 1,12-14; 2,1-13 참조).

 

하지만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고 맙니다. 이층 방 한쪽 벽면 중앙에 있는 미흐랍(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방향을 알 수 있도록 벽에 움푹 들어가게 파 놓은 곳.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이곳에 들어가서 메카를 향해 기도함)과 아랍 문양이 그려져 있는 색유리 창 등이 이런 역사적 사실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 자기 피를 새끼에게 먹이는 어미 펠리칸 문양이 조각된 기둥.

 

 

그런데 이 이슬람 사원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이스라엘 정부 손에 넘어갔고, 1층은 유다교인들의 회당과 탈무드 학교로 바뀌었습니다. 1층에는 다윗 왕의 가묘가 조성됐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층에 있는 성령 강림 기념 경당은 폐쇄하고 다만 예수님의 최후 만찬을 기념하는 경당은 개방했습니다. 하지만 성 목요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말씀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종교적 예식을 거행할 수 없게 해 놓고 있습니다.

 

이 이층 방에 있는 한 기둥에는 어미 펠리칸이 새끼 펠리칸들에게 자기 피를 먹이는 문양이 조각돼 있습니다. 자기 가슴을 쪼아 거기에서 나오는 피로 새끼들을 먹이는 펠리칸은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자신의 살과 피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양식으로 주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시온산 이층 방은 순례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드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고 제자들의 발을 몸소 닦아 주신 복음서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줍니다(루카 22,14-27; 요한 13,1-20). 또 오순절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린 일도 다시금 되새기게 해줍니다. 이 이층 방에서는 잠시 눈을 감고 침묵 중에 해당 성경 말씀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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