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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코로나19 이후 한국 가톨릭 교회: 코로나19 시대의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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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21 ㅣ No.1216

[경향 돋보기 – 코로나19 이후 한국 가톨릭 교회] 코로나19 시대의 신앙생활

 

 

코로나19 사태는 삶의 전방위에서 도전과 질문을 던진다. 종교와 신앙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미사의 중단과 회합 중지는 교회 공동체와 신자들을 혼란하게 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교회가 원하지 않았던 ‘단식’(신자들이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었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단식’이라는 표현을 쓴다.)과 침묵과 피정의 시간을 갖게 했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온라인 미사와 각종 매체로써 신자들과 소통하려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저 상황이 빨리 해소되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원해서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 시간은 교회의 모습과 신앙생활을 새롭게 성찰하고 반성할 기회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전례와 성사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

 

공동체와 함께하는 미사 중단은 전례와 성사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신자들의 공적 참여가 불가능하다 해도, 교회는 세상을 위해 언제나 미사를 거행한다. 신학적이고 교회법적 관점에서 보면, 신자들의 물리적 참여가 미사의 유효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례의 유효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직자 중심주의의 한계를 보여 줄 뿐이다.

 

교회의 전례와 미사 안에서 신자들의 참여는 핵심 요소다. 전례는 언제나 공동체의 전례다. 전례와 성사에 신자들의 물리적인 참여가 불가능할 때 교회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 전례의 풍부한 의미와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전례의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코로나19 사태가 교회에 준 숙제다.

 

공적 미사 중단 시기에 텔레비전 미사와 온라인 미사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전례와 성사에서 물질성과 물리적 근접성은 핵심 요소다. 가상성에 기반을 둔 온라인 미사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 수단이다. 텔레비전과 온라인 미사는 신자들의 물리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불가능하다. 곧 ‘보는 것’이지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영성적 참여, 가상적 참여의 의미를 새롭게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인터넷 시대에 물리적 참여와 가상적 참여의 경제가 흐릿할 수 있다. 몸은 미사에 참여하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한다면 그것이 과연 실제적 참여일까? 온라인 미사에 몸과 마음을 집중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참여적이지 않을까. 단순히 시청만 할 수 있는 텔레비전 미사가 아니라 ‘줌’(Zoom) 등을 통합 쌍방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미사는 오히려 참여 방식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반면에 온라인 미사는 전례로서 거행되기보다는 행사와 같이 소비될 위험도 있다. 교회 안의 속지주의 성향을 옅게 하며 속인주의 방향으로 더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소비자로서 신자들은 취향과 기호에 맞는 미사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물론 성직자들이 강론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리라는 좋은 점도 있다. 아무튼 온라인 미사에 대해서는 더 많은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온라인 미사에서 주님의 실제적 현존을 둘러싼 논쟁이 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온라인 미사는 가상적 현존을 전제하기 때문에 진정한 전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학자 대부분은 주님의 현존이 단순히 가시성(물질성)과 물리적 공간(공간성)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본다. 물리적 참여인지 가상적 참여인지, 실제적 현존인지 가상적 현존인지의 문제는 지식인들의 논쟁거리일 수 있다. 신자들은 전례와 성사 안에서 어떻게 더 주님의 은총을 깊이 체험할 수 있을지, 삶을 복음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본당과 공적 공간에서 거행하는 미사가 제한될 때 그저 온라인 미사와 전례로만 대체할지도 여전한 숙제다. 온라인 미사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직주의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조심스럽게 보면 보편 사제직에 기반을 둔 세상 속의 삶의 미사를 상상하기도 한다. 사실, 보편 사제직이 어떻게 수행되는지에 대한 명쾌한 신학적 정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보편 사제직은 성사 전례에 능동적 참여와 기도와 극기와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일상의 사제직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교회헌장, 10항 참조).

 

코로나19 시대는 보편 사제직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가족끼리, 또는 가까운 이웃이 모여 함께 성경 말씀을 듣고 식사의 친교 나누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미사의 정신을 영성적으로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교회가 오랫동안 수행했던, 공소 예절과 말씀 전례를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예식화와 삶의 미사화에 대한 폭넓은 상상이 성직자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공동체가 함께하는 미사의 중요성을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보편 사제직에 대한 확장된 이해가 직무 사제직의 의미와 중요성을 데 깊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신앙생활의 총체성 회복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주일 미사 참여와 성당이라는 공간에서의 여러 활동으로 좁혀 이해해 왔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보면 신앙생활은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리와 신앙 공부, 전례와 성사, 생활과 윤리, 기도와 영성 영역이다. 물론 전례와 성사 생활이 모든 신앙생활의 토대이며 정점이다. 또 이 네 영역은 긴밀에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다.

 

하지만 전례와 성사 생활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영역의 활성화를 통해 신앙생활의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성경을 읽고 교회 문헌과 영성 서적들의 읽기를 통해 공부하는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적 가치의 실천을 통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혼자, 가족, 또는 가까운 이웃과 함께 기도와 영성생활에 얼마든지 몰두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어쩌면 신앙의 총체성을 회복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평신도 역할의 확대 – 그리스도의 삼중 임무 수행과 참여

 

전례와 성사 중심의 신앙생활은 필연적으로 성직자 중심주의 경향을 드러낸다. 신자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쉽다는 뜻이다. 전례에서 신자들 또한 능동적 참여자라고 표면적으로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오늘의 전례 현실은 실제 문맥에서 신자들의 능동성을 강화하지 못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례의 쇄신과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상상이 신학적으로 이론화되고 제도적으로 체계화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삼중 임무를 실제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세례받은 모든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 임무에 참여한다는 교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교리는 언제나 삶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는 삶에서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 제사를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는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목의 진정한 의미는 관리와 통치가 아니라 돌봄과 헌신이다. 신앙인은 이웃의 약자를 돌보는 세상 속의 사목자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나 여럿이 성경을 읽고 낭독하거나, 서로의 삶과 사연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예언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신앙인 모두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사제로서 예언자로서 사목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코로나19 시대에 다시 확인한다.

 

 

작은 공동체, 야전 병원, 찾아가는 사목

 

코로나19의 특성은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대형 집회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대형화와 외적 성장을 추구해 왔던 교회 삶의 방식이 변해야 한다. 미래의 신앙생활은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미국의 어느 신학자는 예견했다. 다시 말해, 가까운 이웃에 살며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형 집회를 형성하는, 부흥회 형식의 신앙 모임은 아무래도 줄어들 것 같다. 코로나19 시대에는 작은 모임이 확산하여 좀 더 큰 모임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처음부터 대형 집회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교회의 작은 공동체 운동을 촉진하는 역설적인 매개체가 될 수도 있겠다.

 

또 한편으로 성당이라는 고정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이 전개되기보다는 일상의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신앙이 수행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그 자리가 공동체가 되고 교회가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신 야전 병원으로서의 교회 말이다. 당연히 시목은 불러 모으는 방식보다는 찾아가는 방식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던지는 도전은 우리 신앙생활의 전반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교회와 신앙생활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코로나19 시대는 위기이며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의 기회 말이다.

 

유럽의 종교 지도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일으킨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체험이, 유럽 세계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종교심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코로나19 시대가 교회의 변화와 쇄신의 기회가 되고 신앙심 회복의 전기가 될지는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이 코로나19의 시간이, 교회와 신앙생활 영역에서도 성령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정희완 요한 – 안동교구 신부. 가톨릭 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이며, 미국 버클리 예수회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20년 7월호, 정희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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