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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 보기: 차별 대신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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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11 ㅣ No.1696

[복음으로 세상 보기] 차별 대신 존중

 

 

‘육우당’이라고 들어보셨나요? 1970년대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려 분신한 전태일 노동자는 잘 알지만 육우당은 생소하리라 생각됩니다. 아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글을 준비하면서 좀 더 관심 있게 만나게 된 사람입니다. 육우당(1984-2003)은 동성애자 인권운동 활동가이며 2002년 등단한 시인이었습니다. ‘육우당’은 그의 여섯 친구인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에서 유래한 그의 호이자 필명입니다.

 

그는 2003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비관하며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19년의 짧은 삶을 마감한 천주교 신자 안토니오입니다. 그는 2002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동성애자인권연대(약칭 동인련)에 가입하여 학생 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2003년 청소년 보호법 제정 시 서울에서 동성애 혐오단어, 금지단어 지정 반대 운동, 동성애자 차별 철폐 운동, 소수자 차별 철폐 운동 등을 벌였습니다. 육우당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만 오히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학교폭력에도 노출되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무렵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2년의 일기에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이런 길이 있으면 저런 길도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다면, 난 단지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다.”(2002.10.8 육우당이 쓴 일기)라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묵주가 그의 친구 중 하나일 만큼 육우당은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의 성 정체성과 무관하게 지지해준 수녀님들과 신부님들,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죄인 취급하는 보수개신교에 육우당은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2003년 봄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 보호법상 동성애자 차별 조항 삭제 권고를 내리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하며,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도전이며 죄로 규정했습니다. 지금도 교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에도 거세게 차별금지법(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는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그 자체보다 사회의 혐오와 차별 때문에 더 고통

 

육우당은 자살 전 한기총의 반박성명에 큰 충격을 받아 유서에 “평소 동성애자로서의 삶도 힘들었는데 이제 소돔과 고모라, 하느님의 유황불 심판까지 들어야하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또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밝혔습니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중략)… 난 여러분이 유황불 심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도 ‘하느님의 자녀’니까요. 난 그저 편안히 쉬고 싶습니다. (중략) 홀가분해요.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유서의 일부)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과 폭력을 실제로 당한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은 자살에 대한 많은 유혹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들이 성소수자여서 자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배제하는 사회 때문에 자살 생각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동성애자여서 아픈 게 아니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육우당의 죽음은 세상의 편견과 일부 보수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와 차별이 죽음으로 몰아간 사회적 타살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 단죄하고 혐오와 차별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육우당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종교계의 태도에 항의하는 유서와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요즘은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은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퀴어문화축제’를 하고 그 축제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참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수개신교를 중심으로 성소수자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천주교 역시 동성애에 대해 자유롭지 못합니다.

 

 

교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금지해

 

동성애에 대한 천주교회의 입장은 아직도 “동성애자들의 결합이 법적으로 인정되거나 혼인에 해당하는 법적인 지위와 권리를 부여받은 경우에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반대하여야 한다”(교황청 신앙교리성,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 2003.6.3.)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것이지 동성애 자체를 단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동성애 성향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들 또한 자신의 잘못된 성향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도 금지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358항에서 “그들의 경우는 스스로 동성연애자의 처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무질서인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게는 시련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직후 “게이인 자가 하느님을 찾는 데 내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발언해 성소수자와 관련 단체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2016년 교황은 “교회가 동성애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독일 추기경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동성애자들은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며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에게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교회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 착취당하는 여성들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도, 무기(전쟁)들에 축복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성소수자에 대해 줄곧 “차별 대신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교회가 사목자의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하셨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지탄받고, 멸시당하고,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사회주변부로 밀려나고, 조롱당하고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약자들과 함께 그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을 다시 중심부로 세우셨습니다. 그들도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로 차별당하지 않고 당당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임을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2,11)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2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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