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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모자이크로 만든 높으신 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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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20 ㅣ No.296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모자이크로 만든 높으신 이의 빛

 

 

사람은 누구나 빛에 감싸이게 될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이 빛은 ‘빛이 생겨라.’ 하시자 생긴 빛(창세 1,3 참조)이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그러니 하물며 빛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집이 과연 어떤 빛으로 감싸일 때 커다란 기쁨을 느끼실 것인가? 이것이 곧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성당에 모인 이들과 이들을 감싸는 빛의 본질이다.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의 카톨리콘 성당, 그리스 포시다.

 

 

그리스 델포이 근처의 포시다(Phocida)에 비잔틴 양식의 호시오스 루카스(Hosios Loukas : 호시오스란 ‘가경자’라는 뜻이고, 루카스는 복음사가 루카가 아닌 953년에 죽은 은수자를 말한다.) 수도원이 있다. 그 안에 있는 카톨리콘(Katholikon) 성당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빛은 성당에서의 빛이란 밝게 비춰주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형태, 사람들이 부름을 받아 모이게 된 형태를 함께 나타낸다.

 

위를 올려다보면 돔에는 만물의 주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려다보고 계신다. 네 방향의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돔 주위에 놓인 네 개의 볼트를 비추고, 모퉁이에 난 창은 스퀸치(squinch, 정방형의 평면 위에 돔을 얹을 때 이를 받쳐주려고 정방형의 모퉁이에 만든 작은 아치나 까치발)를 비춰준다.

 

이러한 빛 때문에 돔은 아치와 기둥에 높이 떠받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방으로 퍼져 있다. 바깥에서 들어온 빛이 돔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돔에서 생겨난 빛이 바깥세상을 향해 퍼져나가는 것이다.

 

 

모자이크는 햇빛과 등불을 운반하려는 것

 

성당 내부의 아래쪽에는 밝고 맑은 영역과 어둡고 흐릿한 영역이 교차하며 나타난다. 밝은 영역에서는 빛이 가볍고 빠르게 스치듯이 지나가고, 어스레한 그늘 안에서는 빛이 대리석 표면을 미끄러지듯이 비추고 있다. 게다가 돔과 모퉁이의 스퀸치, 앱스(apse)와 십자로 교차하는 볼트에 붙인 모자이크 때문에 무거운 벽은 아주 가벼운 막으로 감싸여 있다. 평탄한 대리석 표면과 모자이크가 반사하고 빛나도록 빛을 운반해 주어서 사방으로 빛이 퍼지게 해준 결과다.

 

5세기 말에 지어진 라벤나의 주교 경당에는 이런 글이 있다. “빛은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여기에 갇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빛은 자유로이 지배한다”(Aut lux hic nata est, aut capta hic libera regnat).

 

‘태어나는 빛’과 ‘갇혀 있는 빛’.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의 카톨리콘 성당 안에서 ‘태어나는 빛’이란 돔과 네 방향의 볼트와 스퀸치를 위에서 비추며 만물의 주재자로부터 시작하여 사방으로 빛나는 빛이다. ‘갇혀 있는 빛’이란 성당 아래에서 창을 통해 들어와 건물의 물질로 갇혀버린 빛을 말한다.

 

교회 건축에서 빛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고딕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해 들어오는 아름답고 화려한 빛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러나 고딕의 빛이 있기 이전에, 내부에서 반사하며 벽을 비추는 비잔틴의 빛이 있었다.

 

비잔틴의 빛과 고딕의 빛은 모두 돌과 유리라는 물질을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반대로 나타났다. 고딕 건축에서 빛은 채색 유리를 통해 밖에서 들어온 빛이었고, 비잔틴 건축에서는 두꺼운 돌벽에 붙인 무수한 유리조각에 반사된 가벼운 빛이었다.

 

박해를 피해 빛이 닿지 않는 지하에 숨어서 미사를 드릴 때 유일한 빛은 제대 위의 등불이었다. 이 단 하나의 빛이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이때의 빛은 비록 작고 어두웠으나 「성경」에서 말씀하신 태초의 빛이었고, 사람들을 밝혀주는 생명의 빛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상에 올라와 성당을 짓게 되었다. 그런데도 성당 안의 벽을 비추는 한 줄기의 등불은 여전히 소중하고 참된 빛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전례에서 백성을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더라면 성당 건축에는 내부도 없었고 따라서 내부의 장식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초기 비잔틴 교회 건축은 지나칠 정도로 프레스코나 금빛 모자이크 등으로 장식했다. 그러나 많은 성화가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모자이크로 그려져서 이를 두고 건물의 벽면을 이용하여 그려진 그림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비잔틴 성당의 모자이크는 일차적으로 그림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 부족하여 어둑한 내벽을 빛이 비치는 벽으로 만들고 내부공간을 빛의 덩어리로 바꾸고자 고안된 빛의 건축적 장치였다.

