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강론자료

2019-02-17.....연중 제6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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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9-02-16 ㅣ No.2290

연중 제6주일 (다해)

예레미야 17,5-8           1코린 15,12.16-20          루카 6,17.20-26

2019. 2. 17. 이태원

주제 : 사람이 찾는 행복

삶에서 이루고 싶은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주변의 사람에게 물으면 대답하는 표현에는 행복에 관한 것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에게 물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는 이미 삶에서 행복하다고 여기고, 다른 것을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이 질문을 하더라도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행복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삶에는 상대적인 것이 함께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삶에서 만나는 두 가지의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생각해야, 사람이 살면서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시각이고 판단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을 얻으려면 불행은 피해야 하는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루카복음은 마태오복음에서 말하는 산상설교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에 관한 것을 평지에서 하셨다는 내용으로 전합니다. 마태오복음서에 나오는 산상설교이든 루카복음서에 나오는 평지설교이든 그 내용의 가짓수에도 차이가 있고, 구성에도 약간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루카복음서에 나오는 행복과 불행의 비교는 마태오복음서의 내용보다 알아듣기가 쉽습니다. 알아듣기가 쉽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간단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현실의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입니다. 좀 더 강조한다면, 우리는 현실에서 긍정하지 않을 다시 말해서 받아들이지 않을 내용이라는 뜻도 가능합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미움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는 사람을 우리가 행복하다고 여겨야할까요?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현실에 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하면 삶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라서, 드러나는 말로는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삶에서 그 말씀대로 살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판단대로 산다면, 우리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현실의 우리가 잘못 살고 있다는 주장일 텐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긍정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긍정하는 것은 좋아도 우리가 삶의 선택을 분명히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험을 하겠습니까?

 

현실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현실주의자들이 하는 주장이 옳다고 할 수도 있고, 교회가 말하거나 설명하는 하느님에 관한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사람은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평행선의 길을 가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돌릴 수 있을 방법은 없겠지만, 사람이 그 세상을 얼마나 넓게 보는 존재이기에 하는 이야기인지 구별해야 할 일입니다.

 

신앙에서 좋고 훌륭한 것으로 여기는 행복은 세상의 것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불행한 것을 신앙에서는 행복한 것으로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몇 가지가 신앙에서는 행복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 세상의 불행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대상을 보면서 표현은 달리하지만, 넓게 보면 그 안에 담는 의미는 같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불행하기를 바라는 공동체는 세상의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추구하는 행복이 하느님을 떠나서는 얼마나 가능한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예레미야예언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만,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듣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사람의 삶이 하느님께 연결되게 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에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행복이 내 삶에도 이루어지기를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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