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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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9: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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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22 ㅣ No.847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9)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②


삼위일체와 친교 맺을 때 천국의 문 열려

 

 

-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삼위일체와 친교를 나눔으로써 이승에서부터 천국을 살 수 있다고 성녀 엘리사벳은 가르친다.

 

 

신앙 고백의 핵심인 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로 우리는 인간 영혼 안에서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에 대한 깊이 있는 체험과 증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녀는 자신이 아는 많은 사람에게 이 소중한 체험을 나누고 그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도록 초대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에서만 드러나는 독특한 신(神) 체험입니다.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신 하느님,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신비 앞에서 초대 교회 당시 많은 신학자는 이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세상에 전할지 많이 숙고했습니다. 그 와중에 하느님의 유일함, 단일함을 강조하던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神性)을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오직 성부만이 하느님이시며 다른 두 분은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본 것입니다. 반면, 또 다른 이단은 세 위격의 고유성을 지나치게 주장한 나머지 각 위격이 본질마저 다른 세 분의 하느님이라는 소위 삼신론(三神論)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이단을 접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구원 역사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를 끊임없이 묵상하고 성찰하며 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여러 보편 공의회를 통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세 위격(位格)이시며 동시에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고 장엄하게 선포하게 됩니다. 이는 성부만을 하느님으로 보는 유다교, 이슬람교와 분명히 구별될 뿐만 아니라 힌두교 같은 다신교와도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만이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이십니다.

 

 

구원 역사를 통해 계시된 세 위격

 

하느님께서 세 분이며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신비는 무엇보다도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시됐으며, 우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하느님, 그들과 더불어 계약을 맺고 당신의 백성이라 부르신 하느님, 그 하느님은 다름 아닌 성부(聖父)이셨습니다.

 

성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자 메시아를 보내셨으며 그분이 바로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자(聖子)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새로운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너무도 지고하고 거룩해서 감히 입에 올릴 수조차 없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성부의 유일한 아드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분은 공생활을 마치고 죽음과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인류를 향한 새로운 구원의 문을 열어젖히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부와 성자께서는 인류 구원이라는 지상 최대의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에 성령을 파견해 주셨습니다. 구원 역사에서 성령(聖靈)이 계시되는 순간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구원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되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을 비롯해 여러 보편 공의회에 참석한 교회 지도자들은 다양한 이단에 맞서 한 분이면서 동시에 세 분이신 하느님을 고백하고 이를 ‘위격’, ‘본질’, ‘본체’ 같은 철학 개념들을 차용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적인 신앙 고백을 후대의 모든 신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장엄한 ‘신경’(信經)에 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앙을 고백하며 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내주를 통해 천상 지복을 미리 맛보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우리들의 영혼 안에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은총을 통해 머물기 시작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존재의 근원이시므로 모든 곳에 현존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영혼에 내주하시는 것은 ‘조력(助力) 은총’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께서 건네시는 사랑의 관계에 명시적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하느님께서 은총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기 시작하십니다. 이것을 ‘내주(內住) 은총’이라고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뚜렷하게 알아들은 은총은 바로 이것이며, 훗날 발레 신부의 영적 지도를 통해 깨달은 것은 그 하느님이 세 위격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영성 생활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 세 분과 각각 고유한 인격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자신을 다른 위격에게 온전히 내어주고 받는 상호 간 사랑과 생명의 친교에 우리 또한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러한 삼위일체의 내주에 대한 체험을 신비 체험의 바탕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신비 생활이란 믿음을 통해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에 대해 체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온전히 누리게 될 천상의 지복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승에서 미리 천국을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자신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사랑과 생명의 친교를 나눔으로써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살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23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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