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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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공심판가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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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9-24 ㅣ No.1055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공심판가’의 예수님

 

 

‘공심판가’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산 이와 죽은 이를 공개적으로 심판하시는 최후 심판을 그린 천주가사이다. 이 노래는 ‘심판받을 운명’, ‘공심판의 전조’, ‘공심판의 광경’, ‘예수님의 선한 이와 악한 자 가름’, ‘예수님의 칭찬과 질책’, ‘악한 자의 지옥행과 선한 이의 천당행’ 순으로 전개된다. 공심판의 전후 과정이 차례대로 이어지는 구성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선한 이와 악한 자 가르심

 

‘공심판가’는 천주와 마귀, 수호천사가 등장하는 ‘사심판가’와 달리 예수님께서 등장하신다. ‘사심판가’와 ‘공심판가’는 원고뿐만 아니라 심판관인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직접 등장하시어 선한 이와 악한 자에게 각각 칭찬과 질책을 하시어 눈길을 끈다. 이런 독특한 구성 방식은 이 노래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는 심판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효과적인 장치인 것이다.

 

먼저 55-79행에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선한 이와 악한 자를 분리하시는 광경을 그린다.

 

요사밧 산곡으로 심판곳에 모여가니

천신네는 성인호송 마귀들은 악인압송

하늘문이 열리고 본십자가 나타나니

선자들은 구속지은 사례경사 찬미하고

악자들은 배은함을 복지원한(伏地怨恨) 무궁이라

(중략)

일절선자 우편이요 모든악자 좌편이라

선자들은 사기지은(四奇之恩) 악자들은 실고각고(失苦覺苦)

선자들은 감사주은(感謝主恩) 악자들은 통한자괴

한사람의 선악가져 만민에게 알게하고

만민에게 공죄가져 사람사람 알게하니

성인들은 지은죄악 통회고해 보속하고

사죄지은(赦罪之恩) 얻은고로 회두(回頭)함을 찬미하고

악자들의 지은선공 남의찬미 위함이라

그공(功)값과 그선(善)값을 세상에서 받았도다

 

이 대목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마태 25,31-33)라는 성경 말씀에 근원을 둔다.

 

결국 ‘공심판가’에서는 심판의 결과에 따라 ‘베드로, 다윗, 에스테르, 아브라함, 아벨’ 등이 오른편에 서고, ‘유다, 사울, 와스티, 롯, 카인’ 등이 왼편에 선다. 오른편에 선 선한 이들은 천국에서 누릴 ‘광명, 무상손(無傷害), 경쾌, 투철’과 같은 사기지은에 기뻐하지만, 왼편에 선 악한 자들은 지옥에서 당할 하느님을 뵙지 못하는 고통인 ‘실고’와 육체적 고통인 ‘각고’에 괴로워한다.

 

 

예수님의 칭찬과 질책 

 

이어지는 80-86행은 선한 이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을 노래한다.

 

오주예수 희언(喜言)으로 선인에게 이르시되

진복자요 애자(愛子)로다 천당영복 영수하라

애주고난(愛主苦難) 많이하고 피죄입공(避罪立功) 힘썼으며

죄근(罪根)의 깊은것과 삼구(三仇)를 이긴고로

만복면류 영화위(榮華位)를 너희에게 갚음이라

영혼육신 생명이여 사언행위(思言行爲) 지낸것이

진실로 진복자라 만복만락 영수하라

 

먼저 예수님께서는 선하게 산 이를 기쁜 낯빛으로 대하시며 진복자이자 사랑스러운 자녀라 칭찬하신다. 현세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고난받았으며, 마귀와 세속, 육신과 같은 원수를 이겨 죄를 피하고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선한 이는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칭찬을 통하여 성모님과 천사,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된다. ‘희락경하 일만붓이 기록할까’(90행)처럼 수많은 말과 글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어 91-97행은 악한 자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을 읊는다.

 

오주예수 노색(怒色)으로 악인에게 이르시되

진화자(眞禍者)요 마귀로다 지옥영고 영수하라

세상일락 도모하고 천당복을 잊었으며

나는아주 몰랐으며 부귀존영 탐만하고

음색미성(淫色美聲) 즐겨하고 많은성총 잃었으니

마귀들과 한가지로 동수영고(同受永苦) 네탓이라

영혼육신 생명이며 사언행위 죄뿐이라

 

그 반면 예수님께서는 악하게 산 자를 노한 낯빛으로 대하시며 진화자이자 마귀라고 질책하신다. 현세에서 세상의 즐거움만 도모하고 재산, 지위, 영예만 탐하느라 하느님의 존재와 은혜를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악한 자는 예수님의 엄중하신 질책으로 성모님과 천사, 성인들을 떠나 사악한 마귀들과 함께 영원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마악귀 포악형벌 유황끓는 맹화중에’(101행)처럼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의 칭찬과 질책은 사람들이 현세에서 지향해야 할 복음적 삶의 구체적인 실상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공심판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현세적 삶의 방도가 예수님의 입을 통해 대비적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진실성과 엄중함이 극대화된다.

 

 

악한 자의 지옥행과 선한 이의 천당행

 

이어지는 103-115행은 악한 자의 지옥행과 선한 이의 천당행에 대해 노래한다. 악한 자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 ‘사심판가’와 달리, ‘공심판가’는 악한 자의 지옥행에 이어 선한 이의 천당행으로 마쳐 주목된다. 곧 ‘공심판가’에서는 악한 자의 말로뿐만 아니라 선한 이의 천당행도 묘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심판가’의 이러한 균형 잡힌 구조는 세상 종말의 날에 엄정한 심판을 통해 내려질 상선벌악에 추호의 어그러짐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현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이 천주가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엄정한 심판에 따른 칭찬과 질책이 따를 것이므로 이를 미리 알아 어느 편에 서서 현세를 살아갈 것인지 결심하기를 촉구하는 노래이다.

 

‘공심판가’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그분의 자녀로서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한편, 비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하는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면 누구나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이 천주가사는 현세의 삶에 무게 중심을 두는 오늘날의 흐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의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사말 교리의 엄정한 심판을 상기시켜 현세의 복음적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9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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