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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37: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 - 르쎄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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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10 ㅣ No.753

[성당 이야기] (37)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


르쎄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Abbaye Sainte-Trinité de Lessay)

 

 

지난 회 고딕 성당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의 유비(analogia)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는 어느 특정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연속성 안에서도 관찰될 수 있습니다. 건축 영역에서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전환 과정과 신학과 철학 영역에서 스콜라 이전과 이후의 전환 과정이 어느 정도 평행현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관찰은 건축에 정통하고 신학과 철학에도 정통한 경우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르빈 파노프스키가 말한 것처럼 그런 경우는 쉽지 않으니, 억지로 꿰어맞추려 하거나 합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그의 걱정에 감히 공감을 표합니다.

 

이렇게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는 성당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노르망디의 전성기 로마네스크를 대표하는 캉의 생테티엔 성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당 이야기 26회). 거기서 몽생미셸(→ 성당 이야기 13회)로 가는 길에 르쎄(Lessay)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 베네딕토회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이 있습니다. 1056년에 설립된 성당은 생테티엔의 영향을 받았지만, 천장 구조에 있어서 리브 그로인 볼트 체계를 수립하였습니다. 동시대 영국의 더럼 대성당(→ 성당 이야기 31회)에서는 장식 위주의 리브 볼트 천장을 볼 수 있습니다. 르쎄 수도원 성당은 1356년 백년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후 복원되었는데,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에 쫓기던 독일군에 의해서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이때까지 건축사학자들은 르쎄의 리브 볼트 체계가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당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리브가 성당의 설계 과정에서부터 계획되어 네이브월과 구조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캉의 생테티엔은 천장의 리브 볼트가 네이브월보다 훨씬 뒤에 올려진 것입니다.

 

전성기의 로마네스크 역시 건물의 유기적 일체성을 추구하였으나 완성도에 있어서 부족하였는데, 르쎄 수도원 성당은 구조의 중심이 되는 네이브월과 리브 그로인 볼트 천장이 처음부터 일체 구조로 설계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르쎄가 이렇게 유기적 구조 체계를 수립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성당 건축이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고딕의 특징이 건물의 유기적 일체성을 이루는 것이고, 그중에서 중요한 요소가 리브 그로인 볼트 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르쎄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의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딕 양식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두 양식이 연속성을 갖는다는 의미이고, 그래서 두 양식의 시기가 중세라는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양식은 엄연히 구별됩니다. 그렇기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건축 양식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사상에 있어서도 두 시기 사이에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다음 회에서 볼 주제들입니다.

 

[2020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의정부주보 7면, 김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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