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9: 2세기 (4) 순교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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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2 ㅣ No.884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 2세기 ④ 순교 영성


하느님 은총으로 피어나는 순교의 꽃

 

 

초대 그리스도교가 겪었던 여러 가지 시련 중에 가장 큰 것은 박해와 순교였습니다. 사실 유다교인도 순교를 경험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 시리아 임금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이교 숭배를 거부하고 유다교 전통을 지키려던 유다인들을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율법 학자였던 엘아자르(2마카 6,18-31 참조)와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2마카 7,1-41 참조)의 순교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 중에서 첫 순교자는 스테파노 부제였고(사도 7,54-60 참조), 예수님의 제자 중에 첫 순교자는 야고보 사도였습니다.(사도 12,2 참조)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는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일화를 남기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참수형을 당했는데, 굴러떨어진 머리가 세 번 튄 곳에서 샘이 솟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순교는 점점 영성 생활의 한 방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순교 -  말로 하는 증언

 

‘순교자’라는 그리스말 ‘마르튀스’는 신약 성경에서 ‘증인’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6.4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서 ‘순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며 그 내용이 참되다고 고백하고 증거하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고백자’ 혹은 ‘증거자’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구세주이시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 그 내용이 진실하다는 점을 먼저 말로써 증언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교’의 첫 번째 의미가 ‘말로 하는 증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교 - 행동으로 하는 증언

 

신약성경 후기 서간에서 베드로 사도는 여러 교회의 원로들에게 자신을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1베드 5,1)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것이라는 언급에서 우리는 ‘순교’의 두 번째 의미가 ‘행동으로 하는 증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티우스는 자신의 서간에서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을 언급했습니다. “저로 하여금 제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로마인들에게」 6,3) “또한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고자 애씁시다.”(「에페소인들에게」 10,3)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상이 저의 몸을 볼 수 없게 될 때 저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로마인들에게」 4,2) “불이나 십자가 또는 맹수들의 무리, 뼈를 비틀고 사지를 찢는 것, 온몸을 짓이기는 것, 악한 자의 잔인한 형벌, 이 모든 것이 저에게 오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만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로마인들에게」 5,3)

 

 

순교 - 피를 흘려 하는 증언

 

스미르나에서 폴리카르푸스가 순교한 직후 저술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에서 우리는 ‘순교’의 세 번째 의미가 ‘피를 흘려 하는 증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고결한 순교자들은 고문을 당하는 그 시간에 육체를 떠나 있다는 것과, 더구나 주님께서 그들 옆에 서서 그들과 이야기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었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2,2)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오. 나에게 불을 참을 힘을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이 못으로 (나를) 고정시키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디어 내는 힘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3,3)

 

하지만 피 흘리는 증언에서 주의할 점은 바로 순교는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야지 자기 스스로의 뜻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순교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이처럼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4,1)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지하였으며 이 세상의 고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2,3)

 

결국 그리스도인은 피 흘리는 순교를 통해 영성 생활을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한 시간의 대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 주님께서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이미 천사가 된 그들에게 이 좋은 것들을 보여 주셨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2,3)

 

 

순교자 공경과 순교일 기념

 

순교자와 관련된 신심은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그 폴리카르푸스는 훌륭한 스승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순교자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일어난 그의 순교를 본받기를 열망합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9,1) “우리는 순교자들이 왕과 스승께 비할 데 없는 애정을 쏟으므로, 주님의 제자들이며 본받는 사람들인 순교자들을 진실로 사랑합니다. 우리도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고 동료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7,3)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순교자의 유해를 모시고 기도하며 순교자 기념 축일 거행을 원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보석보다 더 귀하고 금보다 더 값진 그의 유골들을 모아 적당한 곳에 묻었습니다. …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전에 투쟁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순교할 사람들이 단련하고 준비하도록 그가 순교한 날을 기념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8,2~3)

 

그러므로 순교 영성이란 먼저 그리스도의 수난에 기꺼이 동참하며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 순교에 대한 열망을 가지되, 순교 기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허락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입니다. 이것이 신비체험의 여정이며, 피 흘리는 순교에 담긴 영성 생활입니다. 2세기에 꼴을 갖춘 순교 영성은 한동안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의 한 축을 이뤘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22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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