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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평양의 순교자들20: 서경석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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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19 ㅣ No.1725

[평양의 순교자들] (20) 서경석(마르코)


기도 소리 끊이지 않던 성가정, 7자녀 중 4명이 성직 · 수도자

 

 

현재 시복 법정이 개정된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도 ‘가족 순교자들’이 있다. 서정요(프란치스코) 순교자와 그 슬하 4남 3녀 중 첫째이자 맏딸인 서원석(요셉,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넷째이자 장남인 서운석(보니파시오) 신부, 여섯째이자 3남인 서경석(마르코) 등 4위다. 4남 3녀 중 1940년에 첫 서원을 하고 1년 뒤 폐결핵으로 병사한 둘째 서의석(아퀴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월남한 뒤 사제품을 받았지만 수품 16년 만에 아깝게 선종한 막내 서우석 신부 등 7남매 중 성직자 2명, 수도자 2명을 배출한 신앙의 집안이기도 했다. 서운석 신부는 앞서 평양의 사제 순교자들에 포함해 소개했기에 이번 호에는 서정요와 서원석 수녀, 서경석의 삶과 신앙, 순교 행적을 따라가 본다.

 

 

신앙인으로 나무랄 데 없는 삶

 

서경석은 1928년 4월 25일 평안남도 대동군 서천면 동포리(현 평양직할시 형제산구역 서포1동)에서 태어났다. 신앙이 깊었던 부모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신앙인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서정요ㆍ여규식 부부 슬하 3남 4녀 중에서도 막내인 서우석 신부와 함께 유달리 똑똑해 부모의 기대가 컸다. 1935년 성모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평양시 학무과에서 급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학무과에서 만난 이해남 시학관(지금의 장학관)의 주선으로 2년제 평양공업전문학교 야간부에 들어가 학업을 계속했고, 졸업 뒤 전기 기술자가 돼 집안 살림을 도왔다. 해방 이후에도 동평양 선교리(현 평양시 선교구역 선교1동) 변전소에서 부소장으로 일했다. 

 

1950년 10월 8일 밤 부친이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불려 나간 뒤 1시간가량 지나 부친을 찾으러 나섰다가 소식이 끊겼다. 당시 정황으로 미뤄 서경석 또한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경석은

 

△ 1928년 4월 25일 평안남도 대동군 서천면 동포리 태생

△ 1935년 성모보통학교 졸업

△ 1930년대 후반 평양공업전문학교 졸업

△ 해방 전후 동평양 선교리 변전소 근무

△ 1950년 10월 8일 부친 서정요를 찾아 나섰다가 행방불명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8월 20일, 오세택 기자, 자료=평양교구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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