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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유전자 가위와 합성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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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17 ㅣ No.1561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유전자 가위와 합성생물학

 

 

영화 ‘가타카’(GATTACA)는 유전자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섬뜩한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인간은 최첨단 유전 공학 기술로 탄생한 사람들에 비해서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낙인찍혀 큰 불이익을 받는다. 한마디로 ‘유전자 차별 사회’다.

 

공상 과학 영화들이 보통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과는 다르게 “머지않은 미래”라는 문구가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1997년에 영화가 개봉된 점을 고려하면 그 미래가 어쩌면 우리의 현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2008년 5월 21일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상·하원의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한 ‘유전자 정보 차별 금지법’에 서명했다. 영화와 같은 사태를 대비한 법이 발효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 것일까?

 

 

DNA, 20세기 생물학의 아이콘

 

근대 생물학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다윈 진화론과 멘델 유전 법칙이 알려진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3년, 두 명의 젊은 과학자가 유전 물질의 물질적 실체인 DNA의 구조를 밝혀냈다. 이때부터 DNA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는 분자 생물학이 본격 가동되었다.

 

이 분야의 엄청난 연구 성과는 생명 현상을 물리와 화학의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DNA 구조를 규명한 지 반세기 만에 인류는 자신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체 정보를 완전히 해독하고, 나아가 인공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DNA는 ‘뉴클레오티드’의 연결체이다. DNA의 구성단위인 뉴클레오티드는 염기라는 화학 성분이 붙어 있는데,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이 이들이다. 영화 ‘가타카’의 제목은 바로 이 4개의 염기를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두 개의 DNA 사슬은 ‘A-T, G-C’라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염기들이 결합하여 이중 나선 구조를 이룬다. 이것이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발표한 DNA 구조 모형이다. 바로 이 DNA가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되면서 생명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유전 물질의 물질적 실체이다.

 

 

차원이 다른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카스9

 

1970년 세균 세포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DNA가 그 세균 안에서 토막토막 잘리는 신기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세균을 감염하는 바이러스를 ‘박테이로파지’ 또는 줄여서 ‘파지’라고 부른다. 이들은 숙주로 삼는 세균의 세포벽에 달라붙어 자신의 DNA를 세균 세포 속으로 주입한다.

 

하지만 세균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세균은 침입한 바이러스 DNA를 파괴하는 우리의 면역 세포와 흡사한 효소를 가지고 있다. 이런 효소들은 자기 DNA와 외래 DNA를 구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DNA의 특정 염기 서열만을 인식하여 절단한다. 그래서 이들을 총칭하여 ‘제한 효소’라고 한다.

 

서로 다른 DNA 조각을 이어주는 ‘리가아제’라는 이름을 가진 연결 효소는 1960년대에 이미 발견된 상태였다. 이 연결 효소와 제한 효소는 각각 ‘유전자 풀’과 ‘유전자 가위’라고 보면 된다. 이제 풀과 가위를 얻었으니 종이 공작하듯이 DNA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DNA 재조합, 곧 새로운 유전 공학 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유전 공학은 ‘크리스퍼-카스9’이라는 신형 유전자 가위를 추가로 얻게 되었다. 2012년 두 명의 여성 과학자가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이 유전자 가위로 모든 DNA 부위를 정확하게 자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크리스퍼-카스9의 놀라운 점은 이전 유전자 편집 기술보다 훨씬 간편해서 비용도 무척 적게 들고, 또 너무도 정교해서 그 성공 확률도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졌다.

 

인간 배아 유전자 연구의 허용 여부를 놓고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뜨겁다. 2015년 이런 논쟁의 불꽃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의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상 처음으로 인간 배아에 적용하여 유전자 편집을 시도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의 유전 정보를 임의로 편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배아에 온전히 검증되지 않은 크리스퍼 가위를 사용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2016년 세계 최초로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가했다. ‘맞춤아기’(designer baby)의 탄생이라는 영화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신에게 내미는 도전장?

 

인간을 포함해서 오늘날까지 해독된 동물의 유전체는 80여 종에 달한다. 식물도 100여 종의 유전체가 해독되었고, 미생물의 경우에는 7만 종 이상의 유전체 정보가 공개된 상태이다.

 

이 정도라면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탐구심을 가진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명책의 ‘독자’를 넘어서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피어날 법하지 않은가?

 

실제로 그러했다. 여러 과학자가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유전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으니, 역으로 유전 정보를 조립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자는 주장을 펼쳤다.

 

2004년 6월 첫 합성생물학 국제 학술회의인 ‘합성생물학 1.0’이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열렸다. 그 뒤 합성생물학은 다양한 학문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융합 학문으로 발전하며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생명체도 컴퓨터와 같은 기계처럼 모듈(module, 떼어 내어 교환하기 쉽도록 설계된 컴퓨터의 각 부분)로 나누어 접근하면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식에 첨단 유전자 변형 기술을 적용하면 생명체를 맞춤형으로 변형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현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 유전체를 이식하여 세균의 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원하는 유전체를 설계하고 합성하여 다른 생명체에 이식해 맞춤형 생명체를 만들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바이오 융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합성생물학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응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PCSBI는 2010년 보고서에서 합성생물학이 재생 가능 에너지와 의료, 보건, 농식품, 환경 등의 분야에 응용될 수 있어 잠재력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약 회사인 노바티스는 합성생물학을 이용하여 2013년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각지에서 인체 감염이 확산된 H7N9형 조류 인플루엔자(AI)백신을 개발했다.

 

중국 위생 당국이 연구자용으로 인터넷에 공개한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 서열을 내려받은 연구진은 단 이틀 만에 중국 현지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바이러스를 만들어 냈다. 나흘 뒤에는 본디의 바이러스에서 독성 부분을 제거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합성한 다음, 이를 이용해 백신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기존 방법대로라면 수개월 걸렸을 과정을 불과 며칠로 단축한 것이다.

 

하지만 합성생물학에 대한 우려도 크다. 2010년 PCSBI 보고서에는 합성생물학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혁신을 일으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권고 사항, 곧 공익성, 책무, 지적 자유와 책임, 민주적인 숙의 과정, 정의와 공평이라는 다섯 가지 윤리 원칙에 따라 기술의 사회적 의미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인류에게 잠재적 혜택과 동시에 잠재적 위험을 안겨줄 수 있는 신생 기술들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대처 원칙도 제시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의 낙관적인 응용 가능성을 알리는 데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정부의 조정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과학은 두 가지 요인, 곧 ‘기술’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에 힘입어 발전한다. 기술이 없으면 과학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비전이 절실한 이유다.

 

두말할 나위 없이 현대는 과학의 시대다. 특히 생물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자연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의 주체인 인간을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생물학은 미래 과학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다.

 

좁게는 제반 학문에, 넓게는 사회, 문화, 문명 그리고 자연 전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생물학은 이제 융합 학문으로의 기반을 견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생물학은 다른 학문과 함께 과학의 비전을 성찰해야 한다. 바다처럼 넓고 깊어야만 큰 배를 띄울 수 있듯이 현재의 영향력과 미래 잠재성에 비추어 볼 때, 생물학은 새로운 만남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또한 만나야만 한다.

 

다른 학문에서도 생물학과의 만남은 필요하다. 가장 활력이 넘치는 지적 영역과의 창조적인 조우로 융합 학문의 현실성과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응빈 - 연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이며 같은 대학교 생명시스템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미국미생물학회 학술지 편집위원,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생명은 판도라다」 등 여러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김응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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