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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 난민의 여정에 함께합시다 (2) 이주 노동, 광범위한 사목적 관심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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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25 ㅣ No.1084

[난민의 여정에 함께합시다] (2) 이주 노동, 광범위한 사목적 관심 필요해


우리를 바라보는 슬픈 눈빛,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 지난해 12월 17일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열린 이주노동자 대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철폐를 외치고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제공.

 

 

“희망을 품고 한국에 왔는데, 실상 제가 겪는 일은 차별과 임금 체불뿐이네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역만리 타국 한국을 찾아 일하러 온 이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 노동자들이다. 돈을 벌어 행복한 삶을 살고자 가족을 두고 머나먼 타지를 찾은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꿈이 아닌 ‘인권 차별’, ‘언어와 문화의 장벽’, ‘제도적 한계’뿐이다. 대한민국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고용허가제, 왜 ‘현대판 노예제’인가

 

국내 이주민 수는 200만여 명. 대한민국은 분명 ‘다문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내 이주민이 법과 제도의 한계와 차별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국내 취업을 위해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노동권은 특히 개선돼야 할 분야로 꼽힌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여느 외국인들처럼 희망을 갖고 한국에 들어와 일하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끝내 죽음을 택했다. 그는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사업장 변경을 원했지만, 거절당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그를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내몰았을까. 

 

‘꿈’을 ‘절망’과 ‘죽음’으로까지 내몬 것은 외국인 관련 노동법으로 대표되는 ‘고용허가제’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허가ㆍ관리하고자 2004년부터 시행된 제도. 주로 심각한 인력 부족을 겪는 제조업이나 기피(3D) 업종의 사업체들에 해외 노동력을 공급하고자 도입됐다. 사업주가 필요한 근로자 수를 신청하면 정부가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입국한 외국인을 연결해준다. 법무부에 따르면 취업 자격을 가진 국내 총 외국인 수는 56만 9809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E-9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일하는 16개국 출신 이주노동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27만 7055명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지닌 이른바 ‘독소 조항’은 이들의 자유로운 노동권을 박탈하는 ‘목줄’이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E-9 비자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겐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 폭행과 차별 등 부당한 처우가 입증돼야 하는데, 이 내용을 전달할 권한 또한 사업주에게만 있다.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기간도 신청 후 3개월로 제한되며, 이 기간 이주노동자가 직접 구직 활동을 할 수 없다. 3개월이 지나면 구직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이른바 ‘불법 체류자’가 된다.

 

사용자는 이주노동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상시 근로자 수가 5명 이하인 사업장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이주노동자는 출국해야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의 최대 근무 연한은 4년 10개월이다.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액은 지난해에만 515억 원이 넘는다.

 

법ㆍ제도가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에겐 사실상 ‘노동의 자유’가 없다. 임금부터 직업 선택, 퇴직금 수령 등이 철저히 사업주 손에 달려있으며, 이주노동자들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행과 폭언, 열악한 노동 환경과 임금 체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지난 한 해에만 수십 명의 이주노동자가 이 같은 제도적 차별과 사업주의 횡포 속에 악취와 곰팡이 가득한 돼지농장, 이불공장, 축사 등지에서 일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14년 된 고용허가제가 여전히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이유다.

 

딘 옥빈씨와 트란 티엔 치엔씨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더욱 친구이자 동료로 여겨주면 좋겠다”며 “한국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이정훈 기자.

 


한국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하며 살고 싶어요

 

딘 옥빈(프란치스코, 34)씨와 트란 티엔 치엔(요셉, 36)씨를 만난 건 11일 오전 서울 보문동 베트남공동체에서다.

 

시종 활기찬 미소를 보인 딘씨는 공동체 미사가 끝나자 마이크를 잡고 연신 사람들에게 안내 사항을 전달하는 베트남공동체 회장이다. 옆에서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트란씨도 공동체 간부로 “매 주일 함께하는 공동체 미사는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고, 예수님께 위로받고 기도드리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주노동자다. 딘씨는 올해 8년째 국내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트란씨는 플라스틱 사출금형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한다. 트란씨는 성실히 일하면서 관련 분야 자격증을 취득해 요건이 까다롭다는 ‘E-7 비자(전문 인력 비자)’를 받았다. 그러나 딘씨는 첫 사업장에서 퇴사한 뒤 출국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며 가졌던 아쉬움을 호소했다.

 

딘씨는 “건설 현장 노동자로서 이곳저곳의 현장을 옮기며 일해 오고 있다”며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받는 월급으로 아기를 제대로 키우기 어려워 얼마 전 고국으로 보냈다”고 했다. “아이가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할뿐더러 회사가 자주 임금 체불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딘씨는 “식비와 생활비, 월세를 내고 나면 한국에서 지내는 게 사실 빠듯한데, 집주인도 관리 소홀을 핑계로 보증금을 깎거나 늦게 주는 등 회사와 사회에서 감내해야 할 차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트란씨는 “200만 원 조금 넘는 월급으로 세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힘겹지만, 10년째 한국에서 일하면서 고국의 동생 6명이 모두 대학까지 교육을 잘 받고 있다”고 했다. 트란씨는 “처음 한국에 와서 한국인 상사와 동료들이 막 대할 때엔 마음이 아파 혼자 울 때도 잦았다”며 “저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편이지만, 친구들은 새해에 월급을 올려준다고 해놓고 각종 복지 혜택을 이유 없이 깎아버리는 등 여전히 피해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딘씨는 “아기, 부모님과 떨어져 살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돈을 많이 받지 않아도 되지만, 임금 체불과 생활 속 차별이 조금만 개선되면 좋겠다”고 했다.

 

트란씨는 “한국의 선진화된 환경이 참 좋다. 이런 좋은 환경 속에 사는 한국인들이 우리를 동료로, 친구로 바라봐주면 좋겠다”면서 “한국에서 좋은 기술을 배워 한국과 베트남을 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명칭부터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교회 내 이주사목 전문가들은 외국인 ‘인권 유린’과 ‘사회적 타살’의 도구로까지 전락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총무 이상민 신부는 “고용허가제라는 이름부터 노동이 아닌, 고용에 방점이 찍힌 ‘고용주 위주의 제도’”라며 “‘노동허가제’로의 명칭 변경과 제도 개선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구직 활동을 하고, 혜택을 받으며 똑같은 권리를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주노동자를 ‘단기간에 쓰다 내칠 수 있는 ‘노동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의식을 국민들이 먼저 가져야 제도 개선이 차츰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김평안 신부는 “불법 체류자를 줄이고, 합법적인 노동권을 인정하고자 만들어진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빡빡한 조항 탓에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들이 고국 가족과의 해체와 단절, 인권 박탈 등 다중 고통에 노출돼 있음에 관심을 갖고, 문화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이주사목위 위원장 남창현 신부는 “이주노동자 권리 문제는 국내 노동문제 현실과도 맞닿은 문제다. 정부가 사회에 만연한 제도와 인식의 ‘차별 고리’를 없애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의식을 갖춰야 한다”며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직접 사업장을 변경할 권리를 주고, 이들이 각자 지닌 탤런트를 자유롭게 발휘할 힘을 북돋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2월 25일,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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