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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5: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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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4 ㅣ No.864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5)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⑧


오전 9시, 성령의 선물 청하는 기도 바쳐

 

 

- 성령 강림. 성녀 엘리사벳은 성령이 강림하신 오전 9시에 드리는 3시과 성무일도 신심이 깊었다.

 

 

우리는 성녀 엘리사벳의 여러 작품을 통해 그가 성령에 대해 지녔던 깊은 신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녀는 자신을 변모시키고 성화하시는 성령의 힘을 체험했으며 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광의 찬미’

 

우선, 성녀는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 3년전인 18살이 되던 1898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쓴 시를 통해 성령에 대한 자신의 체험, 당시 자신이 성령과 어떻게 친교를 나눴는지 표현했습니다.

 

“지고의 선이며 아름다움이신 성령이여! / 아, 흠숭하올 사랑하는 그대여! / 당신의 숭고한 불꽃으로 / 제 육신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불사르소서! / 이 삼위일체의 정배는 / 오직 당신 뜻이 이루어지길 열망합니다!”

 

그로부터 8년 후, 1906년 7월에 엘리사벳은 ‘영광의 찬미’라는 자신의 소명을 충만히 실현하는 가운데, 자신이 어린 시절 체험했고 마음에 깊이 품었던 성령에 대한 원의가 삶 속에서 충만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체험하며 이를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영광의 찬미는 언제나 은총의 활동 속에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43). 그리고 이러한 선상에서 이미 이승에서부터 천상의 지복을 미리 맛보며 산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성녀는 이 찬미가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가 자신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 성령의 작용 아래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하느님께 영광의 찬미가를 불러드리는 그의 소명은 성령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3시과에 대한 신심과 성령 강림

 

성녀는 일과 중에 바치던 시간경(時間經), 즉 성무일도 중에서 오전 9시에 바치던 3시과(時課)에 각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성령강림은 오전 9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사도 2,15). 

 

성녀는 단순히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만 관심을 가졌던 게 아니라 그 사건을 자신의 삶 속에서 현재화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서신을 교환하며 영적 우정을 나눈 슈비냐르 신학생에게 3시과를 할 때 그를 위해 성령의 선물을 청하겠다며 자신을 위해서도 그 선물을 청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사랑과 빛의 영께서 학사님께 ‘임하시어’ 당신의 모든 창조 사업을 이루시도록 매일 아침 학사님을 위해 3시과를 바칩니다. 학사님도 그 지향으로 3시과를 드리신다면, 우린 같은 기도 안에서 일치하게 될 겁니다. 저는 3시과에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습니다”(서간 214). 

 

또한 성녀는 같은 지향과 봉헌의 정신으로 영적 우정을 나눈 제이예라는 신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삼위일체 안에서 ‘하나 됨’을 봉인하고 완성하시는 사랑의 성령께서 당신 자신을 넘치게 부어주시도록 매일 ‘3시과’ 때 신부님을 위한 큰 지향으로 기도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성령께서 신부님을 신앙의 빛 아래 평화와 사랑 그리고 신성한 태양의 빛으로 밝게 빛나는 합일이 실현될 정상까지 데려가시길 빕니다”(서간 193).

 

 

성화하시는 성령에 대한 체험으로 초대

 

성녀는 이렇듯 일정한 시간경 또는 특정한 신심 기도를 통해 성령의 선물과 인도를 청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지향을 갖고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들 역시 성화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깊이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서 성령은 우리 각자 안에 천국을 준비해 줍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나의 기트! 이 천국, 우리 아버지의 이 집은 ‘영혼의 중심’에 있단다”(서간 240). 그리고 앞서 말한 슈비냐르 신학생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저는 성령께서 사시는 제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저를 거둬들이고 은거하겠습니다.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1코린 2,10) 성령께서 신부님께 당신을 풍성하게 내려주시고 신부님의 영혼을 밝히 빛나게 해 주심으로써, 사랑의 사도께서 말씀하시듯이 신부님의 영혼이 커다란 빛 아래서 ‘거룩하신 분의 도유(塗油)’(1요한 2,20)를 받으실 수 있도록 성령께 청했습니다”(서간 226). 

 

또한 성녀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일치시켜 주고 사랑의 친교 안에서 그분을 흠숭하며 찬미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성령이시라고 보았습니다(서간 164). 그래서 이렇게 청합니다; “아, 제가 이 사랑의 영을 슬프게 해 드리지 않고 그분께서 제 영혼 안에서 당신 은총의 모든 창조물을 이루실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서간 230).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 깊은 곳까지 관통하도록 기도하곤 했습니다(서간 274).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2월 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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