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삶: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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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457

[영성의 삶]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영성생활이고, 영성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주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랑스런 아버지로, 친구로 어떠한 가식 없이 주님을 일상의 삶 속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면 튼튼한 영성생활의 기초가 다져지게 됩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영성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영성생활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은 기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 분들이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합니다. 교회에서 정해준 기도문 중심의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뭔가 허전함을 지울 수 없고, 제대로 기도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기도를 자주 해도 신앙생활이 성숙해지는 것 같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기도가 어렵기만 할까요?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성생활에 대한 정의처럼, 기도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의 정의를 알아두면 기도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는 정해진 기도문 중심의 기도보다 더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기도의 본질을 놓치지 않게 되고 교회가 알려준 기도문 중심의 기도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넓은 의미의 기도는 한마디로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만남은 대화 외에 그냥 함께 있는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처음에는 대화를 많이 하지만 점점 대화는 줄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걸 느낍니다. 이렇게 만남은 대화를 포함한 ‘함께 있음’의 의미까지 담고 있습니다. 기도는 주님을 만나서 대화하고 듣고, 함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먼저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남은 같은 공간에 두 사람이 함께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과의 만남도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하느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지금 주님이 내 안에, 내 앞에 계시다는 믿음이 있어야 그분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기도가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기도만을 하게 되면 그것은 만남이 아닌 독백이 되어버립니다. 일방적인 독백도 기도의 한 형태일 수 있지만 만남을 통한 깊은 관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도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고 때로는 영적 메마름까지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떠한 기도를 하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느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느끼는 것입니다. 내 앞에 계신 주님, 나를 만나기 위해 오신 주님 앞에서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는 이렇게 주님 앞에서 해야 진정한 기도가 됩니다. 즉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대화를 하고, 기도문을 읊고, 때로는 그분과 함께 침묵 중에 머무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만남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하느님과의 만남은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 대화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그러한 만남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그러한 만남을 못 가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지만 주님의 사랑이 워낙 커서 이 만남은 사랑 안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만남입니다. 부족한 사랑이지만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속삭이며 머물 수 있다면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사랑의 절정은 일치입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서로 하나가 되고 싶어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 점점 사랑이 무르익게 되고 자주 그분과 하나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과의 일치가 기도의 완성입니다. 주님과 하나될 때 체험하는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만큼 기도는 우리 삶에 큰 기쁨이고, 축복이며 행복입니다.

 

이런 넓은 기도의 의미는 기도를 한정된 공간이 아닌 모든 장소에서 어떠한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행할 수 있게 합니다. 내가 있는 장소가 주님을 만나는 곳이고 기도의 장소가 됩니다. 시간이 없어서 아침기도를 못 해도 출근하면서, 등교하면서도 언제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문의 기도는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찬미와 감사를 담은 훌륭한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기도문의 기도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분을 만나는 기도는 자유롭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합니다.

 

기도는 이렇듯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입니다. 기도가 영성 생활의 의미와 비슷한 것은 기도는 영성생활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삶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기도는 삶이 되고, 삶은 기도가 됩니다. 즉 기도생활은 영성생활이 되고, 영성생활은 기도생활이 됩니다.

 

[월간빛, 2020년 7월호, 서보효 라이문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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