 

 

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건축적 장치

 

테오토코스(천주의 성모), 앱스 모자이크, 아야 소피아.

 

 

비잔틴의 교회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약한 등불과 촛불이 안을 밝혀주도록 설계되었다. 자연광이 가득할 때는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상에서 성모님이 더 크게 나타나지만, 약한 빛이 비칠 때는 금과 은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께서 작지만 화려하게 빛난다.

 

새벽에 입구의 창에서 들어오는 가라앉은 빛과 온화한 등불 밑에서는 구성의 초점이 성모님에게서 그리스도로 옮겨진다. 겸손하게 낮은 곳을 찾아오신 하느님께서 낮고 간접적인 빛을 반사하고 계신 것이다. 이처럼 비잔틴 성당은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함께 약한 등불을 모두 고려한 건축이었다.

 

비잔틴 교회 건축의 열쇠는 돔이라는 둥근 지붕이었다. 로마 건축의 구조 형태는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 갈리면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중세 유럽의 대성당으로 발전하였고, 다른 하나는 동쪽으로 가서 돔을 얹은 비잔틴제국의 교회로 발전하였다.

 

서유럽에서는 통로가 긴 바실리카의 직사각형 평면에 볼트를 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성당을 낳았다. 그러나 비잔틴에서는 이와는 달리 네 개의 아치가 받쳐주는 정사각형 평면 위에 둥근 지붕을 올린 성당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비잔틴 교회 건축에서는 여러 가지 곡면이 생겼고, 대리석이나 모자이크라는 재료로 무거운 벽 위를 덮어 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모아야 했다. 특히 모자이크는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둥근 표면을 연속적으로 덮을 수 있었고, 각도가 다른 작은 덩어리로 불규칙하게 빛나는 빛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는 걸어 다니는 바닥이나 평탄한 벽에 모자이크를 사용했다. 그러나 비잔틴 교회의 모자이크는 달랐다. 그들은 빛을 내부에 반사하려고 벽이나 아치에 일부러 신중하게 다양한 각도로 모자이크를 직접 붙였다.

 

모자이크는 유리일 수도 있고 대리석일 수도 있다. 이 모자이크는 수많은 아주 작은 육면체로 이루어지는데 하나하나는 몇 밀리미터에서 대략 2cm 정도이고, 두께는 5mm에서 1cm가 되도록 끌로 쳐서 잘라 쓴다. 

 

데이시스(Deisis) 모자이크, 아야 소피아.

 

 

채색한 두꺼운 유리판에서 만든 ‘스말티(smalti)’라고 부르는 네모난 유리나 대리석을 특수하게 사용한다. 스말티는 표면이 거칠고 작은 거품이 있다. 이 때문에 빛이 다양하게 반사되는데, 그 뒷면에 반사하는 금박이나 은박을 붙이기도 한다.

 

하루에 작업하는 동안 장식되는 표면은 시멘트로 덮인다. 모자이크를 만드는 “오,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 제작은 덩어리는 마르기 전에 장인의 엄지손가락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누르며, 굽은 표면이나 둥근 모퉁이를 연속적으로 덮는다.

 

모자이크 표면은 마감을 하지 않고 벽에 대하여 미세한 각도를 이루므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이 반사하며 굴절하게 된다. 그러면 아주 작은 유리 덩어리가 밝고 커다란 면을 이루며 어둑한 성당 안을 움직일 때 섬광으로 빛나게 된다.

 

이들이 사용한 모자이크의 색채가 2만 8천 가지라고 한다. 무한에 가까울 정도의 빛과 그림자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의 카톨리콘 성당의 건축가는 무엇을 간절히 구하였기에 이런 빛과 조형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 무수한 유리 덩어리를 돔과 벽면에 붙인 장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저토록 아름답게 내부에 반사하는 빛을 만들어냈을까? 이를 위해 그들은 얼마나 수없이 오르내리며 빛을 조절해야 했을까?

 

그들이 희구한 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와 똑같은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오,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 제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주소서.” 그러니 이들의 수고와 믿음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돔과 볼트와 모자이크가 이끄는 저 높은 빛은 그 밑에 와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구하는 당신 백성의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는 하느님의 은총이요 성사다.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교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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