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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자폐의 심리학 - 레인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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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17 ㅣ No.851

[심리학이 만난 영화] 자폐의 심리학, 레인 맨

 

 

팜스프링스로 여자 친구와 주말여행을 떠나던 찰리(톰 크루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다. 그는 바로 차를 돌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집이 있는 신시내티로 향한다.

 

 

차가운 추억

 

고향은 따뜻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공간이지만, 찰리에게 고향 집은 차가운 기억만 남아 있는 곳이다. 찰리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자식보다 장미와 자동차를 더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1949년형 뷰익 로드마스터 컨버터블을 가지고 있었다. 8천 대 정도만 생산된 8기통의 클래식 자동차. 하지만 아버지는 차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찰리는 거의 전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자신의 성취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한 번만 그 차를 몰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안돼.” 사춘기였던 찰리는 아버지의 자동차 열쇠를 몰래 훔쳐 친구 네 명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동차를 몰고 나갔을 것이라는 말은 쏙 뺀 채, 자동차를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보석금을 내서 그날로 풀려났지만, 찰리는 이틀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아버지가 보석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있은 뒤 찰리는 아버지를 떠났다. 그 뒤로도 아버지를 찾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사람들

 

장례식에 참석한 찰리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 준 친구와 여자 친구는 찰리를 걱정하지만, 사실 그는 어떤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유언을 확인하려고 온 것뿐이었다.

 

담당 변호사가 찰리에게 아버지의 유언장을 읽어 주었다. 유언장에서도 아버지는 찰리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래전 아버지와 같았다. 아버지는 찰리에게 뷰익 자동차와 장미를 물려주었다. 그 외의 모든 재산, 그러니까 집을 포함한 3백만 달러 상당의 유산은 다른 상속인에게 물려주었다.

 

“장미? 장미라니!” 찰리는 유언장의 내용을 듣고 아버지를 저주한다, 만일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는 거기에 있을 거라고, 그곳에서 지금 자신을 바라보면서 비웃고 있을 거라고. 아버지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찰리에게 냉랭함을 유지했던 것이다.

 

사실 찰리는 아버지만큼 냉정하고 타인의 마음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일과 돈이 전부다. 수입차 딜러인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에게 여자 친구는 일을 함께하는 동료이자 성적 대상일 뿐이다. 여자 친구는 늘 따뜻한 대화를 원하지만 그에게 대화는 돈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여자 친구와 1년 넘게 사귀면서도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레인 맨’과 레이먼

 

찰리는 유산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유언장 속 3백만 달러의 상속자를 찾아 나선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먼(더스틴 호프만), 알고 보니 찰리의 친형이었다. 자신이 외아들이라고 생각하던 찰리에게 형이 있었던 것이다.

 

찰리의 기억 속에도 레이먼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는 했다. 찰리는 자신이 무서워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 주던 ‘레인 맨’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만 그저 자신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노래를 불러 주며 어린 찰리를 달래 주던 친형 레이먼이 레인 맨이었다. 어린 찰리는 레이먼을 ‘레인 맨’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찰리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자폐증을 앓던 레이먼을 시설로 보내면서 둘은 헤어졌다.

 

 

서번트 증후군

 

“그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요.” 레이먼을 9년 동안 돌본 간호사가 레이먼의 증상을 말해 준다. 자폐증의 큰 특징은 타인과의 의사소통 장애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보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상호 작용이 불가능하고 동료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말 그대로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 갇혀서 살게 되는 것이다.

 

자폐증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부르는 자폐증은 특정 영역에서 매우 뛰어난 기술이나 재능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 예로, 다니엘 타밋이라는 사람은 운전은 커녕 왼쪽과 오른쪽조차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3.14로 시작하는 파이(π) 값의 소수점 아래 22,514자리 수를 5시간 9분 54초에 걸쳐서 정확하게 기억해 내서 유럽 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레이먼도 전화번호부에 나온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할 정도로 엄청난 기억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문제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체계자와 공감자

 

흥미로운 사실은 자폐증에 성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폐증은 여아보다 남아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네 배가량 더 높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자폐증 전문가 사이먼 배런-코헨(Simon Baron-Cohen)은 극단적인 남성 두뇌를 타고났기 때문에 자폐증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남성은 체계화하는 두뇌를 가진 체계자(systemizer)로 태어난다. 남성은 대상을 규칙에 따라 지각하고, 수학적이며 기계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에 특화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반면, 여성은 공감하는 두뇌를 가진 공감자(empathizer)로 태어난다. 여성은 타인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쉽게 읽어 내는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남성들 중에도 공감자의 두뇌를, 여성들 중에도 체계자의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배런-코헨 박사는 체계자의 두뇌를 가진 두 명이 만나서 아이를 낳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유사한 사람들끼리 매력을 느끼고, 짝을 맺는 경향 때문에 두 명의 체계자가 결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체계자의 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아이는 극단적으로 남성적인 뇌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곧 공감하는 능력은 제로에 가깝고,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능력만 극도로 뛰어난 뇌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폐적 인간

 

배리 레빈슨 감독의 1988년 작 ‘레인 맨’(Rain Man)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레이먼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찰리나 찰리의 아버지도 자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레인 맨은 체계자의 뇌를 가진 세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들 세 남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조금씩 자폐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과 논리만을 주장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증상 말이다.

 

찰리는 유산을 받으려고 어쩔 수 없이 레이먼과 함께 아버지의 유산인 뷰익 로드마스터를 몰고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찰리의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여행의 출발은 ‘자폐증 환자’ 레이먼과 함께 시작했지만, 여행의 끝에서 그는 ‘형’ 레이먼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따뜻함

 

레이먼은 놀라운 관찰력과 기억력을 보여준다. 레이먼이 보여 준 천재적인 능력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찰리를 감동시키고 그의 마음을 연 것은 어린 동생이 뜨거운 물에 델까 봐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동생을 달래려고 노래를 불러 주던 레이먼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자폐증이었음에도 본능적으로 아기였던 동생을 보호하려 했던 레이먼. 세상을 향해 굳게 닫혀 있던 레이먼의 마음도 아기였던 동생 찰리에게만은 열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성인이 된 찰리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은 따뜻했던 레인 맨에 대한 추억이었다. 유능함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정작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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