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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회고록50: 나의 소원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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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21 ㅣ No.454

[추기경 정진석] (50) 나의 소원은 선교


작은 본당으로 끈끈한 유대감 조성

 

 

- 2000년 5월 동성고 강당에서 열린 서울대교구 선교대회에서 정진석 대주교는 강한 어조로 선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1998년 11월 23일, 정진석 대주교는 교구 사제들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각 사목구 주임은 목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당연히 담당한 신자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한 명의 사목구 주임이 합당하게 직무를 수행할 적정 규모보다 더 큰 사목구에 대하여는 본당 분할 신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명동주교좌성당 등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3보좌 신부를 가능하면 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정 규모보다 큰 사목구는 본당이 분할 신설되거나 적어도 주임대리가 임명되도록 사목자와 신자들이 합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관할 인구 9만 명 이상 신자 수 7000명 이상이 되는 본당은 1999년 이내에 새 본당 분할 신설이 요망됩니다. 본당 분할 신설이 시급히 요망되는 곳에서는 기존 본당 내 건물의 신축, 개축, 증축을 일절 금지합니다. 만약 건물의 신축, 증ㆍ개축이 부득이한 경우에는 해당 지구의 지구사제회의 심의를 거쳐 교구장의 서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교구 사제의 주 임무는 선교와 사목임을 명심해 주시고 각 본당에서는 매년 신자 수 10% 증가를 위한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주십시오. 신부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본당 설정 증가와 소공동체 활성화는 정진석 대주교가 착좌하기 이전부터 마음속에 깊이 담고 있던 사목적 과제였다. 그리고 본당 공동체의 대형화는 서울대교구의 큰 숙제였다. 정 대주교는 본당의 대형화가 사목적 장점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특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본당 대형화의 개선을 위해 교구는 이미 1996년에 ‘본당 신설 10개년 계획안’을 수립한 바 있었다. 10년 이내에 112개의 본당을 신설함으로써 본당 규모를 신자 수 4000명 이하, 사목 지역 반경 0.6km, 도보 10분 이내로 줄인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뿌리내린 참다운 본당 공동체’를 건설하고 가정, 소공동체, 본당의 삼위일체적 공동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정 대주교는 전임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사목 방향을 그대로 전수해 대형 본당을 분할하도록 독려하는 데 역점을 뒀다. 이러한 규모로 본당을 줄이는 것이 사제의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사목 활동과 신자들의 원활한 신앙생활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는 본당 구성원들 사이에 보다 강한 공동체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구역ㆍ반의 소공동체를 통한 선교를 지향하는 데 가장 적정한 규모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정 대주교는 착좌한 이후 본당 설립에 최선을 다했고 실제로 많은 열매를 맺었다.

 

2002년 7월 제15회 M.E. 가족모임 장엄미사에서 정진석 대주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서울대교구 제공.

 

 

1990년대 들어 서울대교구는 규모가 커지면서 본당 구성원 간의 대화와 협력이 어려워지고 교회의 본질인 일치와 친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목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라는 장기적인 사목 방향을 정했다. 교구는 신자들이 소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교회에서 멀어지는 청소년을 보살피고, 소외받는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기본 방향 아래 소공동체를 선교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전 교구적으로 기울여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바뀌고 소공동체 운동을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 실행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기본 정신을 살려 계속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과제였다. 정 대주교는 전임 김수환 추기경 때부터 진행해온 소공동체 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독려했고,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하기를 해당 부서에 주문했다.

 

정 대주교는 가능하면 전임 교구장의 사목적 과제를 그대로 받아 수행하는 것이 큰 흐름에 따르는 것이고, 사목적으로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사목자들에게 갑작스러운 혼란과 불안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성격도 그대로 반영됐다.

 

정 대주교가 사목자로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선교였다. 사목이 무엇보다 우선 가치를 둬야 할 것은 선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 대주교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그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 선택과 결정이 선교에 도움이 되는가?’ 그가 하는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자신이 가장 즐기는 글쓰기도 결국에는 선교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하는 기도의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곳에서 정 대주교는 자신의 임기 동안 복음화율을 18%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교구 사목의 거의 모든 역량을 선교에 집중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대주교는 취임 다음 해 평화방송(현 가톨릭평화방송)과 가진 대담에서 이런 취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서울대교구장 착좌 후 처음으로 맞은 새해에 정 대주교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입을 뗐다.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이 되는 날, 제가 서울교구장으로 임명됐다는 것이 발표됐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참으로 우리 한국 교회를 이끄시는 섭리가 신비롭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30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은퇴하게 되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부터인지 정 대주교는 숫자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자신의 삶에서 숫자와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이 신비롭게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일생 전체를 되돌아보더라도 숫자에 대한 체험은 각별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어느 날짜도 무의미한 날이 없었다. 실제로 그의 강론이나 연설, 그리고 사적인 자리의 대화에서도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 큰 의미를 차지한다.

 

인터뷰 말미에 정 대주교는 신자 수 증가와 본당 신설에 대해 힘주어 강조했다.

 

“얼마 전 저는 교구 사제들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매년 10%의 신자 증가를 위한 노력과 본당 분할 신설을 거듭 당부했습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때에 신자 증가율이 기존 신자의 10%씩 됐던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200주년 때의 그 열성으로 돌아간다면 신자 10% 증가는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목자 한 명이 사목할 수 있는 신자 규모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서울대교구에는 신자 수가 7000명이 넘는 본당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경우 보좌 신부님들이 계시더라도 사목자와 신자들 간의 인격적 교류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3000명 정도의 신자를 기준으로 본당이 운영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본당 분할에 따른 성당 건축이 문제지요. 그래서 우리 신부님들께 비싸고 화려한 건축은 자제하고 아주 최소한의 필수적인 시설만 갖추는 조립식 성당을 지어 신자들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자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정 대주교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란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석에서 주변의 사제들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외국의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휑하니 빈 채 몇몇 신자들이 미사를 지내는 것과 시골의 낡고 허름한 성당이 신자들로 가득 차 살을 맞대며 바닥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 것 중 어느 것을 하느님이 더 좋아하실까?”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2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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