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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솔뫼성지에서 해미순교성지까지 내포 천주교 순례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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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24 ㅣ No.1583

솔뫼성지에서 해미순교성지까지 ‘내포 천주교 순례길’을 가다


이름 없는 순교자들 눈물의 땅, 푸른 소나무는 굳건히 지키네

 

 

-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김대건 신부의 조상들이 머물면서 대대로 신앙을 증거해 온 곳이다. 솔뫼성지를 돌아보는 순례객들.

 

 

일찍이 충청도 지역에는 신자들이 많이 거주했다. 또 이들은 박해를 피해 곳곳으로 이주하면서 신앙 확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충청도 내포에서는 특히 양반이 아닌 일반 양인들이 중심이 되어 실천적인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 지역 사회에 선행을 실천하면서 모범을 보인 이들 신앙공동체의 삶은 하층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조선 후기 내내 가장 탄탄한 공동체를 이뤄 한국교회 발전의 큰 축이 됐다. 충청도 내포 지역 교회 공동체의 탄생부터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순교자까지, 그 영광과 아픔이 동시에 새겨진 내포 교회와 내포 천주교 순례길에 관해 알아보자.

 

 

내포,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

 

충청남도 내포는 아산에서 태안반도에 이르는 넓은 곡창지대로, 넉넉한 곡식과 인근 바닷가의 해산물들이 어우러진 먹거리들은 충청 지역 풍요의 상징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천주교가 가장 일찍 퍼졌던 지역이다. 내포는 한국 가톨릭 신앙의 ‘못자리’라고 불린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은 1784년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고향인 여사울로 내려와 내포 지역에 처음으로 신앙을 전파했다. 첫 한국인 사제 김대건 성인도 내포 지역 솔뫼에서 태어났다. 초기 교회 가장 큰 신앙공동체였던 신리도 바로 내포 지역에 있다.

 

신앙의 중심지였던 내포는 아이러니하게도 박해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많은 신앙인을 배출한 만큼 순교자도 많았다. 병인박해 당시에는 태안을 제외한 내포의 모든 군현에서 순교자가 나왔다. 홍주가 115명, 덕산이 89명으로 가장 많았다. 신리와 솔뫼, 황무실 등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은 군영이 있던 해미로 압송돼 처형당했다. 신자들이 군졸에 이끌려 압송돼 끌려 넘던 한티고개는 그야말로 ‘순교자의 길’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 대전교구와 충청남도는 내포 지역의 천주교 성지를 잇는 내포 천주교 순례길을 조성했다. 내포 천주교 순례길의 주요 코스는 솔뫼성지에서 해미순교성지까지로 57.4㎞에 달한다. 여기에 공세리성당에서 솔뫼성지까지 21㎞, 여사울성지에서 신리성지까지 7.6㎞, 홍주성지에서 홍주성까지 2.1㎞ 구간의 ‘곁가지’ 순례길도 있다.

 

 

솔뫼에서 신리까지

 

내포 천주교 순례길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요 순교자가 태어났거나 신앙생활의 터전이 된 곳이다. 예산의 여사울과 신리, 당진의 솔뫼가 그 예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순교자들이 박해를 받았던 현장으로, 서산의 해미순교성지와 홍성읍을 중심으로 한 홍주성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순례길이 시작되는 솔뫼는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적인 성지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김대건 신부의 조상들이 머물면서 대대로 신앙을 증거해 온 곳이다. 김대건 성인까지 4대에 걸쳐 순교자가 살았던 덕분에, 솔뫼는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도 불린다. 김대건 성인의 증조할아버지인 복자 김진후(비오)는 솔뫼에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결국 해미에서 순교했다.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과 아버지 성 김제준(이냐시오, 1839년 서소문 밖에서 순교)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솔뫼를 떠나 합덕읍으로 향하면 나지막한 언덕 위에 두 개의 첨탑을 지닌 합덕성당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고풍스러운 모습의 합덕성당은 기나긴 박해가 끝나고 더욱 더 단단해진 내포 교회에 세워진 첫 성당이다. 126년 전인 1890년, 합덕본당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산 증인으로 양촌에 설립됐으며, 1899년 현 위치로 성당을 이전했다. 성당 옆에는 기와집으로 된 옛 사제관 건물을 복원해뒀고, 순례자를 위한 유스호스텔도 갖췄다.

