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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47: 신학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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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2 ㅣ No.625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47) 신학과 철학


누구나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 프레스코화가 바티칸 박물관 내 라파엘로의 ‘서명의 방’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재미있는 철학 시간이었습니다. 형이상학, 관념론, 경험론, 존재론… 이런 철학 공부가 재미있다고요? 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개념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주시던지, 철학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2016년 11월 가톨릭교리신학원, 최대환 신부님(요한 세례자)의 철학 수업이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50~60대 만학도들이었습니다. 철학과 신학, 얼마나 어려운 공부입니까. 공부하려는 의지와는 관계없이 학생들의 자세는 흐트러지기 일쑤여서 교수님마다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여간 많은 노력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최 신부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려고 이렇게 말문을 여시는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다들 “넹?”하는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무도 정답을 말하지 못했음은 물론입니다. “혹시 신부님 생일 아니신가요?” 한 학생의 우스갯소리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부님이 정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철학의 날입니다.”

 

유네스코(UNESCO)는 왜 철학의 날을 정했을까. 철학이란 대체 무엇인가. 철학과 우리 삶은 어떤 관계인가. 최 신부님은 철학의 날을 맞아 철학의 가치를 손에 잡힐 듯 쉽게 풀이해 주셨습니다.

 

 

신앙과 이성의 두 날개

 

하느님은 인간에게 신앙과 이성이라는 두 날개를 주셨습니다. 신학은 신앙의 원리를, 철학은 이성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철학 없는 신앙은 미신으로 변질되기 쉽고, 신앙 없는 철학은 허무로 흐르기 쉽습니다.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철학적 소양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평범한 신자들로서는 어려운 일이지요. 이 때문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사제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톨릭 신학대학의 교과과정이 특이하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생들에게 철학 공부를 집중적으로 시키고 있더군요. 신학대학이니 신학 공부 위주로 교과과정이 짜여 있을 것이라는 저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1학년과 2학년의 경우 매 학기 전공필수 과목이 대부분 철학이고, 신학은 딱 한 과목뿐입니다. 3학년과 4학년 전공필수 과목은 모두 신학입니다. ‘선 철학. 후 신학’의 수순이더군요. 개신교는 목사를 어떻게 양성할까. 주요 개신교 신학대학의 교과과정을 알아봤더니, 가톨릭 신학대학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역시 가톨릭 사제는 달라!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교황청의 사제양성지침이 궁금하지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은 신학대학 교과과정에서 철학과 신학을 적절히 조화롭게 편성하여야 하고(14항), 철학 과목은 신학생들이 인간과 세상과 하느님에 대한 건실하고 일관성 있는 지식을 얻도록 이끌어야 한다(15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철학을 모르는 사람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로 들립니다.

 

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그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정신학(否定神學)이 부정(‘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등의 묘사)을 통해 긍정(하느님의 본질)을 찾는 것처럼, 철학의 없음(無)을 통해 있음(有)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 더 용이할 것 같습니다. 철학이 없는 국가(정부), 철학이 없는 종교, 철학이 없는 정치, 철학이 없는 기업, 철학이 없는 사람 ….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말로가 어떠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까.

 

 

철학이 없는 조직이나 개인은

 

철학이 없는 조직이나 개인은 공통된 특징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크게 번성할 수 있지만,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곧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은 존재의 근본을 묻는 학문인데, 철학(근본)이 없는 조직이나 개인이 오래갈 수가 없지요. 철학이 없는 성직자는 혹세무민의 영혼팔이에 불과합니다. 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정상배(政商輩)와 같고, 철학이 없는 부자는 졸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나름의 인생관이나 역사관, 세계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시쳇말로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네스코가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을 ‘세계 철학의 날’로 정하여 철학적 가치의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올해는 11월 19일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22일,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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