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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교만 - 일상에서 체험하는 칠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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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11 ㅣ No.984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 교만] 일상에서 체험하는 칠죄종

 

 

“허영심이 사라지지 않아요”

 

60대 초반의 성대웅 씨는 이른바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가 딱 맞는 사람입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여 큰 차를 타고 고급 브랜드의 넓은 아파트에 삽니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물건만 사주고 등록금이 비싼 학교에 다니게 합니다.

 

얼마 전부터 다시 나가는 성당에서도 간부직을 맡으려고 하고, 재력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교만(허영)은 속이 빈 영광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드라마나 영화 열풍으로 허영심이 커진 사람이 밖에서는 비싼 커피를 마시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된장에 밥을 비벼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남자를 ‘쌈장남’이라고도 부른다죠?

 

우리가 ‘허영’을 위험하고 부정적인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자신을 부풀리는 가운데 ‘진정한 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자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부자가 된 듯하고, 명품 옷을 입으면 자신이 명품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착각의 상태가 비교적 약하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을 이루려고 거짓이나 허풍, 부풀림 같은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허영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아침 안개’처럼, ‘헛된 영광’을 쫓음으로써 결국 허무함을 느끼게 합니다. 말 그대로 허영은 속이 ‘비었기’(Vanitas)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허영’은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자신을 과하게 포장하고 꾸며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진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에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허영은 자신의 결핍에 대한 보상이나 회피일 수도 있습니다. 보상과 회피는 자신의 결핍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자존감의 측면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신앙 안에서의 허영

 

성대웅 씨의 경우처럼 허영은 신앙생활에서도 자주 관찰됩니다.

 

“저는 구교우 집안 출신으로 ○○교육을 받았고, 현재 교구에서는 ○○직을 맡고 있으며 대자가 ○○명입니다.”

 

“저는 ○○○ 신부님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 표현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허영으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이 문장 뒤에 이어질 말이나 태도는 허영과 연결됩니다.

 

몇 해 전 한국 개신교 협회에서는 외국의 개신교 미래학자를 초대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를 진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 교회를 둘러본 뒤 그 학자는 인터뷰에서 한국 교회는 지금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질병의 진단명을 ‘예수 결핍 장애’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점점 사라지고 그리스도 이외의 것들(성장, 비전, 전략, 돈)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이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 또한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추구하며 사는 가운데 교회의 덩치를 키우고 신앙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부풀려진 나’

 

허영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과 같습니다. 거리를 지나다가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홍보용 풍선처럼 바람이 불 때는 신나게 몸을 움직이다가도 시간이 흐르거나 날카로운 도구에 찢기면 이내 바람이 빠져 초라해집니다.

 

성대웅 씨뿐만 아니라 우리는 각자 신체, 지성, 경제적 능력 그리고 자녀, 집안, 직장 등의 영역에서 부풀린 풍선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듯합니다. 물론 여기에 신앙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실제 모습을 잊지 않을 정도의 범위 안에서 자신을 부풀리지만, 어떤 사람은 그 부풀림이 계속되어 실제 모습을 잊어버리고 부풀려진 모습을 실제 모습으로 믿는 ‘자기기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진짜 나는 누굴까?’

 

허영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점점 더 커지기 때문에 ‘부풀려진 나’ 속에 숨겨진 ‘진정한 나’를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객관적인 자기관찰’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성찰’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허영을 치유하는 기초이며 중요한 이 단계는 가장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실제 경제적 상황은? 내 지적 능력은? 대인 관계는? …”

 

하지만 이 질문에 답변하면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답변은 단순한 상상이나 이상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체험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보려면 정확한 통장의 잔고, 한 달 수입과 지출, 부채, 자산 등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사실 ‘객관적인 자기 관찰’ 훈련은 방법의 어려움을 넘어 매우 큰 불편함 또는 좌절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불편함과 좌절을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성장의 표지’입니다. 심리학은 이를 ‘Optimal frustration’(긍정적 좌절, 또는 최고의 좌절)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긍정적인 좌절감이나 불편함은 현재 자신이 자기의 진실을 대면하고 있다는 좋은 표지이기에 성장은 그 좌절의 경험과 비례한다고 말합니다.

 

객관적인 자기 관찰 훈련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로 이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점차 타인에게도 부풀리고 꾸민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키워 줍니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이가 단번에 모든 이에게 자신을 개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마음을 나눌만한 친한 동료로부터 서서히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이 편견에 원인을 두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의 옷 벗기’

 

그런 뜻에서 보면, 허영은 사랑의 결핍이 원인이고 근본적인 치유제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사랑은 ‘거짓의 옷’을 벗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거짓의 옷’을 벗게 하는 그런 사랑 체험이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더욱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지난 2년 동안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을 사랑과 인내로 읽어 주신 독자들과 부족한 글에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소개해 주신 경향잡지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TV ‘김인호 신부의 건강한 그리스도인 되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저서로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9년 12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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