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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미사 때 사제의 정치적인 강론에 거부감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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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19 ㅣ No.344

[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미사 때 사제의 정치적인 강론에 거부감 생깁니다

 

 

질문

 

70대에 들어선 남성 신자입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이지만, 미사 시간에 정치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강론을 듣기가 힘듭니다. 40대의 젊은 신부님이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진보적으로만 강조하십니다. 물론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정치적인 이야기만 강론 때 하시니까 거부감이 많이 듭니다.

 

 

답변

 

사제들의 사목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강론일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에서 사제들은 주님께 받은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일반적으로나 추상적으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영원한 진리를 구체적인 생활환경에 적응시켜 설명하여야 한다.” 

 

이런 말씀에 충실해서 강론을 준비하고 강론을 해도 이따금, 강론에 대해서 알아듣기 어렵고 혹은 정치적인 발언이라서 싫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제가 1990년대 말에 일본의 본당에서 사목을 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보좌신부인 저를 포함해서 3분의 신부님이 사목을 했었습니다. 하루는 본당 신부님이 교중 미사 중 강론을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성당 마당에 서 있었는데, 어느 신자 한 분이 밖에 계셔서 왜 나와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강론이 뭐 들을 게 있어야지요” 그러셨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일본 신자들은 사제의 강론도 듣기 싫으면 미사 중에 나가는가 하면서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요즘 우리의 상황을 보면 강론시간에 열심히 듣는 신자도 계시지만, 주보를 읽으시거나 묵주기도를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또 강론 내용에 대해서 반론을 펴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제들은 바티칸 공의회의 뜻을 따라 열성을 다해 강론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이해가 다르기에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생깁니다. 혹은 이해가 되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더군다나 정치적인 문제는 늘 민감한 사안입니다. 쉽게 해결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가족 내에서도 의견이 쉽게 나뉘는 것이 현실입니다. 추석날에도 정치적인 이야기로 가족 분위기가 싸늘해진 경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요즘은 세계화가 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견과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양성의 시대에서 다양함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자유로우려면 다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사제의 강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구약의 예언자들이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제의 강론에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애쓰는 신부님을 생각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말씀을 드려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996 서울특별시 광진구 면목로 32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16일, 이찬 신부(성 골롬반외방선교회 · 다솜터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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