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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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신앙과 순례자의 수호자 야고보 사도를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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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13 ㅣ No.1886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신앙과 순례자의 수호자 야고보 사도를 만나러 가는 길 (상)

 

 

날마다 초 두 자루를 봉헌합니다. 성당에 들어가면 맨 먼저 하는 일입니다. 우리 성당에 모셔진 사도 야고보 성인께 봉헌합니다. 이름 모를 장인의 투박한 손길이 들어간 작고 소박한 성인상입니다. 작은 초에 불을 댕겨,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내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영혼들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은인들과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순례자들과 앞으로 만날 순례자들을 위해 봉헌합니다. “주님의 사도, 산티아고이시여, 제가 만났고 앞으로 만날 순례자들을 보호해 주시고, 그들이 가장 필요할 때 길을 밝혀주는 인도자로 함께 걸어주소서!”

 

봄과 함께 날이 따뜻해지면서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점차 많아집니다. 어디서 출발했든 상관없이 단 한 곳을 향하여 걷습니다. 까미노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가 잘 말해줍니다. 그곳은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은 목적지가 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인지 모르고 걷습니다. ‘순례’의 원초적인 뜻은 목적지가 있고 그곳을 향해 몸으로 걷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없으면 순례가 아니라 방랑입니다. 유일한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순례이고, 그곳을 향해 걷기 때문에 순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가 순례지가 된 단 하나의 이유는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산티아고 대성당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야고보 사도가 누구이며 스페인과 어떤 관계가 있고 또 그 유해가 거기에 있는 이유를 알아야 참된 순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고보’란 이름은 히브리어 ‘야곱’에서 나왔습니다. 그 뜻은 ‘발꿈치를 잡다’입니다. 지중해 지역에서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면서 신약성경에서 ‘야코보’(Ιακωβο)가 됩니다. 그 후 로마제국이 번성함에 따라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그 이름이 ‘야코부스’(Jacobus)가 되었고, 중세를 거치면서 ‘야코부스’가 지역마다 다르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는 ‘제임스’(James), 이탈리아어권에서 ‘쟈꼬모’(Giacomo), 프랑스어권에서는 ‘작크’(Jaques)로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야고보’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산티아고’(Santiago) 혹은 ‘하이메’(Jaime)라고 합니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름은 산티아고이지요. ‘산티아고’가 된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중세 스페인어에서 야코부스가 ‘이아고’(Iago)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Iago’라고 그냥 부르지 않고 항상 그 앞에 성인을 뜻하는 ‘산토’(Santo)를 붙여 불렀습니다. 결국 ‘Santo’와 ‘Iago’가 하나로 합쳐져서 고유명사 ‘Santiago’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Santiago’는 ‘성 야고보’라는 뜻입니다.

 

산티아고는 우리에게 제일 먼저 주님의 ‘사도’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제베대오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제입니다. 복음서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처럼 갈릴래아 출신 어부이며 ‘제베대오의 아들’로 소개합니다(마태 4,21; 마르 1,19). 우선 산티아고는 베드로와 더불어 첫 번째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마태 4,18-22).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특별한 제자였습니다. 주님은 세 제자만을 당신의 특별한 일에 늘 동행하게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에게 생명을 되찾아주셨을 때(루카 8,51), 거룩한 변모 사건 때(마태 17,1-9), 그리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번민 속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7) 이들 세 제자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산티아고는 주님의 중요한 순간에 늘 함께 있었습니다. 그만큼 주님은 산티아고를 극진히 사랑하셨고 그도 주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습니다. 산티아고는 예수님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습니다.

 

