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19년 제19회 가정성화주간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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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21 ㅣ No.992

2019년 제19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문


가정의 소명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탄 축제를 지내는 우리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바라보며 우리 가정에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이룬 사랑의 가정 안에 하느님의 구원이 내려왔습니다. 소박한 가정에 맡겨진 거룩한 소명이 인류 구원의 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탄의 신비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부부의 사랑과 헌신 속에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는 혼인의 거룩함은, 혼인이 하느님의 성사라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의 혼인에 강복하여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이루는 가정에 당신의 특별한 소명을 맡기십니다. 그 소명은 인류 구원의 완성을 향한 당신의 계획에 우리를 참여시키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의지에서 비롯합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로 결합하여 가정을 이룬 이들은 그들 안에 맡겨진 하느님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혼인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갖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혼인 그 자체보다는 혼인에 따르는 사회 경제 조건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출 때까지 혼인을 미루거나 포기합니다. 이들은 혼인의 의미를 부부의 사랑과 희생을 통한 인격의 성장과 자아의 완성에 두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기주장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기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신앙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혼인이 갖는 성사적 의미를 일깨우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교회가 혼인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혼인 교리를 이수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한편 부모 세대의 지나친 보호 아래 성장한 자녀 세대가 겪는 가치관의 혼란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자기 소외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존감의 상실과 불안으로 초조해하며 타인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분노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 동물 학대 등 사회의 약자들에게 이루어지는 온갖 폭력과, 보복 운전, 살인, 자살 등의 근원이, 자녀들을 경쟁으로 내몰며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만든 이 시대의 가정에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연결망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혁명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형성 방식과 소통 방법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빠른 정보의 공유와 손쉬운 자기표현의 기술은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절제되지 않은 표현이 난무하는 현상을 불러왔고, 이는 서로의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부정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사회에서 고도로 기술화한 문명의 이기가 불러오는 위험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경쟁의 싸움터로 내몰린 오늘날의 가정이 겪는 위기에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합니다. 자녀의 성공을 희망하는 부모는 헌신적으로 자녀 교육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가정이 갖는 거룩한 소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능력만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과정에서 자녀가 겪게 되는 부담과 고통은 다시 고스란히 가정의 상처로 돌아갑니다. 가정은 단지 유능한 자녀를 기르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부부의 사랑과 헌신으로 자녀의 생명을 품고 기르는 하느님의 성소입니다. 생명이신 하느님의 숭고한 뜻이 자녀에게서 성취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며,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도록 서로 돕는 가운데 부부의 성덕을 키워 나가는 곳이 가정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가정의 소명은 사랑과 희생으로 서로 지켜 주고, 성장하며,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가정을 돌보는 주체는 가정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 많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결핍이나 장애, 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과 냉대로 힘겨워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은 주변에 있는 이러한 어려운 가정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삭막한 세태 속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이웃 가정에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기신 최고의 소명입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가정과 가정의 연대는 우리 가족 구성원의 결속을 더욱 굳건히 하며, 사랑과 나눔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기신 거룩한 소명을 완수하게 할 것입니다.

 

2019년 12월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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