 

합덕성당을 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예당평야의 너른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다. 들녘을 걷다가 순례길 표지판을 따라 산길에 올라서면, 원시장(1792년 순교)·원시보(1799년 순교) 생가터를 거쳐 무명 순교자의 묘에 이른다. 1972년 주변에서 목이 없는 시신 32구가 무수한 묵주와 십자가들과 함께 발굴됐는데, 이를 여섯 봉분에 합장한 자리다. 그 위에는 옆 공동묘역에서 옮겨온 손자선 순교자 가족 묘 14기도 모아 놓았다. 

 

무명 순교자의 묘를 지나면 널찍하게 조성된 신리성지가 나타난다. 신리성지는 박해시대 교회의 가장 큰 교우촌으로 당시 주민 400여 명 모두가 신자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해 내포를 중심으로 활동한 다블뤼 주교가 머물렀던 주교관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다블뤼 주교는 이곳에 머물며 한국의 순교자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번역해 훗날 시복시성 작업에 큰 공헌을 했고, 자신도 병인박해 때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여사울성지는 신리에서 약 7.5㎞ 떨어져 있다. 주변의 집들이 모두 기와집이어서 서울과 같다는 의미로 ‘여서울’이라고 불리던 여사울은 내포 교회의 시작점이다. 이존창의 고향인 여사울에서는 성인 2위, 복자 9위, 순교자 12위가 나왔다. 1984년 시성된 홍병주·영주 형제는 이존창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존창은 1791년 신해박해 때 모진 고문과 매질에 배교했으나, 이를 뉘우치고 전교에 힘쓰다 1795년 다시 체포돼 옥살이 하던 중 1801년 공주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대전교구는 매년 5월 1일과 9월 1일 솔뫼에서 합덕성당, 신리, 여사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마련, 신자들이 초기 교회 순교자들의 신심을 본받도록 일깨우고 있다.

 

 

순교의 현장으로

 

신리를 지나면 배나드리, 덕산을 지나 한티고개가 나온다. 내포의 각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해미 진영으로 압송돼 가기 위해서는 덕산을 거쳐 가야산의 끝자락을 넘어가야 했다. 이곳이 바로 한티고개이다. 면천의 황무실 마을과 덕산의 용머리 마을, 배나드리 마을 등지에서 집단으로 체포된 신자들이 이 길을 통해 해미까지 압송됐다.

 

한티고개는 순교자들에게 있어서 순교를 위해 떠나는 생의 마지막 순례길이자, 눈물의 십자가 길이었다. 박해 당시에도 이 길은 죽음의 길로 악명이 높았다. 달레 주교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도 그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한티고개는 들녘 길과 마을길이 대부분인 내포 순례길 중에서 유일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티고개를 내려와 송덕암 교차로, 한서대학교 앞을 지나면 평지에 조성된 해미읍성이 나온다. 둘레 1800m의 해미읍성은 1895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충청지역 12개 군현의 군권을 장악한 곳이었다.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권한도 가져,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해미에는 두 채의 큰 감옥이 있었는데, 항상 천주교인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감옥 앞, 신자들을 매달아 형벌을 가했다고 전해지는 회화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참혹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군졸들은 천주교인을 처형할 땐 읍성의 서문 밖으로 끌고 갔다. 신자들에게 빼앗은 십자가와 묵주는 서문 난간에 뒀다. 군졸들은 이 십자가와 묵주를 밟으면 목숨을 살려주겠노라며 배교를 강요했지만, 신자들은 끝내 신앙을 지켰다. 서문을 나가 길을 따라가면 내포 순례길의 끝 해미순교성지에 이른다. 순교자들의 생매장터에 조성된 해미순교성지는 처참하게 죽어갔던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중심이다. 

 

목숨으로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자성월과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벼이삭이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의 내포 천주교 순례길을 걸으면서 순교자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몸과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은 어떨까?

 

[가톨릭신문, 2016년 9월 25일, 최용택 기자, 사진 박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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