한편, 사도 산티아고는 인간적 한계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그 동생 요한과 함께 ‘천둥의 아들들’(마르 3,17)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불같은 성격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하고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강성 가운데 강성이었습니다. 불같은 그 성격은 권력에 대한 열정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산티아고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주님을 찾아와 청탁을 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조선시대 말로 표현하자면, 산티아고에게는 영의정을, 요한에게는 좌의정 자리를 내어달라고 청한 것이지요. 이 광경을 다 지켜본 다른 열 제자들은 두 형제에게 시기와 질투와 불쾌의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산티아고와 요한은 자신들이 내심 바라던 것을 ‘엄마의 치맛바람’에 기대어 다른 제자들보다 선수를 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산티아고가 세속적인 열정에 불탔던 사람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는 주님의 신임을 받는 제자였지만 참 제자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마주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기꺼이 따라나선 동기도 정화되어야 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열정도 십자가를 통해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기대어 세상에서 출세하려던 그 꿈이 십자가라는 걸림돌 앞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산티아고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열정도 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 내면 안에는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저버리지만, 하느님은 결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산티아고를 비롯한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떠났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을 친히 찾아오십니다. 자기 안에 갇혀 어둠 속에 떨고 있던 제자들의 완고한 문을 열고 찾아오십니다. 부활의 첫 선물로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파스카의 빛 안에서 산티아고는 이제 주님의 참된 ‘사도’(Apostolus)로 거듭 났습니다. 기쁜 소식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인간적 열정이 주님께 대한 사랑의 열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슴 속에 성령의 불길이 타오른 산티아고는 기꺼이 ‘땅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러 떠납니다. 그곳이 바로 스페인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봄(Vol. 45), 글 · 사진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신앙과 순례자의 수호자 야고보 사도를 만나러 가는 길 (하)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가슴에 지닌 산티아고는 ‘땅 끝’(Finis Terrae)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실천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땅 끝’은 예루살렘 동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이었고,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였습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사도 토마스는 동쪽 끝인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저술된 ‘사도들의 약사’(Breviarium Apostolorum)라는 문헌에서 산티아고 사도의 선교 활동에 관하여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방 에스파니아 땅에 가서 선포하였다”(Hic [Santiago] Hispaniae occidentalia loca predicat). 산티아고는 기꺼이 로마 제국의 서쪽 ‘땅 끝’으로 갑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땅 끝’은 스페인 최 북서쪽에 자리한 지금의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뜻합니다. 산티아고는 예루살렘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나와 포르투갈 해안선을 타고 올라가 땅 끝 갈리시아 지방에 내립니다. 당시 제일 안전하고 빠르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이 바로 선박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티아고는 갈리시아 지방을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사실, 땅 끝 갈리시아 지방은 로마 제국의 변방 중에 변방으로 사람도 그리 많이 살지 않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선교 결과는 거의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겨우 여섯 사람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산티아고에게는 커다란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기쁜 소식을 전할 힘마저 잃었습니다. 결국 산티아고는 땅 끝 갈리시아 지방을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첫 동료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오늘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간에 있는 ‘사라고사’(Zaragoza)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사라고사는 로마인이 건설한 식민 도시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름을 따 ‘채사라우구스타’(Caesaraugusta)라고 불렸습니다. 사도 산티아고는 다시 힘을 내어 동료들과 함께 도시를 다니면서 주님의 구원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기서도 사도는 실패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사라고사에서는 겨우 한 사람만이 주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스페인에서 일곱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는 깊은 좌절의 늪에 다시 빠졌습니다. 어느 날 밤 사도는 제자 일곱 명과 함께 ‘에브로’(Ebro) 강변에 나가 슬픔 속에서 주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천사들이 나타나고 천상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Ave Maria Gratia Plena). 천사들 무리와 더불어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께서 산티아고 사도와 그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기원후 40년 1월 2일의 일입니다. 이 시기는 동정녀가 아직 이 땅에서 ‘죽을 육신’(en carne mortal)으로 사도 요한과 함께 살고 계실 때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안은 모습으로 177cm 정도의 작은 ‘기둥’(Pilar) 위에 발현하셨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선교를 떠나기 직전 성모님께 작별 인사를 드릴 때 성모님은 “네가 가장 힘들 때 내가 도와주겠다.” 하고 산티아고에게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이 약속대로 성모님은 스페인 땅에 찾아와서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성모님이 기둥에 나타나신 것은 지금 흔들리고 있는 산티아고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둥은 굳건하고 강인한 믿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성모님을 ‘기둥의 성모’ 혹은 ‘필라르의 성모’(Nuestra Senora del Pilar)라고 부릅니다. 성모님이 남기고 떠난 기둥은 아직도 사라고사 ‘필라르의 성모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순례를 갑니다.

 

산티아고는 마음에 ‘믿음의 기둥’을 세우고 다시 ‘땅 끝’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처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옵니다. 선교 임무를 마친 후 산티아고는 두 제자 아타나시오와 테오도로를 데리고 배를 타고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기원후 44년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일어납니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를 없애고자 예수님의 제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했으며(사도 12,2),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베드로도 잡아 감옥에 가두고 곧 사형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탈출합니다(사도 12,3-11).

 

왜 주님은 산티아고는 죽게 내버려 두고 베드로는 살려주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가 등장한 복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살로메의 청탁을 들은 예수님은 두 형제에게 묻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그러자 대답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맹세를 들은 주님은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 20,23). 주님이 말씀하신 잔은 바로 죽음의 잔, 고통의 잔,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잔입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다른 의미로 알아들었습니다. 바로 출세의 잔, 영광의 잔, 축배의 잔으로 알아 들어서 기꺼이 마시겠다고 장담한 것입니다. 주님의 예언은 산티아고가 예루살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사실 산티아고는 예수님을 부인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세를 열망했던 이전의 그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험난했던 선교 여행을 통해 진정 주님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주님께 대한 사랑이 불타는 참된 사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었을 때 산티아고는 분명 그 예언의 말씀을 상기했을 것이고, 이때가 바로 말씀이 성취될 때임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기꺼이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의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산티아고는 순교를 앞두고 스페인에서 따라온 두 제자 아타나시오와 테오도로에게 자신의 유해를 자신이 복음을 전한 ‘땅 끝’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순교 후 두 제자는 산티아고의 시신을 수습해서 다시 배를 타고 옮겨 현재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습니다. 여기서부터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가 시작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여름(Vol. 46), 글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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