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13,44-52 보물, 진주, 어부의 비유 (2017. 7. 30. 연중 17주일)

스크랩 인쇄

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07-28 ㅣ No.2181

하늘나라는 이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자 그것을 덮어두고 기뻐하며 물러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은 세상이며 감춰진 보물은 영적 생명이다. 하늘나라는 오직 믿음으로 볼 수 있으되 사람의 지혜로는 볼 수 없다. ‘덮어둠은 사람의 지혜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불멸에의 희망으로 기쁘다.’ ‘물러감자아의 내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성령을 내려주신다. ‘가진 것은 세상에 대한 집착이다. 이 세상 모든 것보다 나 자신이 중요하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영적 자아를 회복하고 세상의 주인이 된다.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팔아서 산다.’

 

욕망을 포기하는 것은 가시적인 사건이지만 자아를 회복하고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사건이다. 욕망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큰 손해를 보는 거래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제자는 이 거래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익을 보고 있다.

 

 

또한 하늘나라는 이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값진 것을 하나 발견하자 물러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좋은 진주를 찾아다님은 세상의 스승들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는 얼핏 진주처럼 보이기는 하되 진품이 아니다. 사람의 지혜는 사람을 구속하고, 자가당착에 빠지며, 죽음과 함께 소멸하고 만다. ‘진주는 부드러운 조개 살 속에서 성장한다. 이처럼 영적 생명은 보이지 않은 성령의 힘으로 성장한다. 성령은 참된 자유, 지혜, 생명을 준다. ‘값진 진주는 말할 것도 없이 영적 생명이다.

 

 

또한 하늘나라는 호수에 그물을 던져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물이 가득차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세상 종말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천사들이 나가서 의인들의 무리에서 악한 사람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불가마에 던질 것이며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어부가 건져 올린 그물에는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어부의 판단 기준을 단 하나,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먹을 수 없는 물고기는 아무리 크고 아름답더라고 버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쾌락, 재물, 명예, 권력에 집착하는 육적 자아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늘나라에서는 오직 영적 자아만이 쓸모가 있다.

 

종말은 육신의 죽음이며 불가마는 성령에서 오는 식별의 지혜이다. 육적 자아는 성령의 불에 의해 소멸되지만 영적 자아는 성령의 불로 더 힘차게 타오르며 완성된다. ‘울음은 생명을 상실한 것에 대한 슬픔이며 이를 갊은 허무에 대한 공포이다. 사람의 운명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이미 드러나고 있다. 죽고 나서 예기치 못한 상과 벌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다 알아들었습니까?” 그들이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가 말하였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신의 곳간에서 새 것과 헌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비유들을 말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므로 그의 비유를 잘 알아듣는다. “!”는 영적 깨달음을 지시한다.

 

율법학자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다른 예언자들에게 내려주신 율법조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제자는 성령에 힘입어 율법을 완성하고 있으므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율법학자이다. 율법조항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율법조항이 가리키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람과 하느님의 친교이며 사람은 오직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성령의 지혜로 율법을 완성하는 하늘나라의 율법학자이다.

 

자신의 곳간은 하늘나라의 제자 자신이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제자에게 말씀을 건네시므로 그는 자신 안에서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모든 것을 보장한다. 이에 비하여 율법 규정 자체에 골몰하는 율법학자는 남의 곳간을 엿보는 사람처럼 백성의 허물을 살핀다.

 

새 것은 거듭 쇄신하는 영적 자아이며 헌 것은 육정이다. 영적 깨달음이 끊임없이 깊어짐에 따라 육정은 저절로 다스려지며 세상은 더욱 풍성한 의미를 드러낸다.

 

예수의 고향은 하늘나라이다. 그는 성령의 힘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므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늘 고향에 있다. 예수는 고향 사람들에게 참된 고향을 알려주기 위해 떠난다. ‘고향은 하늘나라와 세상을 동시에 가리키는 상징이다.



2,97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