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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빈곤의 심리학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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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0-30 ㅣ No.971

[심리학이 만난 영화] 빈곤의 심리학 기생충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여기도 봐봐.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 떼거지로 체육관에서 잡시다!’ 계획을 했었겠냐? 근데 지금 봐. 다 같이 마룻바닥에서 처자고 있자나. 우리도 그렇고.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다 상관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온 가족이 피자 상자를 조립해서 연명할 정도로 가난한 가족. 그들에게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이들은 절묘한 계획으로 부잣집에 식구 네 명이 모두 취업한다.

 

아들은 영어 과외 선생으로, 딸은 미술 치료 선생으로,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그리고 어머니는 가사 도우미로.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된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계획에 없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작 ‘기생충’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하는 4인 가족의 모습과 이들의 참담한 실패를 보여 준다.

 

 

계획에 없던 일들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계획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계획에 없던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 인생이다. 문제는 계획에 없던 일들이 발생했을 때 받는 충격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그 사람이 가진 재산의 규모에 따라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삶에 주는 충격의 정도는 크게 달라진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우리가 흔하게 경험하는 계획에 없던 일 가운데 하나다. 비가 올 줄도 모르고 캠핑장으로 떠났던 박 사장(이선균) 가족은 캠핑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캠핑을 가자고 졸랐던 막내는 운동장만큼이나 큰 잔디밭에 설치한 인디언 텐트에 들어가서 캠핑장에 가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랜다. 계획에 없던 폭우 때문에 박 사장 가족이 겪게 되는 스트레스는 계획했던 캠핑을 취소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같은 날, 같은 폭우 때문에 저지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은 속수무책으로 침수 피해를 당한다.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은 물에 완전히 잠기고, 변기에서는 오물이 끊임없이 역류한다. 긴급 대피소로 지정된 인근 학교 체육관에는 침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로 넘쳐 난다. 계획에 없던 일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혹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가난의 심리적 의미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경제적인 빈곤으로 말미암아 심리적 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일상의 많은 일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핵전쟁 대비용 지하 벙커까지 있는 집에서 사는 부자에게 물 폭탄은 미세 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선물받는 감사한 사건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빈곤에 놓인 사람에게 일상은 통제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 호우는 자신들의 거처를 삼켜 버릴 수도 있는 재앙이 된다. 통제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은 수많은 스트레스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심리적인 자원을 갉아먹는다.

 

따라서 가난해진다는 것은 심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심리적인 자원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경제적 빈곤은 심리적 자원의 빈곤을 유발한다.

 

우리가 지닌 심리적 자원의 양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심리적 자원을 소모하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는 심리적 자원이 부족해진다. 집에 물난리가 나서 이를 수습하느라 혼이 쏙 빠진 사람에게 미래를 계획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인 자원이 남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경제적 빈곤은 사람을 피곤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빈곤 스트레스

 

집이 물에 잠길 정도의 큰 스트레스가 아니더라도, 부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의사 결정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한 연구에서는 자동차에 결함이 생겨서 수리를 해야 하는데, 수리비가 약 180만 원 나왔을 때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물었다.

 

자동차 보험은 수리비의 10%만 보장해 준다고 해서 수리비를 현금 일시불로 지급할지, 돈을 빌려서 다달이 원금과 이자를 물고 갚을지, 아니면 수리를 하지 않고 운에 맡긴 채 당분간 차를 운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실 이 연구의 관심사는 참여자가 어떤 수리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자원이 얼마나 많이 고갈되는지, 그 결과로 이후의 과제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참여자들은 자동차 수리비 지출과 관련된 의사 결정을 한 다음에 유동성 지능 검사를 받았다. 유동성 지능 검사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력과 판단력, 그리고 논리력을 측정하는 검사다. 결과에 따르면 수리비 문제에 부자들의 지능 검사 점수에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가난한 사람들은 수리비 걱정 뒤에 지능 검사 점수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사탕수수 추수 대금이 입금되지 않아서 경제적인 걱정이 심했던 빈궁기에는 농부들의 유동성 지능 검사 점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탕수수 추수 대금이 입금되어서 경제적인 걱정이 덜어진 뒤에는 지능 검사 점수가 다시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수면 연구와 비교했을 때, 경제적 걱정 때문에 발생하는 지능 검사 점수의 감소 정도는 하룻밤 수면을 박탈했을 때와 맞먹는 크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문제를 걱정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생활하는 것과 유사한 정도의 크기로 우리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계획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지만,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이기도 하다. 성공은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확률이 높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곤은 심리적 자원을 고갈시켜서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경제적 빈곤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10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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