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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17: 4세기 (4) 동방 교회 수도 생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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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30 ㅣ No.91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7) 4세기 ④ 동방 교회 수도 생활 신학

 

동방 교회에서 불어온 영성의 바람

 

 

4세기 그리스도교는 동방 교회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은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영성 생활 발전에도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 중에서 학식을 갖춘 이들은 수도 생활을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체계를 갖춘 가르침을 제시했습니다. 이론적이거나 실천적인 현장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가르침은 곧바로 서방 교회의 영성 생활과 수도 생활에 전해졌습니다.

 

바실리우스.

 

 

수도 생활을 동경한 바실리우스

 

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카이사리아의 주교 대 바실리우스(Basilius Magnus Caesariensis, 329/30경~379)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동방 교회뿐 아니라 서방 교회 수도 생활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유복한 그리스도교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어느 날 성덕이 깊은 신앙인이었고 훗날 수도 생활을 하게 되는 큰누이 마크리나(Macrina, 327경~379)의 꾸중을 듣고 한적한 곳에서 몇몇 지인과 함께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바실리우스와 동료들은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바실리우스는 이러한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카이사리아의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고 몇 년 후에 그의 뒤를 이어 교구장이 되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몇몇 저서들을 통해 그리스도인 수도 생활에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은수 생활을 하던 당시 바실리우스는 친구이자 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 또 한 명이었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azianzenus, 326/30경~390경)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금욕 생활을 설명하면서 기도 생활을 강조했습니다. “영혼 안에 하느님 생각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내주, 즉 하느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서간」 2,4) 하지만 바실리우스가 수도 생활에 크게 기여한 점은 수도 생활에 도움을 주는 규칙서를 저술한 데 있습니다.

 

 

공동 생활을 강조한 수도 규칙

 

먼저 바실리우스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은수 생활을 실천하던 중에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을 위한 「윤리 규정집」(Regulae Morales)을 저술했습니다. 그 당시 바실리우스는 일부 은수자들이 과장된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데 실망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폭넓은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실천할 복음적인 삶을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제시했습니다.

 

다음으로 바실리우스는 사제로서 교구장 비서직을 수행하던 중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한 「소 수덕집」(Asceticon Parvum)을 저술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과장된 금욕주의가 그리스도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즉,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적당하지 않은 과도한 금욕 생활을 실천한다든지, 항상 기도한다는 이유로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사목적인 관점에서 금욕주의자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 및 공동 생활의 정신으로서 순종을 가르쳤습니다. 이 작품은 「바실리우스 규칙서」(Regula Basilii)라는 제목으로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 교회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실리우스는 주교로서 카이사리아 교구장 시절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더욱 체계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대 수덕집」(Asceticon Magnum)을 저술했습니다. 바실리우스가 지도한 금욕주의자들 중에서 훗날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여성 공동체도 출현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이 작품에서 회(會) 수도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했습니다.

 

- 에바그리우스.

 

 

무정념을 추구한 에바그리우스의 수도 생활

 

바실리우스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제자로서 정통 교리를 체계적으로 배운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345/46경~399)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큰 활약을 펼쳤지만, 이를 계기로 교만해져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에바그리우스는 팔레스티나에 위치한 수도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과부 멜라니아(Melania, 342~410)의 충고에 따라 383년부터 이집트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우의적 성경 해석을 따랐던 에바그리우스는 14년간 수도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저술했습니다. 에바그리우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3부작이 있습니다. 「프락티코스」(Praktikos)는 욕정의 무절제한 충동을 정화할 수 있는 금욕 생활과 그것을 위한 기도 생활을 제시합니다. 「그노스티코스」(Gnostikos)는 관상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다룹니다. 「케팔라이아 그노스티카」(Kephalaia Gnostica)는 ‘영지(Gnosis)’에 대한 교의적인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이 이외에도 에바그리우스는 수도 생활과 관련된 「기도론」(De Oratione), 「수도자 생활의 원리」(Hypotyposis), 「수도자를 위한 권고」(Ad Monachos), 「동정녀를 위한 권고」(Ad Virginem) 등을 저술했습니다.

 

그런데 에바그리우스는 이미 「그노스티코스」에서 다루었던 여덟 가지 악습만을 주제로 골라 다시 「안티레티코스」(Antirrhetikos)를 저술했습니다. 에바그리우스에 따르면, 일명 ‘팔죄종(八罪宗)’은 탐식, 음욕, 탐욕, 슬픔, 분노, 영적 태만, 헛된 영광, 교만인데 ‘무정념(無情念)’이라고 하는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이 욕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바그리우스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영적 관상’이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부정 신학(apophatic theology, 否定神學)’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여러 사람들은 에바그리우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함으로써 그의 작품들이 유실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훗날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Benedictus Nursinus, 480/90~555/60)는 저서 「수도 규칙」(Regula Benedicti)에서 수도 생활 및 규칙과 관련된 동방 교회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바를 언급했습니다. 베네딕투스는 일찍이 라틴어로 번역된 「바실리우스 규칙서」와 에바그리우스의 제자였던 요한 카시아누스(Ioannes Cassianus, 360/65~432/35경)가 서방 교회로 이주해 저술한 「제도서」(Institutiones)와 「담화집」(Collationes)을 통해서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 전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26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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