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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한국 신협운동 60주년 발자취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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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3 ㅣ No.585

한국 신협운동 60주년 발자취와 전망


가난한 이들과 동고동락 60년… ‘인간 중심 경제’로의 도약 기대

 

 

한국 신용협동조합(이하 한국 신협)이 2020년 60주년을 맞았다. 이윤의 실현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나눔과 상생의 가치를 표방하는 신협은 애당초 가톨릭교회로부터 시작됐다. 한국 신협운동은 60년을 지나오는 동안, 과연 그 초심에 따라 신협운동을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회적 행동의 하나로 구현해 왔는지를 성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신협 60주년을 맞아 신협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 본다.

 

한국 신협 가톨릭이사장협의회(회장 정기수)는 신협 60주년을 맞는 올해 정기연수회를 6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목포 산정동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에서 개최했다.

 

전국의 가톨릭 신협 이사장 회원 180여 명이 참석한 이번 연수회는 개회식과 총회, 지역 명소 탐방과 특강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연수회는 한국 신협 60주년을 돌아보고, 신협운동을 태동시킨 가톨릭교회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됐다.

 

정기수(스테파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모든 가톨릭 신협 관계자들에게 “한국 신협 창립 6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 신협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특히 “이번 연수회를 통해 신협운동 선각자들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자”며 “모든 신협 회원들이 각자 자신의 영적 성장과 지역 단위 신협들 간의 정보 교환을 통해 가톨릭 신협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자신이 속한 조합의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자”고 덧붙였다.

 

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는 이날 파견미사를 주례하고 강론을 통해 한국 신협 60주년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세상의 유혹과 재물에 얽매이지 말고 사회와 세계를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하느님의 정의를 추구하자”고 권고했다.

 

 

한국 신협운동의 태동

 

우리나라 근대적 협동조합의 역사는 길지 않다. 특히 그 발전 과정은 관 주도형과 민간 주도형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2020년은 민간 주도형 협동조합인 신용협동조합의 씨가 뿌려진 지 60주년을 맞는 해다.

 

신협운동이 태동하던 1950~60년대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분단, 한국전쟁 등으로 경제적 자립 기반이 조성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허덕이던 때였다. 게다가 전근대적인 사회 질서와 산업 구조로 인해 국민 대다수는 ‘보릿고개’로 일컬어지는 만성적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서민들이 은행으로부터 대출 등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은 상상도 안 되는 시기였고 고리채로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사회 및 경제 상황 속에서 어려운 사람들끼리 십시일반의 정신을 바탕으로 신협운동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

 

1960년대 초 자발적인 민간 주도형 신협운동이 시작된 것은 그 효시를 1960년 5월 부산 중구 대청동 소재 메리놀수녀회 병원 고(故) 메리 가브리엘라(Mary Gabriella Mulherin, 1900~1993) 수녀의 지도로 시작된 ‘성가 신용협동조합’으로 본다. 그 해 6월에는 서울에서 고(故) 장대익 신부(1923~2008)가 이끌던 ‘협동조합연구회’ 소속 회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가톨릭 중앙 신용협동조합’이 설립됐다.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 신부는 각각 캐나다에서 신협 운동의 이론과 실제, 빈곤 추방 운동인 ‘안티고니쉬 운동’(Antigonish Movement)을 연구하고 돌아온 바 있다. 두 사람은 서구 여러 나라의 선례를 바탕으로 한국인들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조, 자립, 협동의 정신을 구현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를 위해 가브리엘라 수녀는 경상남북도, 장 신부는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신협운동 조직을 확산했다.

 

 

신협운동과 가톨릭교회

 

애당초 민간 주도의 한국 신협운동은 교회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민들은 절대 빈곤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독재 상황, 경제적으로는 극심한 불평등의 절망적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복음화가 곧 인간 존엄성, 정의와 인권의 수호와 연결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가 신협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록 전 교회적 차원의 정책 결정과 추진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신협운동에 관심을 갖고 실질적으로 신협운동을 추동하고 이끈 교회 내 선각자들은 신협운동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교회의 소명이라고 여겼다. 당시 유일한 교회 언론이었던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는 이렇게 보도했다.

 

“신협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도움으로써 가난을 추방하고 믿음과 사랑의 기반을 다지는 조직이다. 따라서 사랑으로 가난한 이웃들과 동고동락하며 현실사회를 직시하고 참여하는 신협은 사랑의 계명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조직하는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고무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와 같은 신협운동은 점차 범 가톨릭적 관심사가 되었다.”

 

교회는 분명히 신협운동을 복음적 가치인 사랑의 계명을 구현하는 사회적 행동의 하나로 간주했다. 한국의 신협운동은 ‘잘 살기 위한 경제운동’, ‘사회를 밝힐 교육운동’, ‘더불어 사는 윤리운동’ 등 3가지를 과제로 삼는다. 이 3가지는 서로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교회가 신협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이유다. 이는 곧 교회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신협의 발전 역사를 보면, 교회가 협동조합의 정신을 사회로 전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곧 교회의 가르침이 신협의 기본 정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협의 성장과 위기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신협운동이 태동된 이래, 1972년 신협법이 제정됐고, 이듬해에는 277개 조합을 회원으로 하는 연합회가 공식 출범했다. 신협은 신협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관련 서적들을 출판하고 연수원을 설립해 교육 사업에 매진했으며 생협 등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운동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위기 상황이 도래하기 시작했다. 신협운동의 외형적 확장이 지속되고 1980년대에 들어서 경영이 안정화되면서 사상적인 위기가 나타났다. 조합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신협운동의 정신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퇴색하고 신협 자체가 은행들과 경쟁하면서 이른바 ‘경영주의’에 빠진다.

 

IMF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방만한 대출 등의 요인으로 인해 수백 개의 신협이 해산 또는 청산되면서 1997년말 1666개였던 신협은 2002년말 1233개로 줄어들었다. 조합원이 줄고 출자금도 감소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신협은 협동조합으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차단됐고, 그 기능은 점점 마비됐다. 결국 자본주의 기업과 같은 형태로 조직이 굳어버려, 더 이상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협운동은 초심에 대해 성찰해야 했고, 쇄신과 개혁을 지향하고, 그런 와중에도 새로운 형태의 신협, 즉 생협을 포함한 지역 운동들과 연결되면서 창조적인 성장을 해 나갔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극복하는 대안

 

오늘날 전세계를 압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성장과 경쟁을 지상과제로 하는 비인간적인 경제를 지양한다. 교회는 인간이 경제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살리는 경제가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신협운동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며, 협동조합 안에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경제 정책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교회의 사회교리 원리들, 곧 인간 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재화의 보편적 목적, 보조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가 실현되는 장이 곧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에 열린 신협 지도자 강습회 수료식에 참석한 고(故)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

 

 

 

1979년 2월 27일 개최된 제6차 신협 정기총회의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한국 신협중앙회가 2013년 9월 5일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신협발상지 기념비 이전 및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 흉상 제막식’을 열고 축복식을 거행하고 있다.

 

 

 

2016년 5월 12일 대전 유성구 소재 신협중앙연수원에서 열린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대익 루도비코 신부 추모식에서 김종국 신부(대전교구 원로사목)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한국 신협 가톨릭이사장협의회(회장 정기수)는 6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목포 한국 레지오마리애기념관에서 정기 연수회를 갖고 한국 신협 60주년과 가톨릭 신협인들의 소명에 대해 성찰했다. 한국신협가톨릭연합회 제공.

 

[가톨릭신문, 2020년 6월 21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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