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기도는 우리의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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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0-09 ㅣ No.652

[레지오 영성] 기도는 우리의 큰 힘이 됩니다

 

 

생각을 통해 우리의 뇌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뇌과학자들의 말에 동의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제 머리는 수학에 맞춰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은 너무나 재미있었고, 수학 문제를 보면 어떤 공식을 통해서 쉽게 풀 수 있는지 또 공식이 생각나지 않아도 원리를 이용하면 어떤 문제도 풀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언젠가 수능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가 1번 문제부터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30년 넘게 수학적 지식을 사용하지 않았고, 더는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때의 뇌와는 전혀 다른 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 뇌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 운전을 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누구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 페달을 밟아야 할지, 속도는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언제 백미러를 봐야 하는지, 여기에 운전하면서 오디오를 틀어야 할 때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 년만 지나도 운전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뇌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세상에 불가능이란 있을까요? 굳이 할 수 없다면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모습일까요?

 

10월은 교회력으로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궁극적 목적은 각 신비에 담긴 주님의 삶을 되새기고 묵상하며 이를 본받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은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은 한국 초기교회 때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복자 홍낙민(루카)은 “매일 묵주기도를 열렬히 바침으로써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얻어 처음에 배교했다가 마침내 순교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지만 성모님께 도움을 청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다고 증언하셨지요.

 

 

기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미루지 않는 마음과 행동

 

이 묵주기도를 바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고, 삶 안에서 많은 은총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필요한 기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안에서 그렇게 긴(?) 기도를 바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하시지요.

 

길다고 하지만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시간은 15~20분이면 충분합니다. 우리 삶 안에서 15~20분이 그렇게 긴 시간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뇌를 새롭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지금 자신의 뇌가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뇌의 구조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되면 우리의 뇌가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15~20분 바치는 기도가 너무 길다고 말할까요? 너무 짧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더 주님과 함께할지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루지 않는 마음과 행동입니다. 사실 기도에 대해 뒤로 미루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바쁜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기도하겠다고 하고, 이 드라마 보고 나서 기도하겠다고 하고, 지금 너무 피곤하니까 잠깐 쉬고서 기도하겠다는 식으로 기도가 항상 나중의 일이 됩니다. 이렇게 나중의 일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 미사와 기도는 늘 먼저입니다. 그리고 책도 하루에 7권의 책을 각 권당 50페이지 이상 모두 350페이지 이상을 읽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다른 것은 하지 않고 기도와 책만 읽냐고 하십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아닙니다. 많은 글을 쓰고 있고, 매일 운동도 1~2시간씩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만남도 피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컴퓨터를 전혀 켜지 않고, 스마트폰으로도 인터넷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텔레비전을 아예 보지 않으니 오히려 시간이 남아 돕니다.

 

 

자격이 있다면 왜 자비를 구하겠는가?

 

‘다음에 해야지’라는 말보다, 지금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주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며 살아간다면 기도하는 것이 절대로 어렵지가 않습니다.

 

저 유명한 나폴레옹 대제(大帝)의 병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탈영했다가 붙들려 왔습니다. 두 번째 탈영이었기 때문에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의 어머니가 달려와서 나폴레옹에게 “황제여 내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라고 탄원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두 번씩이나 탈영한 네 아들을 위한 이런 탄원은 의롭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황제시여, 저는 의를 베풀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 폐하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비를 탄원하고 있는 것이지 의를 탄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탈영했는데 네 아들은 자격이 없다”며 단호하게 나왔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다시 엎드려 이렇게 빌었다고 합니다.

 

“황제시여, 자격이 없으므로 저는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있다면 제가 왜 자비를 구하겠습니까? 그러니 황제시여, 제 아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대화를 통해 주님께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법(義)대로 했으면 벌써 다 죽었을 우리입니다. 실제로 보이는 죄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자비를 주님께 청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의 삶을 더욱더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게 하려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봐도,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입증을 해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0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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