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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40: 그리스도의 빛을 사랑한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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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1 ㅣ No.765

[성당 이야기] (40) 그리스도의 빛을 사랑한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

 

 

지난 회까지 고딕 성당 탄생의 원인이 되었던 국가와 교회의 상황들, 그리고 신학과 건축의 발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에 지금 소개할 한 사람을 더하면 고딕 성당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할 준비가 된 셈입니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생드니 수도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고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평생을 함께할 단짝이 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생드니의 수도원장이 되어, 자신의 수도원에 세상이 알지 못하는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쉬제(Suger, 1081~1151년)입니다. 그리고 그의 단짝은 프랑스의 왕이 되어 카페 왕조의 왕권을 강화한 루이 6세(1081~1137년)입니다. 수도원장 쉬제는 교회와 왕실의 전통적인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였고, 루이 6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후대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공정하고 성실했으며, 화합을 중요시했지만 우유부단하지 않았고, 활동적이지만 인내심이 있었으며,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면서도 세부적으로 관찰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국의 헨리 1세(정복왕 윌리엄의 아들)와 프랑스의 루이 6세 사이의 노르망디 영토 분쟁에서 쉬제가 중개자 역할을 했을 때 헨리 1세는 그를 평화의 끈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쉬제는 루이 7세(루이 6세의 아들) 때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떠난 왕의 섭정을 하였는데, 왕의 동생이 일으킨 쿠데타를 진압하고 안정된 왕권과 든든한 국고를 예루살렘 성지에서 돌아온 왕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쉬제는 또한 부패한 수도원을 개혁하였는데, 당대 최고의 영성가인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그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습니다. ‘(개혁 초기) 당신에 대한 거룩한 수도자들의 열의가 비판으로 향하게 된 것은 당신의 잘못 탓이오. 당신은 당신의 방식을 고쳐야 했소. ... (개혁 후) 그러나 결국 당신은 당신을 비판하는 자들을 만족시켰고, 심지어 우리가 당신을 칭송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소. 그렇게 많은 사람을 갑자기 그리고 동시에 귀의시킨 것을! 한 명의 죄인이 귀의해도 하늘에서 그토록 기뻐하거늘, 하물며 전체 회중의 귀의에 대해서는 어떠하겠소?’(에르빈 파노프스키, 『시각예술의 의미』, 임산역, 한길사, 181쪽 참조). 베르나르도의 수도 규칙과 절제의 삶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지나친 금욕주의는 반대한 그는 다섯 평의 작은 방에서 살았고 검소한 식사를 좋아한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임종의 순간에 베르나르도의 천사 같은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을 보면 베르나르도의 영성을 누구보다 인정한 형제 수도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쉬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성당에 들어와 거룩하고 눈에 잘 띄게 보관된 성인들의 유물 앞에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성물들을 지하 납골당에서 꺼내어 성가대석 위쪽의 공간에 안치하고 자연에서 얻은 보석들로 장식하였습니다. 또한 성당에 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성당을 높이고 창을 넓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을 보고 기뻐할 때 거기에 장식된 다채로운 빛깔의 돌들이 자신의 외적 근심을 몰아낸다고 하면서, 성물들의 물질적 밝음과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영적인 빛을 비추어 그를 밝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쉬제의 성당은 그리스도의 빛을 담은 가시적 성사가 되었고, 세상은 그것을 ‘고딕’이라고 불렀습니다.

 

[2020년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7면, 김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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