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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성 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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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24 ㅣ No.288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33) 성 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가림과 드러남의 미학

 

 

티에리 부아셀, 성 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2014.

 

 

다소 결함이 있고 부족한 공간을 보듬어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치유의 예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몇 해 전 진행했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성 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성당 작품에서 치유의 예술로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한껏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경기도 이천에 소재한 성 안드레아 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쇠창살 없는 정신병원으로, 환자들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한 환경과 치료 프로그램으로 국내 정신병원의 모범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위치한 병원 옆에는 환자와 보호자가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아담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 안드레아 병원 성당은 제대 전면에 유리창을 배치해 기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성당 내부로 수용할 수 있었으나 성당 제대 창 맞은편에 대형 아웃렛 물류창고들이 신축되면서 분심을 자아내는 복잡한 환경이 그대로 노출됨에 따라 전례 공간으로서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설치를 계획하게 됐다.

 

성 안드레아 병원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에 대한 요청 사항은 쉬운 듯하면서도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기존의 풍경을 부분적으로 살리면서 소란스러운 외부 환경을 차단할 수 있는 작품, 즉 성당 내부와 외부가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야 했다. 또한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배려해 색의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고, 차분하면서도 쉽게 싫증이 나지 않는 디자인을 추구해야 했다. 주변 환경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최대한 개선하면서도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환경의 변화를 쉽게 알아채지 못하게 해 달라는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성 안드레아 병원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한 작가 티에리 부아셀(Thierry Boissel)은 한국의 전통 창과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하고 병원과 인접한 환경을 고려해 납선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제작했다. 티에리 부아셀은 프랑스 태생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수학했고, 현재 유럽의 대표적인 건축 유리 예술 작가로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뮌헨 쿤스트아카데미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성 안드레아 병원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의 주요 모티프로 사용된 원은 서양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문양이자 전통 한옥의 문살과 문고리의 형태가 만나는 접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수도회의 성당이라는 점을 고려해 한국적인 색채를 도입하고자 한 작가는 한국 전통 건축의 단청 색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최소 면적에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유리 표면의 돋을새김을 통해 빛 라인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원은 서로 조밀하게 겹쳐지기도 하고 듬성듬성 표현되기도 하면서 전체 화면을 조화롭게 구성하고 있다. 이 원들은 동서양 창의 공통된 요소이면서 인간 개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치밀하게 형성된 사회의 시스템 안에 순응하며 살기도 하지만 그 체제에서 벗어나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마주하기도 한다. 작품 속 원들은 이처럼 다양한 인간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 부아셀은 성 안드레아 병원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진정한 조화로움이 완성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마당을 향해 반쯤 열린 한옥의 한지 문에서 느낄 수 있는 드러남과 가림, 안과 밖을 오가는 시선을 표현하고자 했다. 창 전체를 가리지 않고 부분적으로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우리는 ‘이곳’과 ‘저 너머’의 공간을 넘나들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이 완성된 지 2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 스테인드글라스가 새로 설치된 것을 알아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원래 있었던 듯 자리하며 환경만 개선하고자 했던 바람은 이루어진 듯하다. 

 

한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색깔을 강조하기보다는 건축 공간의 기능과 조화를 최대한 고려해 작품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배려와 노력에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25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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