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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회 탐방: 어머니의 길 따라 - 갈레아짜 마리아의 종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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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07 ㅣ No.638

[수도회 탐방] 어머니의 길 따라 - 갈레아짜 마리아의 종 수녀회

 

 

2020년을 맞아 [평신도]에서는 평신도와는 다른 직분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수도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체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의 역할에 관심 가지며 유기적으로 활동할 때에 교회는 더욱 건강할 것이란 생각에서였습니다. 선정하는 데 있어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수도회를 우선하였으며 그 첫 번째 수도회로 ‘봄호’에 맞춰 5월 성모 성월에 함께 기억하면 좋을 ‘갈레아짜 마리아의 종 수녀회’를 다녀왔습니다.

 

길 찾기 핸드폰 앱에 목적지를 넣었습니다. 이내 지금 현재 제 위치와 가야 할 방법, 목적지가 파란색 선으로 나타났습니다.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탔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는 한동안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띄엄띄엄 컨테이너 건물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핸드폰 앱이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의심은 불안이 되고 불안해야 하느님을 찾는 못난 제 입에서는 기도가 흘러 나왔습니다. ‘제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이길……. ’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의 종 수녀회’ 이정표가 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Via Matris 어머니의 길

 

눈 앞에 수도회 건물이 보이고 나서야 제가 나선 길은 ‘불안의 길’에서 ‘안도의 길’이 되었고, 정연오 마리아가다 수녀님의 따뜻한 환대에 ‘기쁨의 길’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수녀원 벽면에 붙어 있는 그림으로 저를 ‘어머니의 길’로 자연스레 인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길’은 ‘마리아의 종’에서 바치는 특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과 비슷한 형식으로, 성모님의 7고를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한 처, 한 처 조용히 ‘어머니의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마리아를 본받아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수도회의 영성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갈레아짜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1862년, 복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B. Ferdinando Maria Baccilieri) 신부에 의해 설립된 이후 독일, 브라질, 한국, 인도네시아 4개국에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1985년에 독일에서 찾아 온 두 수녀에 의해 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저처럼 겨우 2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길을 나섰을 것입니다. 두 수녀가 얼마나 많은 기도로 걸음걸음을 채웠을지, 그 기도가 어떤 기도였을지, 하느님께 어떤 응답을 받았을지 조용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주시듯, 두 수녀 중, 한 분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7처 끝에 조용히 자리한 수녀님들의 기도공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안나 힐데군드 베이커 수녀’였습니다. 사진 속에서였습니다.

 

천상의 길을 나선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순간에도 수도회에서 부르는 성모 노래를 부르셨다는 수녀님은 제게 성모님을 따라 걷는 어머니의 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고향 땅을 떠나 낯선 한국 땅에 왔지만 부르심에 응답한 덕분에 스무 명의 자매를 얻었다고, 자매들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노라고 대답하는 듯 했습니다. “너무 갑자기 떠나셨어요. 갑자기.” 마리아의 종 수녀회 한국지부장 수녀님이신 마리아가다 수녀님께서는 “독일 가족에게 전할 유품은 사진첩이 전부”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검소하게 사셨는지, 7고의 성모님처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한 수녀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종’이 하느님을 따라 살아가는 영성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베이커 수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국 마리아의 종 수녀회에는 21명의 수녀님이 계셨습니다. 이제 20명이 되었지만 은총의 하느님께서는 다시 1명의 청원자를 보내셨습니다. 청원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리아가다 수녀님께서는 두 눈을 반짝이며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며 자랑하셨습니다. 그 모습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마리아의 종 수녀회 영성 중 하나는 ‘형제적 공동 생활’입니다. 다른 지역의 한국 수도회 식구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독일, 브라질, 인도네시아에 있는 수도자들과도 자주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탈리아 수녀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특별한 비법”으로 만든 에스프레소를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느 에스프레소와 다를 바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락모락 에스프레소의 향이 퍼지는가 싶더니 커피 잔 위로 동동 설탕 크림이 떠올랐습니다. 만드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고 정성이 드는 ‘특별한 커피’였습니다.

 

시끌시끌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수녀원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 집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교육 사도직을 임하고 있는 수녀원에서는 전교 사도직으로 청주 교구, 인천 교구, 수원 교구, 서울 대교구에 있는 성당에도 파견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당에서 도움을 청하고 있지만 ‘일꾼’이 적어 모든 곳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피아트(Fiat: 당신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성모님께서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신 그대로 하느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어디든 달려 가고 계신 겁니다. 이웃을 섬기며 누구를 대하든 종처럼 낮은 자세로 살고 계시니,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로 받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리아의 종 수녀회 반지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통 중에도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을 성모님을 기억하고자 하는 수녀회의 삶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 반지를 낀 손 역시 하느님의 뜻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 여념이 없을 테지요. 반지를 끼기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말이죠.

 

[평신도, 2020년 봄(계간 67호), 글 · 사진 서희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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