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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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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1211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나라”의 뜻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의 둘째 청원, 곧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마태 3,2; 4,17; 10,7).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여기서 “나라”라는 말은 경계선이 있는 국토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하심을 의미한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과 용서로 드러나는 그분의 자비로 세상을 다스리심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늘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죄인인 우리를 늘 기꺼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느님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를 드린다.

 

우리는 이 둘째 청원 기도로써 하느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사탄이 지배하는 악의 나라는 죄와 죽음으로 다스리지만,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악의 나라는 손발이 묶였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을 때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아시고 옳게 지적해 주신 뒤에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이 말씀에 대하여 언급한 오리게네스 교부의 말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느님의 나라가 자기 안에 서기를, 자신 안에서 열매를 맺고 완전하게 익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영적 율법을 따르는 모든 성도는 질서 정연한 도성에 비유할 수 있는 이 나라에 삽니다. 그런 이는 아버지 앞에 있으며, 성숙해 가는 그의 영혼 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십니다. 이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는 그리스도의 약속과도 통합니다(「기도론」,  25,1).

 

“오시며”의 의미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노 교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므로 ‘온다’는 ‘인간에게 드러나며’의 의미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빛이 있어도 눈먼 이나 눈을 감고 있는 이에게는 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하느님의 나라도 세상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는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오시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무에게도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성으로만 아니라 눈으로도,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심판하시는 주님의 사람을 알아볼 것입니다”(「산상 설교 해설」, 2,6,20).

 

 

하느님 나라의 시작과 완성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통치는 이미 우리 인간 세상에 임하셔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완성되어야만 한다. 밭에 묻혀 있는 보화의 비유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야만 완전한 소유를 이루게 되는 것과 같다(마태 13,44 참조).

 

마찬가지로 값진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마태 13,45-46), 겨자씨의 비유(마태 13,31-32), 고기 그물의 비유(마태 13,47-50),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 등으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

 

교회는 분명 하느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지만, 아직 완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되지는 못하였다. 아직도 한 조각의 누룩과도 같다. 하느님의 나라, 통치는 먼저 우리의 마음 안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로 교부는 영세 준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홀로 순결한 영혼만이 확신하면서 ‘하느님의 나라가 오소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더는 다스리지 않게 하십시오.’라는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과 말과 행동에 순결하게 처신하면 하느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오소서.’라고 진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예비 신자 교리 교육」, 5,13).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는 순서

 

하느님의 나라는 먼저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 하느님의 다스리심은 순서가 있다. 인간의 마음 안에 뿌려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자라나서 열매를 거두는 결과를 내는 것처럼, 세상 전체에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려면 믿는 사람의 마음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해 계시며 그의 생활을 다스리심으로써 발전되어 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신자들을 잡아들이고 박해하던 사울의 예를 들어 보면 하느님의 자비의 나라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신자들을 잡으러 갔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그는 하나니아스를 만나 안수를 받고 눈이 뜨여 보게 된다. 결국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뒤 다마스쿠스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구세주 주님이시라고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니아스에게 사울이 당신이 뽑으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 9,15). 이런 식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작게 시작하여 큰 나무로 성장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다.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통치자이시다

 

세상에 평화를 놓으러 오신 구세주 예수님은 참된 목자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평화의 임금이시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은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일이 일어난 것이다.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마태 21,4-5).

 

제자들은 자기들이 본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루카 19,38). 많은 군중은 예수님을 보고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요한 12,13)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고 빌라도 총독에게 말씀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 종말에 있을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1코린 15,24).

 

치프리아노 교부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해 준다. “이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우리의 나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와 수난으로 얻으신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그분의 신하들인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내세에 함께 다스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는 말씀으로 이를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 오심을 소망하는, 그분의 오심을 하루 바삐 볼 수 있기를 나날이 갈망하는 그리스도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분이 곧 부활이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나므로, 하느님의 나라도 그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의 기도 해설」, 13).

 

* 장인산 베르나르도 - 청주교구 신부. 원로 사목자로 강화꽃동네 성녀 헬레나 성당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지낸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교부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장인산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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