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29: 세례명과 커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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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07 ㅣ No.630

[사유하는 커피] (29) 세례명과 커피명


좋은 커피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면

 

 

이름이란, 얼굴을 기억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곧 잊혔고, 내 삶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휑한 바람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일학교에 들어가 세례명으로 불릴 때에서야 어머니의 태중에서 받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점차 세례명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인간에게 이름이란 물건에 붙는 꼬리표 이상의 무엇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세례명은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는 징표이다.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고 14세기 비엔 공의회(1311~1312) 이후 도입된 일종의 문화이다. 세례명이 신앙심이 깊고 죄짓지 않는 선한 사람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선행을 실천하라는 가톨릭의 당부이자 당사자의 다짐이다.

 

세례명이 삶의 지향점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9~20세기 우르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은 아브람(Abram)이었다.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브람은 99세가 돼서야 하느님에게서 ‘수많은 군중’을 뜻하는 하몬(hamon)이 합쳐진 이름 ‘아브라함(Abraham)’을 받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얻고 이스라엘, 이슬람 등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됐다. ‘예수’는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부활에 대한 약속이 이름에 담겨 있다. 아브라함과 예수의 사례를 통해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이끌어주고 응원하는 축복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이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본능적이다, 그 사례는 18~19세기 아프리카 노예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와 노예생활에서 구한 인물이나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인물을 성경에서 찾아 이름을 붙였다. 당시 노예 이름의 24%가 모세, 새드락, 솔로몬 등 성경 속의 인물들이다. 새드락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로니아 포로 시절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에 던져졌으나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남은 인물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열연한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여주인공은 ‘주먹 쥐고 일어서(Stands With a Fist)’라는 인디언식 이름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들의 세계로 동화된다. 사회학자 밀러는 “이름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붙여주고 인정해주는 사회적 개성(social personality)”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 이름은 그 이상의 신비함을 담고 있다.

 

이름으로 커피를 생각한다. 커피에서 신을 보았다는 둥, 장미향이 풍긴다는 둥 온갖 찬사를 보내며 귀한 커피라고 자랑하는 커피들을 보면 이름이 실망스럽다. 게이샤, 모카, 루메 수단, SL23, H16, 마르셀레사 등 커피 이름들이 외래어이기에 신비감을 주지만 유래를 알면 화가 치민다. 이런 이름은 깨끗한 커피들이 지닌 고귀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게이샤는 커피나무가 자란 아프리카 마을명인데, 그마저 게샤를 틀리게 부르고 있다. 모카는 커피를 실어 나르는 항구의 이름이고, 루메 수단은 커피가 자란 나라에서 따왔다. 무엇이 특별한지 이름을 봐선 잠재력은커녕 정체성조차 알 수 없다. H16은 교배시험장에서 샘플에 붙었던 표기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마르셀레사는 프랑스의 지명 마르세유이다.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과 함께 혈통까지 따지며 고급문화를 만들겠다고 부산을 떨면서 이름은 이렇게 붙이고 있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의 관능을 어루만지며 깊은 사유와 묵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심해서는 안 된다. 세례명을 부여하는 심정으로 커피 품종의 혈통과 잠재력에 알맞은 이름을 선사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6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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