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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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2: 왜곡된 성적 욕망이 불러들이는 죄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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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3 ㅣ No.1592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2) 왜곡된 성적 욕망이 불러들이는 죄와 죽음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 1,15)

 

 

피임과 남성의 이기심

 

“여자 친구와 한 주에 2~3회 정도 성관계를 하는데요, 몇 주 전에 어쩌다 콘돔 없이 관계를 맺었는데 그때의 느낌이 잊히지가 않아요. 이후 여자친구한테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라고 조르고 있는데, 완강히 싫다고 하네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끔 질외사정으로 하자고 해도 안 된다고, 어떻게 해야 여자친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여자친구가 임신하면 전 무조건 여자친구 편입니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명문대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글이다. 이 남학생은 여자친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걸까? 자기 쾌락을 위해서 여자친구에게 피임약을 강요하는 이 남학생은 여자친구를 존중하지도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임신하면 무조건 여자친구의 편이 돼주겠다고 하는데, 진심일까? 이는 의식 수준의 판단이며, 여자친구를 물건 취급하는 자신에 대해 비난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덧붙인 말이다. 무의식 깊은 곳에는 여자친구를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물건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칠 가능성이 높다.

 

 

피임과 여성의 고뇌

 

여자친구는 임신할 거라는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남자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날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 관계는 서로의 욕구만을 만족하게 하는 관계일 뿐, 사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상황에서 피임약 강요가 지속하면 여성은 결국 피임약을 먹게 된다. 현실은 분명 ‘울며 겨자 먹기’의 강요인데 광고에서는 젊은 여성이 기쁨 가득한 얼굴로 “이루고 싶은 꿈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나는 피임약을 먹습니다. 나를 위해…”라고 포장한다. 맥락을 거세한 광고는 여성의 고뇌와 진실을 감춰버린다.

 

완벽한 피임은 존재할 수 없다. 성관계는 분명 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 둘은 신뢰와 책임으로 결합한 사랑의 관계가 아니므로 임신이 확인되면, ‘버려진 여자와 새 생명’ 그리고 ‘도망간 남자’로 분리된다. 성관계가 둘을 하나로 만든 것 같지만 그건 욕망의 결합이었을 뿐 진정한 사랑의 결속이 아니므로 책임의 문제를 만나면 폭격을 당한 듯 파열된다. 여자와 새 생명은 심각한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버려진 여자의 고통

 

“아기 아빠 바꿔주세요.” “왜 바꿔?” “같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녜요.” “얘! 너 정말 웃기는구나. 진짜 무서운 아이네! 무슨 책임을 지니? 내 아들 아기 맞아? 너 어떻게 책임져 주길 원해? 돈 달라고? 돈 달라는 얘기야? 아기를 담보로 너 지금 거래하자는 거야?” “거래가 아니라 책임을 같이 져야죠!” “무슨 책임을 져? 손뼉도 마주쳐야지 되는데, 내 아들이 네 아기 가지라고 너한테 원했니? 내 아들이 아기 낳아달라고 너한테 빌었어? 말해봐. 네가 원해서 임신했지 남자가 임신시킨다고 임신이 되니? 법대로 해봐. 누가 이기나 보게!”

 

임신 8개월 차 여성이 떠나간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는데 그 어머니가 전화를 가로챘다. 불쌍한 여인은 흐느끼면서 이 모든 배척과 거절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또 한 번 내침을 당한다.

 

“울긴 왜 울어? 말도 못하고 우니? 당하기만 하고 자빠졌어. 그러고도 애를 키우고 싶다고? 어디 미안한 마음은 있니? 애 키우려면 나가. 집에 들어오지 마. 너 안 볼 거야. 너 혼자 가서 길거리에서 키우든지 그 집 가서 키우든지 마음대로 해!”(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큐브’)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프로그램 장면이다. 여성은 한 자리에서 남자친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에게서 삼중의 내침을 당했다. 이는 실제 한국 여성들이 체험한 현실이다. 이런 내침은 미혼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서 상처가 된다.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악

 

그 첫 번째는 남자친구와 세상으로부터 내침받은 엄마가 태중의 생명을 내치는 낙태다. 원치 않는 생명이라 해서 죽임을 당할 수는 없음에도, 아무 죄 없는 생명이 배 속에서 목숨을 빼앗긴다. 죽어서도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불쌍한 영혼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원통한 일이다. 두 번째는 엄마가 임신 중에 당한 극심한 고통을 엄마와 한 몸으로 체험한 아기가 그 내침의 상처를 무의식에 깊게 간직한 채로 삶을 시작하는 세대 간 상처다.

 

태중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우울감과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 무의식 깊게 각인된 내쳐짐의 상처가 나를 계속 힘들게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말려 들어가는지 인식하기 어려우므로 치유와 회복의 길을 가기 어렵다.

 

이런 모든 현상은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 1,15)로 집약될 수 있다. ‘성관계는 자유롭게 하고 임신만 안 하면 된다’는 욕망이 무책임한 성관계라는 죄를 낳았고, 그 죄는 낙태와 다음 세대의 고통이라는 죽음을 낳은 것이다. 이 시대가 죄를 권리라고 속이고 있음을 영적 차원에서 깊이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23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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